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6) 각재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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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재기국을 위해 준비한 식재료들. ⓒ 김정숙

좀처럼 꺾일 것 같지 않던 폭염이 처서 지나 고개를 숙인다. 순리란 그런 거다. 질주하던 태양조차도 절기 앞에 주춤하는 거. 마디마디 뿌리 내리며 한창 피던 달개비도 선한 바람에 꽃을 거두는 거. 높은 곳에 걸린 깃발이 방향을 트는 바람에 끝자락을 내 주는 거. 열매 키우느라 초록이 휘는 숲에도 숨 고를 시간을 선물 하는 거. 생각보다 먼저 몸이 알고 움직이는 거.

에어컨과 냉수로 달래던 몸이 칼칼하면서 뜨끈한 각재기국을 당긴다. 각재기국은 땀을 내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각재기는 전갱이를 말한다. 전갱이는 늦봄부터 가을사이 여름 생선이다. 등 푸른 생선 전갱이는 고등어보다 지방이 적고 비린내가 덜하다. 살집이 단단하고 맛은 담백하다. 그래서 구이보다는 조림이나 국이 나았을 거 같다.

제주음식엔 국이 참 다양하다. 자연재해가 많았던 섬에서 한정된 재료로 여럿이 끼니를 때우는 방법이었다. 밥은 양푼에 담아 같이 먹으면서 국 사발은 저마다 따로 받았다. 제주사람들이 육지로 단체 관광이라는 걸 나갈 무렵, 찌개그릇 가운데 놓고 각자 밥은 받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국이 나오지 않아 국 달라며 성질을 부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각자 밥을 챙기지 못하니 국이라도 챙기면서 달랜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국물이 있어야 밥을 내리는 식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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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재기국. ⓒ 김정숙

제주사람들의 염분섭취량이 많다는 것은 이 국물이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국 국물이 아닌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 국물을 더 많이 섭취하는 게 문제다. 탕이 진득하게 오래 끓이면서 우려내는 국물요리라면 국은 재료가 다 익을 만큼의 간격에서 끓여내는 국물 요리다. 탕은 한꺼번에 끓여두고 덜어서 데워 먹지만 국은 그 때 그 때 끓여야 맛있다. 특히 각재기국처럼 생선국들이 그렇다. 두었다가 데우면 제 맛을 잃는다.

국도 신선함이 생명이다. 국을 끓이는 각재기는 큰 거 보다는 한 뼘 정도로 작은 것이 좋다. 물이 끓으면 각재기를 넣고 살짝 익으면 어린배추를 넣는다. 배추가 데쳐지듯이 숨죽으면 다진 마늘과 풋고추를 넣고 간장으로 간한다. 각재기가 허물어지지 않고 잘 익을 정도의 시간이면 국끓이기는 끝난다. 배추가 싱싱한 초록색을 유지하도록 끓이는 게 포인트다. 

다른 반찬이 뭐가 필요할까. 오로지 각재기국만을 우러르는 밥상이 일품이다.

못 견디게 뜨거운 여름날이 있어 오는 계절이 반갑다. 아침저녁 공기가 더위의
양끝을 말아 올리며 가을채비를 한다. 아쉽지만 벌여놓은 나의 일들도 이쯤에서 점검해야겠다. 순리대로 오는 가을, 가을답게 보내기 위해서. / 김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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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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