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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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 김정숙

봄날이 꽃을 꼽는다면 여름날은 저녁시간이다. 불덩이가 서쪽 하늘에 기댈 즈음 그늘 깊게 드리우는 시간. 하늘은 더없이 온화하고 한 모금의 바람은 시원함을 넘어 달달하다. 정열의 뒤끝이 이런 맛일까. 이런 날은 단촐한 저녁을  하고 싶다.

마당에 멍석 깔고 먹는 저녁은 메뉴가 무엇이든 맛있었다. 그리고 더 맛있는 건 한 두 시간쯤 있다가 먹는 옥수수였다. 같은 옥수수라도 저녁별을 보며 먹는 옥수수는 특히 맛있다.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알이 성근 걸 뜯어 잡수시고 어머니는 작고 못생긴 것만 골라 느릿느릿 드신다. 막내는 제일 큰 걸 잡고 하모니카를 불고 성미 급한 동생은 사막에 난 낙타발자국처럼 옥수수를 아작 낸다.

그러나 며칠 못가 끝난다. 많이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비슷한 시기에 다 익는 옥수수. 따서 금방 삶을 때가 가장 맛있다. 딴 찰옥수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분이 노화돼 딱딱하다. 달고 찰진 맛도 떨어진다. 완전히 익으면 쪄 먹지 못하고 가공을 해야 한다. 모든 먹거리의 맛은 먹는 타이밍이 한 수다.

지난봄에 옥수수를 심었다. 긴 잎사귀 휘날리며 보란 듯이 잘 자라고 있었다. 한 달여 장마가 눌러 사는 동안 옥수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우리 마을은 비가 많은 지역이다. 그런 약점을 감안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 조금 늦게 심어야 이 여름날 저녁에 먹을 수 있는 거였다. 마음만 앞선 결과 수확은 볼 품 없었다. 물론 시장에서 보는 옥수수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

가족이 둘러앉아 먹기에는 딱 좋은, 올망졸망한 옛날 그 모양의 옥수수를 얻었는데도 나는 옥수수를 나무라고 있었다. 균일화, 표준화에 길들여진 내 잣대가 문제지 다른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도 아닌 생물이 자로 잰 듯 균일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다. 생물인 이상 크기나 생김이 다른 것들이 있게 마련인 걸. 상품이라는 좋은 단어로 인하여 그 자연적인 현상을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규격 안에 들지 못한 농산물도 생산비는 똑같이 들어간다. 시장으로 출하되는 상품이 그 비용을 지고 갈 뿐이다.

지금은 일 년 내내 옥수수를 먹을 수 있다. 찰옥수수, 단옥수수, 과일처럼 생으로 먹는 옥수수까지 품종도 다양하다. 찰옥수수는 제때 삶아서 급속냉동을 해두면 오래 저장 할 수 있다. 단옥수수는 그냥 냉동저장 했다가 쪄먹는다.

균일하지는 못하더라도 먹는데 지장 없는 농산물들이 알뜰상품으로 시장에 나  왔으면 좋겠다. 경비가 똑 같으니 가격이 많이 싸기를 바라지는 않겠다.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버리는 농부의 마음고생을 덜어주고, 상품과 비상품이라는 이분법으로 굳어가는 내 잣대가 소용없어진다면 식탁은 더 풍성 할 것이기에. / 김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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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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