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첫 예산안, 빈부격차 완화할 복지·세제개혁 외면

9월 23일 노무현정부의 2004년 예산안이 발표되었다. 집권 이후 첫 예산안이다. 일반회계 예산은 총 117조 5천억으로 작년에 비해 2.1% 오른 금액이다(특별회계까지 포한한 순계총예산은 158조 6천억으로 0.8% 감소).

정부는 '균형예산을 편성하였다',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에 집중했다'며 자평하고, 보수언론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무시한 '분배우선의 예산'이라며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2004년 예산안은 과거 권위주의정권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정부지출구조와 수입구조의 왜곡을 그대로 안고 있다. 개혁과 참여를 외쳤던 신생 정부의 첫 예산치곤 수준 이하의 작품이다.

'사회복지 유린하는 한국사회 자화상'

첫째, 2004년 예산안은 결코 정부 설명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위한 방안이 아니다.

정부는 사회복지예산이 총 1조원 증액되어 예산항목 중 증가율이 최고(9.2%)에 달한다고 생색을 낸다. 그렇게 증액된 사회복지예산 총액이 고작 12조 2천억으로 전체 총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의 7.7%에 불과하고, 일반회계만을 보면 11조 6천억으로 일반회계예산의 10.3%에 해당한다.

유럽국가들은 보통 예산의 30∼40%를 사회복지에 사용하며, 남미국가들도 20%를 넘고 있다. 언제까지 복지후진국으로 남을 것인가? 이 사회복지예산을 가지고 정부는 최고증가율이며 공공연히 수치놀음하고, 보수언론은 한술 더 떠 '복지우선의 예산'이라는 사설까지 쓰고 있다. 사회복지를 유린하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둘째, 제한된 예산규모에서도 국방비는 18조 9천억으로 무려 1조 4천억이 증액되었다. 국방비 증액에는 우리 국방예산이 GDP대비 2.8%에 불과하여 세계 평균 3.5%에 미달된다는 논리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소경제 국가일수록 예산대비 국방비 비중이 높은 법이어서, 경제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평균수치는 의미가 없다. 세계 11인 경제규모인 우리나라에서 2.8%의 국방비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세계 2위 경제규모인 일본의 국방비도 GDP대비 1%에 불과하다. 게다가 NATO방식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국방비 비중은 3%를 훨씬 넘어 NATO국가 평균 2.2%를 넘는다.

이미 한국의 국방력은 한반도의 전쟁억제에 충분한 수준으로 과잉 지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한의 국방비 지출규모는 미화 150억 달러로 북한 국방비 15억 달러에 비해 10배나 많다.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군비축소가 시급한 상황에서 노무현정부는 오히려 국방비를 증액하는 반동적 예산정책을 확정하였다.

셋째, 사회간접자본 지출예산은 17조 2조원으로 2003년에 비해 1조 1천억 원(6.1%)이 감액되었다. 산업, 중소기업 지원예산도 3조 4천억으로 4,300억이 줄어 감액율이 11.2%로 다소 높게 나타난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은 정부 예산안이 경제와 성장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우둔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노무현정부 들어 경제지원 정책이 과거처럼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기보다는 해외자본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미명아래 해외자본에 조세 의무, 환경 의무, 노동보호 의무를 사실상 면제해주는 경제특구정책이 추진중이다. 이는 세금과 기업비용을 면제해주는 것이어서 실제 정부의 재정지원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해외자본뿐만 아니라 경제특구에 손쉽게 입주할 수 있는 국내자본 역시 큰 혜택을 입을 것이다.

게다가 예산안이 발표되는 날 IMF총회에 참석한 김진표 부총리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도로, 철도, 전기, 가스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경우 법인세를 5년 간 100%, 이후 2년 동안 50%를 깎아주겠다는 파격적인 바겐세일을 선언하였다. 해외자본을 이용하여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겠다는 이 발상은 결국 국토의 기본인프라마저 해외자본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미 노무현정부는 예산뿐만아니라 경제특구, 법인세 실질인하, 국가인프라 사유화 등을 통해 전면적인 자본 지원을 행하고 있다.

넷째, 내년도 우리나라 국세수입은 122조 3천억 원으로, 지방세까지 합치면 국민 1인당 세금액이 318만원으로 발표되었다. 이에 대하여 언론들은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듯이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내년 GDP대비 조세부담율은 22.6%로 올해 22.8%에 비하여 오히려 낮아진 수준이다. 이는 OECD평균 28.5%에도 크게 못 미친다. 직접세수입이 약 5∼6%pt 낮은 탓으로 그 금액만 약 30조원에 이른다. 이 탈루되는 직접세를 징수하지 않고는 사회형평성을 논의할 수 없으며, 사회복지 지출은 항상 예산타령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정부와 언론은 조세부담율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부풀리지 말라. 부자에게서 탈루되는 직접세를 거두어 OECD평균만큼의 조세부담률에 다달아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개혁정부를 자처한 노무현정부가 마련한 첫 번째 예산안을 보았다.

노무현정부는 새 그릇이 아니었다. 내년 예산안은 최근 '사회적 타살'로까지 표현되는 빈부격차 문제를 방치하고, 불필요한 국방비를 증액하여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고 있다.

또한 경제와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해외자본에 의존하여 국가인프라 해외종속을 가속화하고, 세계적 웃음거리인 후진적인 직접세체계를 그대로 용인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지출·세입구조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끝>

오건호님은 민주노총 정책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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