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대안학교 '다솜' 12명, 아름다운마라톤 5km 완주...인간승리에 참가자들 박수갈채 

힘들고 지쳤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은 ‘우리’를 향해 불었다. 마치 우리의 뜀박질을 방해하려는 듯. 누구는 갑자기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뛰었고, 완주했다. 몸은 땀으로 젖었고, 목에는 작은 메달을 걸 수 있었다. 


15일 제주시 구좌읍 해안도로 일대에서 펼쳐진 제9회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제주 다솜발달장애인대안학교(다솜학교) 학생들의 얘기다. 

다솜 학생 12명이 아름다운마라톤에 참가해 5km 코스를 완주했다. 완주라기보다는 '성취'나 '성공'이라는 말이 더 와 닿을 것 같다. 

다솜학교 정훈(28·정신지체 1급), 건우(27·지적장애 1급), 원철(26·정신지체 1급), 유리(20·발달장애 1급)씨, 경태(19·발달장애 1급), 수현(18·자폐성장애 2급), 한성(17·자폐성장애 1급), 승현(17·발달장애 3급), 정민(16·발달장애 1급), 진우(12·자폐성발달장애 1급), 성민(12·지적장애 2급), 지웅(11·자폐성장애 1급)이까지 포기한 학생은 없었다. 

▲ 제주 다솜발달장애학교 학생 전원이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 대회 5km 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 시작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다솜학교 학생들은 첫째 정훈씨부터 막내 지웅이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지능은 비슷하다. 어떤 부문에서는 5살, 또 다른 부문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한다. 

잘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정신연령은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아름다운마라톤은 ‘기부와 나눔’을 모토로한 기부 마라톤이다. 다솜 학생들이 참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989년 거북이 조기교실로 문을 열고, 자폐아동 교육을 시작한 다솜학교는 다솜조기교육원, 다솜어린이집 등을 개원하고 지금은 종일·방과후반을 운영중이지만, 비영리단체 대안학교인 다솜학교는 국가나 지방단체, 교육청 등으로부터 이렇다 할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제주에는 특수학교인 영지·영송학교가 있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 공모에 신청해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름다운마라톤을 한달여 앞두고 김덕홍 다솜학교 교장선생님은 아름다운 마라톤 조직위원회를 찾아 손을 내밀었다.

다솜 학생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위해 아름다운 마라톤 참가를 도와달라는 것, 그리고 매년 아름다운 마라톤 주최 측이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는 기부금을 다솜 학생들을 위해 써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김 교장은 주최측에 정성스레 준비한 자료를 꺼냈다. 학교 연혁부터 학생들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김 교장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에 대해 설명했고, 주최측은 큰 고민 없이 “알겠다”고 화답했다. 올해 아름다운 마라톤 참가비의 일부를 다솜학교를 위해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 아름다운마라톤 참가가 결정되자 연습에 돌입한 다솜학생들.
◆ 과정

아름다운마라톤 참가가 구체화되자 다솜학생들은 지난달 23일부터 매주 금요일 대회가 열리는 제주시 구좌읍을 찾았다. 

다솜학생들은 처음 가본 곳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는 명대사와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란 대사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 ‘말아톤’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된다.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자폐성장애인 초원이. 엄마가 없으면 혼자서 밥도 차려먹지 못하는 초원이는 20살 청년이 됐지만,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이다. 

낯선 지하철에 혼자 남겨진 초원이.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초원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얼룩말을 발견한다. 기쁜 마음에 얼룩말을 만졌다. 하지만, 초원이가 만진 것은 젊은 여성의 신체였다. 

이 장면에서 초원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며 용서를 구했고, 멋모르는 초원이는 엄마가 한 말을 계속 따라한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만약 초원이가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 아이였다면 용서될 수 있었던 부분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단적인 예지만, 발달장애인들에게 낯선 곳 방문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을 무한적으로 반복해야만 습득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마라톤에 맞춰 연습하는 다솜학생들. 처음에는 운동장 1바퀴. 그 다음에는 주로까지...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다솜 선생님들은 궂은 날씨에도 학생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운동장 1바퀴. 나중에는 주로까지.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연습을 통해 다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두 그룹을 나눴다. 그나마 부상 없이 5km를 달릴 수 있는 학생들과 혹여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는 학생들로. 

