[김헌범 칼럼] 언론이 제대로 서지 않고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일인지상 만인지하

역시 권력은 강했다. 우리나라 최고 언론인 KBS도 정권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선 쥐와 같았다. 세월호 참사초기 정부의 구조 대책 및 사고수습 관련보도를 둘러싼 청와대 홍보수석과 KBS 보도국장 간에 오갔던 통화녹취록은 정권의 언론통제에 대한 세간의 추측을 대부분 사실로 입증했다. 

당시 통화의 직접 당사자였던 청와대 홍보수석. 오죽해야 ‘내시’로 불리었을까. 그 ‘영광스런’ 별칭을 얻기까지 대통령 앞에서는 ‘간, 쓸개’를 다 내놓았을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의 뉴스보도를 총괄하는 보도국장 앞에서는 거침이 없었다. '일인지상 만인지하'는 이 정권에서는 국무총리가 아니었다. 외양으로는 부탁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렇게 보기엔 홍보수석의 태도는 너무나 집요하고 당당했다. 

'내시'의 호가호위

빠르게 침몰하는 여객선의 선실에 갇힌 단원고 학생들의 구조가 촉각에 달려있는 상황이었지만 구조책임을 맡고 있는 해경의 행동은 석연찮을 정도로 굼떴다. 상황이 급속하게 돌아가는데도 해경은 민간구조업체를 우선 내려 보내기 위해 해군 UDT 투입을 막으며 시간만 끌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터였다. 문제는 KBS가 국방부의 보도 자료를 토대로 해경의 지지부진한 구조 활동에 대해 방송을 내보내자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구조의 컨트롤 타워는 없었어도 언론 통제의 컨트롤 타워만큼은 건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고,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최고 권력을 등에 업은 ‘내시’가 호가호위하니 엄살 같은 강짜에 추상같은 영이 서리며 수십 년 간 언론인으로서 지켜왔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얼어붙었을까. 보도국장은 “네~네”라는 굴욕적인 답변으로 순간의 궁지를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내시’의 심기를 완전히 달래지 못했을까. 보도국장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방송국에서 잘려 나갔다. 

부끄러운 꼴찌

국민들이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이번 사건은 홍보수석이란 직책이 이제는 올바른 여론을 통해서 국민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론을 차단하는 자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또 사고가 발생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대통령이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부분이다. 자고로 전형적인 우군에는 당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배들이 세트로 설치는 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30위권이던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정확히 두 배수가 하락했다. 덕택에 우리나라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부패인식지수에서 OECD 회원국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청와대든 정부 부서든 할 일은 안하고 언론만 잘 관리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가는 느낌이다. 

BBC의 언론정신

언론에 대한 유, 무형의 개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든 가치가 수익으로 환원되는 현실에서 언론만이 본연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단지 이상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였던 언론사는 뉴스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변화하고, 대중들은 뉴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해 버린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뉴스로 의제화시키는 주도권은 주요 언론과 결탁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쥐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 대한 대중의 깨어있는 의식이 더욱 절실해졌다. 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도를 지키려는 언론의 본연의 자세다.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도 우리나라 언론들의 세속화는 지나칠 정도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시 국익을 앞세운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의 부당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언론정신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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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언론들이 타산지석으로 삼기에는 너무 높기만 한 것일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역할도 필수적이다. 언론이 제대로 서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무턱대고 비상식적인 정부의 언론통제만을 탓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도는 사람이 만들고 빼어난 정신은 위대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1%를 제외한 99%가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절 언론의 분발이 더욱 아쉬워진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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