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일사천리-도의원 압박 등 이례적 행보 ‘씁쓸’...넥타이 풀고 반대편과도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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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본질적으로 파괴를 수반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용어가 거북할 때가 많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만큼 개발과 보전의 조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땅덩어리가 좁은 제주도는 매번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 하는 태생적 운명을 지녔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파괴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산고(産苦)일지 모른다. 슈퍼 갑(甲)인 당국이 반대편을 향해 으름장을 놓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제주시 오라관광단지를 대하는 제주도의 태도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일단 모든게 일사천리다. 논란이 분분한 사안이라면, 한 두 번쯤 여론의 눈치를 살필 법도 한데, 오라관광단지는 예외다. 거침이 없다. 불과 몇개월 만에 경관-교통-도시·건축-환경영향평가 심의가 마무리됐다. 그 흔한(?) ‘재심의’ 한번 없었다. 이제는 사실상 도의회 동의 만을 남겨놓았다. 

제주도의 민첩한 대응과 그 수위도 너무 이례적이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이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전의(戰意)를 다지는 듯하다.  

시민사회의 공동성명이 나오자 이틀 후 간부들이 총출동하다시피 사실상의 기자회견을 자청해 그들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요지는 밀어주기나 특혜는 없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장황했지만, 논란의 핵심을 비켜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오라관광단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다. 환경자원 총량관리제와 따로 논다는 것과, 그 전 사업자의 개발사업 승인이 취소됐는데 지하수 허가가 유효하느냐는 것이다. 관련 법률 조항과 국토교통부 측의 답변 등 나름대로 근거까지 제시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강경식 의원이 의정단상에서 한 ‘5분 발언’을 문제삼았다. 두 차례나 강 의원을 대놓고 압박했다. ‘무책임한 의혹 제기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물론 의정 발언이라고 다 용인될 수는 없다. 국회의원처럼 지방의원에게 면책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관피아’ 의혹이나 ‘원희룡 지사 관여설’은 너무 앞서갔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짚어보면, 5분 발언은 청정과 공존을 앞세운 원희룡 도정의 미래 비전에 배치된다는 취지였다. 소신발언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했다. 

사실 오라관광단지가 어떤 사업인가?

사업비만 6조2800억원. 역대 최대 규모다. 운영 시점의 활동 예상 인구는 하루 6만명. 여기서 쏟아지는 하수, 오수, 쓰레기는 감당하기 버거울게 뻔하다. 강 의원의 표현을 빌면, 마라도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위성도시 하나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런 사업이 한라산 자락인 해발 350~580m에 추진되는데, 아무 소리 없는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24일에는 공교롭게도 반대 주장에 십자포화가 가해졌다.

강 의원의 해명을 촉구하는 제주도의 두 번째 보도자료가 나오고, 오라동 일부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환경단체가 오라관광단지를 오해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경영자총협회(제주경총)는 ‘경제계의 입장’이라며 사실상 오라관광단지 정상 추진을 요구했다. 일사분란함 같은게 느껴졌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절묘했다. 특히 일부 주민은 기자회견도 모자라 행정사무감사 중인 강 의원에게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보기드문 상황이 연출됐다. 강 의원은 그들에게 에워쌓이듯이 했다. 누구나 주장은 펼 수 있으나, 방식 면에서 못내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지난 19일 제주도의 몇몇 고위 간부는 각 언론사와 접촉했다. 좋게 말해 오라관광단지 돌파구를 찾기위한 시도였지만, 시중 여론을 떠보기 위한 의도가 읽혀졌다. 이 자리에서 오라관광단지는 청와대가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사업이라는 귀띔도 있었다. 

그러더니 하루가 지나자마자 반박 기자회견이 열렸고, 제주도의 ‘대응 모드’가 확 달라졌다. 

따지고 보면, 오라관광단지를 둘러싼 논란의 책임은 누구보다 원 지사에게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8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초청 간담회를 돌이켜보자.

당시 원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제주도의 ‘창조관광 우수사례’를 발표하면서 오라관광단지를 내세웠다. 

“신화역사공원 투자 사업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끌어 현재 투자 유치된 오라관광단지 사업 승인 시에도 적용함으로써 좋은 사례가 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아직 인·허가 절차가 남은 때였다. 왕왕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앞둔 사안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듯이, 원 지사도 사업 승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뒤따랐다. 

그 전에도 원 지사는 “오라관광단지는 이미 사업을 추진한지 오래된 곳으로 일차적으로 2년 전에 제시했던 ‘산록도로-평화로 위 한라산 방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개발 가이드라인 바로 밑에 있지만, 지대가 높다는 이유로 개발을 일절 못하게 한다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과연 어느 누가 이 말을 듣고도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이 발언이 있고 나서 열린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을 조건부로 의결했다. 

그래놓고 제주도는 강 의원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면서 “오라관광단지는 지금까지 승인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린 적이 없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면밀히 검토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소가 웃지 않을까 모르겠다.

원 도정이 유독 오라관광단지 앞에 다급해 보이는 이유가 따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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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원 지사가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해 ‘중산간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을 때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흐르면서 이 가이드라인은 ‘개발의 면죄부’로 변질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라인에만 걸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가이드라인이 만능 열쇠는 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제도나 방침 보다는 지도자의 의지로 귀결된다. 넥타이 풀고 반대편과 마주하는 원 지사의 모습이 그립다.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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