그저 기부금을 받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다솜 학교 교사들 입장에서는 아름다운마라톤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완주하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누구는 달리다 그 자리에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고, 누구는 계속 넘어졌다. 그래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 김덕홍 교장(오른쪽)의 구령에 맞춰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다솜 학생들.
◆ 도전

제9회 아름다운마라톤 참가자는 4000여명. 대회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구좌체육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다솜 학생들도 파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대회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다양한 홍보부스가 마련됐다. 다솜 학생들 입장에서는 신기한 물건이 가득했다. 

아름다운마라톤 참가자들 대부분은 이번 대회 참가비 기부처가 다솜학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솜학생들에게 많은 시선이 쏠렸다. 

다솜학생들은 어리둥절한 듯 주변을 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몇 차례 방문했던 장소지만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풀코스와 하프코스, 10km 참가자들을 위한 총성이 울렸다. 뒤 이어 5km 코스 참가자들이 출발선에 섰다.  

공식 코스인 김녕~종달 해안도로는 최근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뽑힐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코스를 달리다 보면 김녕해수욕장, 월정해수욕장, 하도 해변, 문주란 자생지 등 멋진 풍경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5km코스는 유독 어린 아이들이 많다. 산책 겸 가족단위 참가자가 많기 때문이다.  

다솜 학생들은 참가자 제일 뒤에 섰다.

너무 느려서 혹여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다솜 학생들이 더 긴장할 수도 있어 다솜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선택했다. 

출발 총성이 울렸다. 수현(18·자폐성장애 2급)이 등 코스를 달릴 수 있는 1그룹과 정훈(28·정신지체 1급)씨 등이 걷기 위한 2그룹. 

5km 코스 참가자들이 어느정도 달려 나가자 김 교장의 구령에 맞춰 1그룹 학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은 계속 됐다. 그러다 지친 학생들의 발걸음이 느려지면 김 교장은 “자, 그만”이라고 외쳤다. 

그럼 학생들은 멈춰섰고, 조금씩 걸었다. 코스 반대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달리기를 멈춘 뒤 불어오는 바람은 흘린 땀방울을 식혀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달릴 때는 아니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바람이 미울 정도였다. 더 강하게 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 수현이 무릎에 밴드를 붙여주고 있는 김덕홍 교장.
2km 정도 달렸을까. 

수현이가 ‘아’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김 교장이 다가가 살펴보니 무릎 쪽 피부가 조금 빨갛게 달아올랐을 뿐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김 교장이 “수현아 계속 할 수 있어?”라고 묻자 수현이는 대답이 없었다. 

김 교장이 “수현아 아파? 밴드 붙여줄까?”라고 다시 물었고, 수현이는 “네”라고 대답했다. 김 교장은 익숙한 듯 주머니에서 밴드를 꺼내 수현이 무릎에 붙였다. 

밴드를 붙여주자 수현이는 마치 상처가 다 나은 것처럼 씩씩하게 일어났다.

김 교장 구령에 맞춰 학생들은 조금씩 걸었고, 다시 구령이 시작됐다. 뜀박질도 시작됐다. 달리고 달리고 반환점을 돌았다. 마침내 처음 출발했던 운동장이 보였다. 

김 교장은 “다 와간다”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달리고, 걷기를 반복했다. 

다솜 학생들이 운동장에 도착하니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감동의 레이스'에 대한 응원의 박수였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모든 발걸음을 멈췄다. 학생들은 5km 구간 완주자 부스로 향해 메달을 받았다. 
▲ 골인점에 도착한 다솜 학생들.

◆ 응원

올해 대회 기부처인 다솜학교 학생들이 직접 아름다운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기부 행렬이 잇따랐다. 

특히, 외국인들의 참가가 돋보였다. 대회 당일 제주 곳곳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기부와 나눔’의 이벤트. 취지에 공감한 몇몇 외국인들 주도 아래 주변 친구들에게 참가를 독려해 외국인 참가자 수는 1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자신들은 마라톤 티셔츠 등 기념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최측에 전해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들은 받지 않아도 좋으니 참가비를 다솜학교에 전달해달라는 취지였다. 

▲ 아름다운마라톤 개최 전 자신의 아들이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준비하고 있다며, 참가를 독려하는 도내 거주 외국인. SNS 갈무리.
푸른 눈의 참가자들 요청에 공감한 조직위는 외국인들은 위한 참가자 부스를 별도로 마련했다. 다솜학교 부스 바로 옆으로. 

외국인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뜀박질로 다솜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렸다. 

