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비아아트, <사람, 장소, 환대> 저자 김현경 초청 강연

신체적인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거처를 찾아 바다 위를 떠도는 난민, 짐처럼 끌려나오는 철거민들은 과연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을까? 같은 ‘인간’이지만 현실은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사람으로서 취급받는 조건을 ‘장소’라는 공간적인 개념으로 해석한 책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 작가가 제주를 찾았다. 

갤러리 비아아트(관장 박은희)는 19일 오후 4시 김현경 작가를 초청해 두 번째 인문학 소모임을 개최했다.

김현경은 서울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와 문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에는 서울대, 덕성여대, 연세대 등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면서 독립연구자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2015년 3월 출간한 <사람, 장소, 환대>를 비롯해 <공간주권으로의 초대>(공저)가 있으며 <언어와 상징 권력>,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공역) 등을 번역했다.

최신작인 <사람, 장소, 환대>가 나온 지 1년도 넘었지만 제주에서 초청 강연을 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제주의소리>가 진행하는 서평 칼럼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를 통해 근래 소개되면서다. 이례적으로 고영자 박사(2016. 02. 05, 공동체의 문화적 신념), 이유선 교수(2016. 08. 29, 우리는 왜 어디엔 있어도 되고, 어디에선 안 될까?) 두 명이 함께 소개할 만큼 이 책은 현대인과 현대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날은 김현경이 자신이 쓴 <사람, 장소, 환대>를 간단히 요약·정리하면서 현장에 모인 참석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책에서는 다하지 못한 자유로운 예시를 들며 의견을 나눴다.

김현경은 자신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네 가지로 압축했다.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이란 개념은 장소에 의존한다 ▲사람이 되기 위한 싸움은 장소를 위한 싸움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람이 되려면 사회적인 환대가 필요하다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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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제주시에 위치한 갤러리 비아아트에서 강연자로 나선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 ⓒ제주의소리

살아있다고 해서 모두 사람이 아니라, 법이 만들어 놓은 기준과 타인이 인정해야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태아와 노예다. 법적으로 태아는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에서도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은 낙태를 허용하는 사례가 근거 중 하나다. 노예 역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판단했다. 18세기 미국에서 흑인 노예를 태운 배가 선내 물이 부족하자 노예 일부를 바다에 던져서 익사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 법원은 ‘이것은 말을 바다에 던진 것과 같은 경우’라면서 보험회사가 사업주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람도 아니지만 사람처럼 이름을 내걸고 자산을 취득하고 근로자를 고용하고 세금을 내면서 사업하는 법인 역시 사람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프랑스에서는 사람이 실종된 지 10년이 지나면 사망했다고 판단한다. 발견하지 못했을 뿐 살아있다 해도 그는 법적으로 사망한 존재가 되고, 반대로 목숨을 잃었어도 발견하지 못한 10년간은 법적으로 망자가 아니다.

이렇게 사람을 규정짓는 기준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살아있다고 해서 모두 사람취급을 해주는 것이 아닌 셈이다.

김현경은 “조선시대 노비들이 난을 일으킬 때 요구사항 중 하나가 ‘장례식을 지내게 해달라’였다. 당시 노비들은 사망해도 장례식을 지내지 않았다. 사회구성원이 아닌 물건이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철거촌,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여기에 사람이 있다’, ‘나도 사람이다’라는 구호가 왜 나올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현경은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장소라고 꼽았다. 영토가 없으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난민처럼 물리적인 장소도 중요하지만, 한 국가 안에서도 사회적인 장소를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노약자, 노동자 등)의 경우도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그렇기에 그들의 싸움은 늘 검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이 장소에,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김현경은 “사회가 소수자들을 환대(歡待)하는 것은 마치 난민에게 시민권을 줄 수 없지만 머물 수 있는 권리는 준다는 식으로 제한된다”면서 “환대는 그런 식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자리를 제공하고 권리를 인정하는 수준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인의 토지 사유화가 점점 사회문제화 되는 제주도의 사례를 들며 “사유화되는 공간이 늘어날 때 공적인 역할은 제한받게 된다. 공적인 공간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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