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칼럼]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입도를 환영하며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생명평화순례단이 45일간의 지리산권 순례를 마치고 제주에 오셨습니다. 먼저 ‘생명평화탁발순례 제주조직위’와 55만 제주도민을 대신하여 열렬히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제주는 '생명평화의 성지'가 되기에 손색없는 곳

독립적인 탐라국 시대 이후로 제주도는 섬사람들의 공동체를 침탈하는 외부세력에 끈질기게 저항해온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주해안을 빙 둘러가며 쌓았던 환해장성과 봉수.연대 등도 그렇고,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이재수 난’에서도 소개되었듯이 한말 제주는 서양제국주의 침탈과 부패한 봉건관료에 저항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침략기에 일어선 해녀항일투쟁과 해방공간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인 4.3은 변방이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시련과 그에 대한 극복의지가 ‘저항’의 역사로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제주는 잘 알려진 대로 3다(三多 : 돌과 바람과 여자)와 3재(3災 : 비와 바람과 가뭄)의 섬입니다. 화산재와 자갈을 일구는 농경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했습니다. 이리하여 ‘수눌음’의 지혜가 생겨났고, 도둑, 대문, 거지가 없는 삼무(三無)의 평등한 공동체 사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신들의 고향’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1만 8천 신들의 신화와 전설이 온 섬 구석구석에 배어 있기도 합니다.

또한 생태적으로도 제주의 가치는 매우 빛납니다. 섬 가운데 있는 어머니산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360여개의 오름들이 점과 점으로 제주섬을 둘러싸고 있으며, 계곡과 하천은 선과 선으로 산의 지맥을 동서남북으로 뻗혀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곡은 군데군데 폭포의 절경을 이루기도 하며,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을 비롯하여 수많은 용암동굴들이 분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한국의 멸종위기,보호야생 식물의 52%가 제주에 분포하고 있으며, 저어새 등 희귀 철새 등도 해마다 이곳을 찾습니다.

이렇듯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다양한 역사유적 그리고 독특한 민속문화를 가진 곳으로 ‘생명평화의 성지’가 되기 손색없는 곳입니다.

파괴되고 있는 제주의 '생명'과 '평화'

그러나 이곳이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명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수십개에 달하는 골프장 개발로 제주생태계의 허파가 파괴되고, 생명수인 지하수의 오염 및 고갈 우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골프장 뿐만 아니라, 세수확대와 고용창출이라는 명분 하에 대규모 호텔․콘도미니엄, 카지노, 케이블카, 경마장 등 하드웨어 중심과 외지 대자본 중심의 관광개발에 몰두해 왔습니다. ‘좀 더 크게,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로 비유되는, ‘개발중독증’이라 불릴 만큼 치유하기 힘든 사회병리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자연환경은 물론 사회문화환경까지 파괴시키고, 지역주민을 소외시키는 개발이 주종을 이뤄왔습니다.

또한 공동체사회와 평화의 섬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지역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의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제주사회의 개혁 또한 발목을 잡아왔기도 합니다.

다시 꿈을 꾼다

이제 다시 우리는 꿈을 꿉니다. 제주가 ‘생명평화의 섬’이 되기를... 몇몇 세계 정상들이 방문했기 때문도 아니며, 단지 4.3의 비극을 덮어두거나 기억하기 위해서만은 더더욱 아닙니다.

고난과 비극의 역사로 점철됐던 이 땅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존중, 폭력의 거부, 타인과 나눔의 실천, 상호 이해와 경청, 지구환경 보존, 연대의 회복’을 실천할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平和)란 어원은 ‘밥(禾)과 입(口)의 평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쟁취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최근 재연된 이라크 및 중동사태만 보더라도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극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주가 진정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국가가) 지정해 주거나 국제 기구가 유치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 땅을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 점에서 ‘평화’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제에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내 지도급 인사들이 먼저 인권과 환경, 복지의 마인드를 가지고 제주도를 지속가능한 사회, 정의로운 복지공동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주시길 촉구합니다. 물론 우리도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주가 인권과 환경, 복지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모범적인 지역이 될 때, 누가 지정하지 않고 스스로 선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평화의 섬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런 점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제주방문과 순례는 저희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제주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한달 여 동안의 긴 순례기간 동안 무탈하게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기대하면서, 제주도민의 무한한 사랑을 여러분에게 담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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