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29)

   
식물 이름에 '갯'자가 붙은 것은 바다근처에 자라는 것입니다.
'바다'는 식물이 자라기에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여전히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장구채의 종류도 여러가지입니다만 역시 제주의 검은 바위에서 고고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꽃을 피우는 갯장구채를 소개해 올립니다.

'장구채'라는 이름은 꽃의 모양새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꽃받침부분에도 꽃이 붙어만 준다면 영락없는 장구입니다. 저 장구채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덩덩 덩기닥 쿵딱!'하는 장구의 소리말고 잔잔한 파도소리와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의 소리까지 담아서 휘몰아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의 시간을 가지면 가질 수록 늘 아쉬운 것은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소중한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잘 모르고 지나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 들꽃, 오름과 한라산, 나무에 이르기까지 너무 아름답고 예쁜데 우리의 아이들이 학원과 학교만 오가며 그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들을 지나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이 그 작은 들꽃을 한번 지긋하게 쳐다볼 수 있는 시간도 없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구나!'

이런 감탄사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올 때 고향을 사랑하게 되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갯장구채는 바닷가근처의 바위에 올라가면 흙하나 없는 것 같은데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그 뿌리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지난 해 들꽃 중에서 산야에 흔하디 흔한 솜방망이를 캐다 정원에 심었습니다. 기대를 했는데 올해 꽃대를 내는가 싶더니 멀쑥하게 커서 풍성한 꽃을 피우긴 했는데 원래 '솜방망이'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꽃방망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꽃은 자연의 상태에서 피어날 때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듯 합니다. 조금 부족하고 목마름이 있고, 갈증이 있고,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줄기가 부러지는 아픔이 있지만 그럼으로 더욱 더 아ㅓ름다운 꽃을 피워가는 것이 들꽃들입니다.

갯장구채.
화창한 날이면 평온한 바다를 바라보며 그 평온함을 배워가고, 너른 바다의 마음을 담아 그 향기들을 품기 위해 척박한 바다, 그 중에서도 흙하나 없는 바위틈에 자리잡고 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바다가 그리워 갯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저 먼 바다의 시작으로부터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의 그 곡선을 따라
잔잔한 바람을 타고 춤을 춰 보기도 합니다.

어떤 날 광풍이 불면
바다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따라
미친듯 뿌리가 뽑혀나가도 좋을 듯
온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합니다.

하루가 시작될 무렵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해맞이를 하며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파도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 날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바람이 살가운 날에는 한껏 흐드러짐으로
늘 한 마음, 그리움으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에
에메랄드빛 바다거나 검푸른 바다거나
잔잔한 바다 갈매기 끼룩 나는 바다거나
폭풍우 포효하는 바다거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운 마음으로 껴안아봅니다.

[자작시 / 갯장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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