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7)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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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1. 집 없는 설움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생각하면 관악산 꼭대기에 올라가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관악산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관악산 정상에서 보는 서울은 온통 아파트밖에 없다. 전세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니 ‘저 많은 아파트 가운데 내가 살 집 한 채가 없다니’하는 한탄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김현경 씨의 독창적이고 재기 발랄하면서도 묵직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세입자로서의 신세한탄을 하는 것은 어딘가 격이 맞지 않는 것 같지만, 필자로서는 꽤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더욱이 최근에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부동산 업자에게 농락을 당하는 경험을 하고 보니 세상 헛살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집 없는 설움이 북받친다. 삶이 왜 늘 불안한가 반성해보니 하이데거가 말하는 대로 거기에 어떤 근원적인 존재론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집이 없어서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있을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건일 것이다. 물론 이 ‘장소’라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사회적인 인정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사회적 지위일 수도 있고,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개 양자가 중첩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공적인 장소에서 특정한 장소를 할당받는 것을 의미한다. 장소는 인정의 징표이다. 그래서 무슨무슨 ‘장’이라는 명패가 붙은 사무실은 쓸데없이 넓은 경우가 많다. 공간적인 크기로 위세를 보이기 위함이다. 반면 쪽방촌이나 고시원 같은 장소는 그 협소함으로 거기 있는 사람이 루저라는 것을 표현한다. 

이 사회는 마치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로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한다. 일용직 청소노동자들은 청소비품 창고 같은 곳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많이 배웠어도 출세하지 못하면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예컨대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사실상 대학의 학사과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마치 유령같이 취급된다. 시간강사를 위한 장소는 대학 내에 없다. 강의 중간에 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는 캠퍼스를 배회하거나 교수 휴게실에서 눈치를 보면서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과연 대학이 돈이 없어서 청소노동자나 시간강사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들을 협소하고 불편한 장소에 몰아넣음으로써 유치한 권력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많은 갈등이 장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청와대의 고위직 인사가 청와대에 머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둘러싸고 마치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세월호 희생자들의 교실을 보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말들이 많았다. 이슬람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국경을 넘는다. 우리는 왜 어디에 있어서는 안 되고, 어디에는 있어도 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왜 넓은 장소를 차지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왜 좁은 장소에 갇혀 살다시피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물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항목일 것이다.

2. 사람으로 살기 위한 조건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매우 경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많은 서구학자들을 원용하는데, 그들의 이론이 과연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태도가 독자를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김현경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장을 한 마디로 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환대를 받고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 환대란 각자에게 장소를 마련해 주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테제를 통해서 김현경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다루는 테마는 노동, 성소수자, 동물권리, 안락사, 사형제도, 성차별, 학교폭력, 이주노동자 문제 등등 매우 다양하다. 무조건적인 환대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료한 규범적 주장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주장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프게 드러난다. 

김현경은 사람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저 생물학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간에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사람은 자기에게 허용된 공적인 공간에서 사람으로서 연기를 하면서 사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연기를 준비할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바로 공적인 공간과 구분되는 사적인 공간이다. 만약에 사적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공적인 공간에서의 사람 역할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공공성과 사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문제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 된다. 이런 김현경의 설명은 소극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자유주의의 보루로 삼았던 자유주의자들의 고민을 매우 쉽게 해결해 준다. 개인은 공공성의 영역에서 소멸되지 않으며, 공공성은 사적인 공간을 없앨 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인간은 사람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서 노숙자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생활한다. 그는 사적인 장소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군대나 감옥 같은 장소는 사적인 공간과 물품을 박탈하고 체벌과 조롱을 통해 개인의 존엄과 인격을 부정함으로써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한편 공적인 장소에 있을 권리를 부정당하는 순간 그 사람들 역시 사람으로 대접받기 어렵게 된다. 김현경은 쉬운 예로서 식당이나 택시의 첫 손님이 여성일 경우 재수가 없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거부하거나 여성들끼리 몰려다니며 모임을 갖는 것을 꼴불견이라고 여겼던 우리 사회의 통념을 지적하고 있다. 중장년 여성들이 겪었을 이런 일들을 김현경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가부장제적인 사회에서는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공적인 힘이 개입하기 힘들다. 폭력적인 남편에 의해 아내가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 여성은 이미 사회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에서 배제되는 것은 인격을 부정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김현경은 “남들이 자신에게 의례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데도 거기에 항의하지 못하고 매번 참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인 열등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117쪽)라고 말한다. 그것은 지위의 불안정, 사회적 성원권의 불안정을 드러내는 징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인 모욕을 감수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공간을 감내해야 하는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에게는 매우 뼈아픈 서술이다. 누군들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싶지 않을까? 누군들 나를 모욕하는 그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모욕을 되돌려주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환대가 그저 남의 이야기나 허구적인 소설 속 이야기로만 여겨지는 우리로서는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환대에 대한 김현경의 정의로 글을 마무리하자.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207쪽) 그는 이러한 환대를 통해서만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 사회에 진입하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그의 생각에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환대받는 사회에서는 아마도 우리는 우리 각자의 집을 차지할 권리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필자의 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지난 2월 15일자에 고영자 박사가 이미 소개한 책이지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결부지어 한 번 다시 펼쳐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필자의 독해를 서술해 보았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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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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