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쉼] 제주 해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개봉을 앞두고

29일 전국 개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은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만든 우도 해녀 이야기다. 물숨의 제작과정을 담은 책 ‘해녀의 삶과 숨- 물숨(나남출판사)’에서 고 감독은 어디서나 눈에 걸리는 수평선이 갑갑해 무작정 제주를 탈출, 훨훨 날다 운명처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영화를 만든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고 감독을 고향으로 발 돌리게 한 사람은 중국 오지에서 만난 미국 청년 제임스. 제주 해녀 이야기를 해주자 처음엔 믿지 않던 자칭 전 세계 탐험가 제임스가 고 감독에게 한마디 했다.

“만약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제주도로 가서 그 멋진 여인들을 먼저 촬영하기를 충고하고 싶어. 부탁인데 미국에서도 꼭 그녀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할게. 진심으로.”

그로부터 4년 뒤인 2008년 봄, 고 감독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시 7년이 흘러 제주 해녀 다큐멘터리 <물숨>은 전국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 고향 제주에는 살기 위해 숨을 멈춰야만 하는 여인들이 있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우도의 해녀들이 온종일 숨을 참은 대가는 이승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자식들의 공책과 연필이 되었다. 하지만 해녀들은 안다.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으로 변하고, 욕망을 다스리면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된다는 것을….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바다와 함께 울고 웃었던  해녀들에게서 배우는 명쾌한 ‘숨’의 한 수!” (네이버 영화에 소개된 물숨 줄거리)

개봉 전 이미 여기저기서 상도 많이 받고 좋은 평도 많이 받았으니 영화는 절대 봐도 후회하지 않을 거 같다. 더욱이 저 줄거리만 봐도  영화를 봐야겠다는 의지가 막 용솟음치지 않는가. 

여기에 하나 더 얹고 싶은 것은 영화 물숨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고 감독의 <물숨>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많이 부족해 부끄럽지만)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숨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숨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에 바다를 벗어 나온다. 그런데 그 한계를 잊도록 만들고 바다에 잡아 두는 것이 욕심이다. 그렇게 한계를 지나 버린 숨을 물숨이라 부른다. (책 171쪽)

물숨, 넘지 말아야 할 치명적인 유혹의 경계선. 책 <물숨>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것은 천수경의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과 ‘죽기 직전에 크리슈나(힌두교의 신)만 세 번 외치면 이승에서의 모든 죄가 다 소멸 된다’ 는 이야기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한 생각에, 죽기 직전, 모두 다 한 순간들이다. 그런데 이 한 순간을 결정짓는 것은 뒤로 너르게 펼쳐진 바다 같은 삶에서 매번 결정하는 순간순간들의 합일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인 그 한 순간을 잘 넘긴다는 것은  그 전에 매번의 순간순간들을 잘 넘기는 힘을 모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며 고희영 감독이 만난  그 한 순간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딱 <물숨>을 먹지 않을 만큼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열망과 욕심, 감독이기에 애매하고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한 생각에’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이 ‘ 죽기 직전’ 같은 절대적 상황임을 영리하게 알아채야 하는 지혜.

모든 예술가들은 대부분 한 번씩 ‘자기 함정’에 빠진다. 창작과정에서 전체의 흐름을 위해 꼭 빼야하는 부분이 있지만 너무 사랑하는 ‘그 부분 ’을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그것 이다. 더욱이 ‘물숨’은 장르가 다큐멘터리 영화이므로 감독은 항상 일정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열악한 제작 환경아래서 목숨처럼 건져낸 ‘ 한 컷’을, 넘쳐나는 욕망을 누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의 과급을 조절하고 지혜롭게 모든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보리빵’의 힘이 아니었을까.

아니, 뜬금없이 무슨 보리빵?

<물숨> 제작의 초창기 2년간은 고 감독의 ‘보리빵 배달’로 모두 채워져 있다. 고 감독의 거주지는 중국 북경, 북경에서 서울, 서울에서 제주... 제주에서 다시 배를 타고 우도로 가는 먼 길을 단 한 번도 멀다 않고 갔건만 돌아오는 것은 카메라만 켜면 욕부터 해대는 해녀 삼춘들의 냉대였다. 그래서 고 감독은 자전거 앞에 촬영 장비를 매달고 뒤에는 키보다 높은 보리빵 상자를 싣고 홀로 우도 섬 한 바퀴를 돌며 해녀삼춘들에게 빵을 배달했다고 한다.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이 년... 긴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다. 다행히 우도를 방문할 때 마다 보리빵 상자는 늘어났는데, 이는 그만큼 고 감독을 경계하지 않는 해녀삼춘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된다. 내가 우도에서 만난 첫 해녀 할머니이자 내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처음과 끝을 아프게 자리한 할머니. 눈부신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책 37쪽)

드디어 촬영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작되었을 뿐이다.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다고 촬영의 과정과 마무리가 쉬운 것은 아니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함이 없는 어려운 순간들을 ‘ 보리빵 나르던 ’ 내공으로  견뎌 가면서, 해녀삼춘들과 울고 웃고 하면서 고 감독은 길고 긴 대장정을 한걸음씩 내딛어갔다. 그렇게 세월은 갔고 작업은 진행되어 드디어 ‘물숨’은 완성됐다.

7년, 8년의 세월이 틈 없이 집약되어 1시간 10분의 러닝타임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될 영화 <물숨>. 그 영화에는 내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이야기와 영상, 그리고 삶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내 삶의 바다, 내 삶의 ‘물숨’ 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애써 만든 소중한 영상이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길 기대한다.

그리고 정말 더 솔직한 이야기 하나 더.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내겐 정말 의미 있는 영화다. 고희영 감독과 나는 여고동창생이다. 고교시절 수업시간에 숱하게 많은 쪽지들을 주고받으며, 비 오는 날에 학교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문예반 활동도 같이 했던 친구.

고교 졸업 후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을 살며 연락도 없이 지내다 우연히 몇 년 전 한 번 , 재작년에 한 번 만나 옛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늘 응원했다. 그리고 내가 그 친구를 아니까 영화 <물숨>의 완성도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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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섬(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물숨>이 잘 되어 친구가 다리 뻗고 자게 될 때쯤 연락 한 번 해보려한다.

“희영아, 우리 옛날에 탑동에서 김치 하나 놓고 막걸리 마셨던 것 생각나맨? 이번에 만나면 김치에 빈대떡이라도 더 해 막걸리 한 잔 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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