외국인 참가자 유스티나스 킨더리스(Justinas Kinderis)씨는 10km 코스 남자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30세인 킨더리스씨는 리투아니아 근대5종 국가대표 출신이다. 2010년 세계근대5종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차지한 실력파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지난 8월 열린 브라질 리우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마라톤을 처음 뛰어본 그는 “이번 마라톤을 진심으로 즐겼어요. 사람들이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것도 느꼈어요.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주 친절했어요. 멋진 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홍권일(51.그린마트 대표)씨는 아름다운마라톤을 통해 다솜학교에 421만9500원을 기부했다. 

▲ 1m에 100원씩. 풀코스 완주에 성공해 421만9500원을 다솜학교에 기부한 홍권일씨(오른쪽).
아너소사이어티는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으로 1억원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원 기부를 약속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홍 씨는 유통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현재 그린마트 외도점 대표를 맡고 있다. 부인 한명옥(그린마트 도남점 대표)씨와 함께 지난해 12월 23일 각각 1억원씩, 총 2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 부부가 나란히 ‘아너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홍씨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일컫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통해 풀코스 완주를 다짐했다. 

마라톤에 입문한 지 이제야 겨우 10개월. 4시간 30분이 넘는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지만, 모두가 그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1m에 100원씩 자신이 달린 만큼 기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완주에 성공한 홍씨는 421만9500원을 기부했다. 그는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뻐했다.

또 아름다운마라톤 홍보대사인 1급 시각장애인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은 현장에서 남극마라톤 참가기를 책으로 엮은 ‘남극의 꽃’ 사인회를 열고 판매금액을 전액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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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마라톤 대회 현장에 도착한 저금통들. 모두 기부금으로 쓰인다.
아름다운마라톤 현장에도 저금통 4개가 도착했다. 

매해 행사장을 찾아 저금통을 기부하는 일명 ‘조랑말 부부’ 양전국·허정회씨가 올해도 현장을 찾아 지난 1년간 모은 돼지저금통 2개를 전달했다.

제주시 용담동 ‘먹돌새기’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제주마라톤클럽 회원 양유언·고정순씨 부부도 이날 주최측에 돼지저금통을 건넸다.

어린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을 보탰다. 대회가 끝나갈 때쯤 김도윤(7), 성엽(5), 범준(3) 삼 형제가 2~3년 간 소중히 간직한 저금통을 선뜻 기부해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제주도청 공무원노조(위원장 고재완)에서도 노조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소중한 성금을 내놓았다. 노조의 기부 행렬은 매년 이어지고 있다. 

또 행사에서 경품에 당첨된 참가자들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기부금으로 전달했다. 

▲ 걸어서 5km 구간을 완주한 다솜학교 2그룹.
◆ 새로운 시작

처음부터 5km 구간을 걸었던 2그룹까지 완주에 성공했다. 다행히 큰 사고도 없었다. 

이들이 부스에 모였다. 

부스는 다솜학생들 가족들로 시끌벅적했다. 몇몇 부모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완주 메달을 손에 든 학생들은 부스에 가만히 앉았다. 김 교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 5km 구간을 완주한 뒤 기념 메달을 받고 있는 다솜 학생들.

“우리 다같이 사진 찍자”

다솜 학생들과 선생님, 자원봉사자, 또 기부자들까지 모였다. 다솜학생들은 5km 코스 완주로 받은 기념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 앞에 카메라가 등장하자 학생들은 그제서야 대회가 끝났음을 느꼈는지 웃기 시작했다. 너무나 밝은 미소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김 교장은 다솜 학생들이 탈 없이 완주한 것만으로도 ‘기적’ 같다며 기뻐했다. 

김 교장은 “우리 아이들(다솜학생들)이 달릴 때마다 모두가 박수를 쳐줬고, 응원해줬다. 너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어 “아이들도 기특하다. 낯선 장소에서도 탈 없이 잘해줬다. 또 끝까지 완주했다. 사람들에게 박수 받았다. 앞으로도 이 아이들이 박수 받는 삶을 살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아이들과 웬만하면 익숙한 장소만 다니고, 외부활동을 자제했다. 오늘을 계기로 더 많은 외부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다음 대회 참가도 고민중이라고 귀띔했다. 

김 교장은 “몇 차례 안됐지만, 연습해 완주에 성공했다. 행사가 끝나고 자신들이 나온 사진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다음 대회가 돌아올 때쯤 아이들에게 마라톤 대회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작년처럼 또 마라톤 참가할까’라고 물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한다고 하면 아름다운마라톤 대회에 또 참가하려고 한다. 혹시 모르니 그때까지 아이들이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 다솜학교 학생들과 가족, 관계자, 기부자 등이 모여 밝은 표정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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