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질문이며, 질문은 문입니다. 나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술의 문. 우리가 맨 먼저 넘어서야 할 장벽은 ‘그림책은 어릴 때 읽고 만다’는 편견입니다. 그림책은 초·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요즘 성인들 사이에서 ‘그림책의 발견’이 한창입니다. <논어>와 ‘그림책 이야기’로 함께 했던 오승주 작가가 이번엔 물음표를 달고 독자 곁을 찾아옵니다. 바로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입니다. 질문을 가지고 그림책을 읽는 사람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 (4) 명절이 슬픈 사람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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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ㅣ 윤재인 (지은이), 민소애 (그림) | 느림보 | 2009년 9월

명절이 되면 서글퍼지는 사람들

명절 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요? 설 때는 뭐니뭐니해도 세뱃돈이 떠오르고, 추석 때는 불꽃놀이가 떠오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문구점에서 불꽃놀이 도구를 사다가 일출봉이나 동산 봉우리에 올라가 친구들과 불꽃을 모아 터뜨리면 아름다웠어요. 게다가 보고 싶은 친척들과 맛난 음식들에 한없이 즐거웠죠. 어릴 적에는 명절 때 슬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어요. 한 번 들어볼래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태인을 가두고 죽였던 ‘수용소’라는 곳이 있었어요. 가장 유명한 곳이 ‘아우슈비츠’였는데, 이곳 외에도 많은 수용소가 있었어요. 마음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심리학자 선생님이 갇혀 있었던 수용소에서 실제로 있었던 얘기예요.

수용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날은 바로 크리스마스였대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설이나 추석이죠. 왜 크리스마스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죠. 그래도 살기 위해서 사람은 마음을 둘 만한 희망을 하나 만들죠. ‘크리스마스에는 이곳을 나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지옥 같은 수용소에 갇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완전히 잃은 채 삶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립니다. 잃어버린 마음은 곧바로 몸에 영향을 줍니다. 병을 스스로 이겨내는 ‘저항력’이 약해지면서 폐렴이나 여러 가지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읽었던 빅터 프랭클 박사의 체험담에 생생히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가족들은 명절 날 어떻게 지낼까요?

저와 이웃해서 사는 집은 다문화 가정입니다. 제 공부방에 다니는 학생 중에서 중국인 가정의 아이도 여럿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미 많은 나라의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와 지금 아이 세대의 명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 반에도 꽤 많은 다문화가정의 어린이가 있으니 친구의 안부를 살피려면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파키스탄의 명절이 어떤지 관심을 가져야 하죠. 다문화 친구나 부모에게서 명절 음식이나 명절 문화에 대해서 한 번 들어보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은 ‘명절’ 이야기는 아니에요. ‘가족’의 이야기에요. 명절 때는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잖아요. <손님>은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반가운 손님인 ‘아빠’를 기다리는 본본에게 찾아온 손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김수진이라는 한국 이름의 여자 아이. 본본과 수진이는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이름은 전혀 다르고 터전도 다릅니다.

수진이가 본본에 비해서 한국 아버지에 더 가까웠죠. 그들은 ‘코피노’라고 부릅니다.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이르는 말이죠. 대부분은 한국인 남성와 필리핀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본본은 수진이 자신의 부푼 꿈을 깨버렸다는 데 화가 나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모른 채하죠.

두 아이가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본은 아빠만 잃었지만, 수진이는 아빠와 고향을 다 잃었죠. 수진이의 아픔이 더 크니 본본은 더 화를 낼 수 없었던 거죠.

요즘은 명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합니다. 명절에 더 쓸쓸해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무거운 마음을 함께 든다면 쓸쓸한 사람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주변을 돌아보아요.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도 명절 날 더욱 쓸쓸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 <손님>를 읽고 질문을 2개 만들어 보아요.

1. 한국인 아빠들은 왜 코피노나 다문화 아이들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만드나요?
2. 왜 프랑스나 미국 같은 나라가 섞인 다문화 어린이는 괜찮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다문화 어린이는 놀림을 당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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