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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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4) 지그문트 프로이드 『문명 속의 불만』/이유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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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4년.
1. 불안한 현대 문명

20세기 초에 몇몇 철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토대를 둔 현대 문명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니체는 신이라는 환상을 상실한 현대의 대중이 ‘원한’ 감정에 기초한 공동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공멸할 수 있다고 걱정했고, 하이데거는 목표지점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류를 닦달하는 과학기술 문명이 결국 우리 모두를 고향을 잃어버리고 부유하는 덧없는 존재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대량학살 무기를 경험한 지식인들의 관심사는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되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인류가 충분히 지성적이라면 이런 상식적인 예측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어야 옳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명의 전개과정은 그런 대안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문명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징후들은 지역적인 차원에서 국제적인 범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선 세계 전체를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명과 IS와의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군인들이 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전쟁은 이미 없다. 공연장, 레스토랑, 기차, 쇼핑센터 등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의 공간이 전쟁터가 되었으며, 안전한 장소, 안전한 나라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서구의 공습과 무인기에 의한 공격에 의해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기는 IS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국제적으로 비웃음을 살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에서는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고,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 중국이 이러한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미래는 더욱 불안해졌다. 핵전쟁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국가에서 안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반문명적인 징후라면 지역적인 수준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점점 번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슬람 난민을 추방할 것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으며, 인종,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 공공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오늘날 번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의 양상 역시 그와 같이 지역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반문명적인 징후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은 매우 다양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본가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청년과 노인, 공공주택 거주자와 민간 아파트 거주자, 이주 노동자와 자국 노동자, 강남과 강북,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심지어 캣맘과 동물혐오자, 전업주부와 직장맘 등 차이가 보이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갈등이 형성된다. 

문명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증오나 지역적인 집단 간의 갈등은 모두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반문명적이다. 다른 집단에 대한 이와 같은 원한의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2. 대안으로서의 에로스

현대 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생각하는 일은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위기는 자유민주주의가 충분히 전파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위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집단 간의 갈등과 반목이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악의 결과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들과는 별개로 프로이트는 『문명속의 불만』(열린책들, 2011)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한 심리적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후기 저작에 속하는 이 책에서 그는 정신분석 의사의 관점에서 개인의 심리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던 종전의 관심을 인류 문명의 문제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개인의 심리적 발달과정과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을 유비시킴으로써 개인의 심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던 관점을 이번에는 역전시켜 문명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그 심리적 전개 과정을 통해서 구명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 초자아에 의해서 무의식적인 욕망이 억압됨으로써 가능했듯이, 우리 문명은 본질적으로 본능 억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원시적인 욕망이 늘 실현된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 되어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억눌린 성적 욕망을 다른 방향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문명적 자산을 낳았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승화’라고 불렀다.     

문제는 이러한 승화가 무한히 연장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사 평균적인 수준에서 승화의 능력이 유지되는 문명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성적 본능의 억압을 견뎌내지 못하는 인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개인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변태’가 되거나, 신경증 환자가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문명에 의한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문명에 대해 적대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의 공동체에서 성행동을 제한하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개인의 능력을 손상시켜 삶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것이 보통이고, 그래서 어떤 목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그리하여 그런 공동체나 집단은 미래에 전혀 공헌하지 못한다.”(33쪽) 

취직이 어려워 결혼을 늦게 할 수밖에 없게 된 한국의 청년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성행동을 제한받고 있는 셈이다. 프로이트의 이와 같은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저출산율은 반문명적 행위의 결과이다. 그저 착한 순응주의자들로만 보이는 우리의 청년들은 사실은 자신의 삶을 즐길 능력을 손상당한 결과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공동체의 억압에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개인의 성적 본능을 억압하는 대가로 신경증에 걸리지 않고도 삶을 견딜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종교이다. 우두머리의 지배를 받고 싶어 하는 ‘군집 동물’인 인간은 우두머리가 이끄는 종교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 속에서 삶을 견디는 법을 배워왔다. 그러나 이런 유대는 직접적인 성적 결합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금지한 억압된 성충동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안에 불만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문명은 애초에 원시적 욕망을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가능했으나, 아직까지는 다수 계층을 억압함으로써 소수 계층에 만족을 주는 단계에서 벗어난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지금까지 인간의 반사회적 본능을 길들이는 문명적 장치로 역할을 해 왔으나 평등한 문명의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했다. 프로이트는 “종교는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 신경증”(215쪽)이라고 말한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 집단 간의 반목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문명 속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증거이다. 만약 인류의 문명이 더 성장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종교와 같은 문명적 장치로 본능을 억눌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출하는 식으로 퇴행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성적인 대안을 찾을 때가 되었다고 프로이트는 진단한다. 그런 대안을 통해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해방된 에너지를 이 세상의 삶에 쏟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견딜 만한 삶과 더 이상 아무도 억압하지 않는 문명을 이룩하는 데 성공할 것”(222쪽)이라고 말하는 프로이트는 문명은 에로스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수의 단계로 후퇴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통합이라는 에로스의 목표를 실현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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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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