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은 대화하기에 딱 좋은 시간입니다

<제주의소리> 8월 15일자 ‘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에 소개된 ‘한국의 화타, 구당 김남수’ 제하의 칼럼에 대한 제주도한의사회의 반박문을 잘 읽었습니다. 이 반박문에서 저의 견해를 묻는 질문이 있어 간략히 답변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의사회의 질문 요지는 크게 세 가지인데, ①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왜곡해 마치 이제부터 사설교육기관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 정식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②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침구사 면허 및 근거 없는 침구원 운영 등에 대한 칼럼을 통해 독자나 일반인한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느냐 ③대한민국의 의료면허 제도가 전근대적이라고 매도함과 동시에 ‘구당카페’에서 구당의 제자가 하는 무료시술, 즉 무면허 의료행위를 옹호하는 취지의 내용을 기재했다는 겁니다.

첫째, 저의 칼럼 어디에도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왜곡한 게 없습니다. 저도 40년간 공직생활을 했기에 이번 판결이 평생교육시설에 대한 허가이지, 무면허 의료시설 행위에 대한 허가가 아니란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설교육기관 이수자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근거로 현행 의료법 27조 1항의 규정을 제시한 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침구사 면허와 침구원 운영 등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런 겁니다. 모든 일은 그 원인이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서 더듬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침구사 면허(양성)제도’의 폐지는 5.16이후 군사정권의 철권통치의 희생 제물이요, 전통의술 말살정책이었다고 판단합니다. 만일 5.16이 없었다면 침구사 자격시험이 시행돼 유자격 침구사가 양성됐을 터이고 침구원은 지금도 성업 중일 겁니다. 처음부터 침뜸시술이 불법이었던 게 아니라 의료법이 바뀌면서 합법이 불법이 됐으므로 다시 법 개정을 통해 불법이 합법이 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의료법은 만고불변이거나 신성불가침이 아닙니다.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헌법도 고치는데 의료법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현실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반영하는 게 진정한 ‘법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가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악법도 법’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심정으로 용인할 수 있지만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셋째, 제가 한국의 의료면허 제도가 전근대적이라고 한 건 현행 의료법이 전(前)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서양 선진국의 경우, 침뜸의학이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체의학이란 걸 인정해서 침구사 양성을 위한 대학을 설립하고 침구사 자격증을 수여해 자국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토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의과대학에 대체의학과가 신설됐고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에 침구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체의학과 현대의학이 대척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이고 의존적 관계라는 걸 이 땅의 의료인들뿐 아니라 만백성이 다 알고 있는데도 해결책이 요원하니 참으로 난감할 따름입니다.

또한, 제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옹호했다고 지적했는데, 저는 불법행위를 두둔하거나 비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칼럼에서는 제가 직접 겪은 체험을 말했을 뿐이고, 거기에는 한 치의 거짓이나 과장이 없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면서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저는 언론을 통해 의사협회와 한의사회의 갈등과 공방을 목격해 왔습니다. 일반 대중의 눈에는 이게 볼썽사나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져 민망했는데, 본질적으로 한 뿌리인 한의사와 침구사(요법사)가 대립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의사회와 정통침구학회 관계자가 만나서 현안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접점을 찾아가는 공론화(公論化)의 기회를 갖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만나서 대화해 보지도 않고 일언지하에 상대방을 무시하고 적대시 하는 건 현명하지도 않고 양식을 지닌 지성인의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지 만능이 아니고 법 만능주의, 법 지상주의 사회야 말로 ‘헬 조선’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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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요? 저잣거리에서도 쌍방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법대로 하자’, ‘법대로 가자’는 대화의 통로가 꽉 막혔을 시 행하는 마지막 선택입니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가 떠오르는군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날기 시작한다’ 지금이야말로 ‘상생과 공존의 담론’을 점화할 기막힌 때가 도래했다고 믿습니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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