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2) 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黃毛, 붓을 매는 데 쓰는 족제비털) 못 된다

사람에게는 천성(天性)이 있고, 동식물에게는 물성(物性)이라는 게 있다. 

천성이나 물성은 유전자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 고유의 속성이다. 그러니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쉬이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그것에 변화를 일으키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만 일정 수준에 그칠 뿐 뜻한 대로 온전히 되기는 힘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다. 사람은 훈육하고, 동식물은 고도의 육종 기술 개발을 위해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험한다.

인간 교육은 단적으로 일정한 환경요인에 훈육을 가함으로써 후천적인 변화를 획득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이다. 방법과 과정 그리고 기술에 관한 이론의 적용이 놀라운 결과를 얻어내는 수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천부적 재능이 없어도 그에 못잖게 후천적인 재능으로 각광을 받는 경우다. 천부적 재질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시인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서화나 조각, 회화나 음악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예가 많음도 충분히 보고 겪는 일이다.

동식물 쪽은 더욱 놀랍다. 새로운 품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코스모스는 더 이상 가을꽃이 아니다. 화원에는 사철 만개한 국화들, 그것도 울긋불긋 각양의 빛깔과 모습이 하도 낯설어 길 가다 걸음들을 멈추게 한다. 한여름에 먹던 수박을 눈 펄펄 내리는 한겨울에 먹는 기분은 묘하다. 계절의 경계를 허물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이 똑같이 복제돼 나오는 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곤 한다. 인간 복제도 가능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어, 목전의 극단적인 변화가 매우 혼란스럽거나 두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이런 변화 추구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설령 변화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그 적용은 제한적으로, 국한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 다. 그러니까 타고난 사람의 천성이나 동식물의 물성은 대체로 원형을 잃지 않고 유지 보존해 있을 것이란 예견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훈육을 통해 습관을 바르게, 좋게 고치는 것은 훈육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다. 원하는 대로 고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습관이라는 것도 제2의 천성이 아닌가. 하지만 그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아무리 훈육해도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범법을 일삼거나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 길에 담배꽁초나 휴지를 버리는 행위, 소소한 것으로 교통법규 위반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그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천성의 견고함을 질리게 실감하곤 한다.

그뿐이랴. 흔히 관행이라 여겨 오는 것들,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들 이합집산의 구태, 아무렇지도 않게 눈 감고 아옹 하는 식의 야합과 그리고 체신 머리 없는 무책임 무분별한 말들. 관행적인 극한 대립의 여야라는 정파. 거슬러 오르면 왜란으로 국운이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에서 적에게 쫓기면서도 그칠 줄 모르던 우리 역사 속 당파 싸움의 DNA를 털어내지 못한다.

잘 꿰찼다. 세상을 읽는 제주 선인들의 안목이 새삼 놀랍다. ‘오그라진 개꼬리를 곧게 편다며 삼 년을 대롱에 찔러둔다’고 그게 곧게 펴질 턱이 있으랴. 팽 하게 오그라진 개꼬리인데, 그건 막대기에 꿰어 둬도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물성이 오그라진 것이라 그런다. 가능하지 않다. 골백번 맞는 말이다.

비단 개란 녀석에 그치는 게 아니다. 4월 들어 반짝 장마가 오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산야로 나가 고사리를 꺾는다. 게슴츠레한 숲가 는개 속에 땅을 뚫고 우쭉우쭉 솟아난 고사리들. 한데 고것들 막 솟아 오른 게 신기하게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 않나.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신기하게도 굽다. ‘굽는 것’, 그것은 타고 난 고사리의 물성이다. 

오그라진 것은 펴야 한다. 짜장 저대로 펴지지 않으니 곧게 펴도록 해야 한다. 동식물이야 그런다 치고 사람은 다르다. 오그라진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사람의 세상이 흔들리면서 요동쳐 사회가 혼탁해진다. 심성의 순화, 정신의 정화는 필수다. 사람을 꾸준히 훈육해야 하는 바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그라진 개꼴랭이’는 오랜 옛날에 섬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냈을 테다.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몽니다리 심성 아닌가. 마을에서 몇몇 학동들이 훈장 집에 열어 놓은 서당에서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읽고, 부녀자들은 어느 집에서 야학하던 시절, 아마도 글 읽듯 그랬을 것이다. 

서당과 야학에서 인륜을 배우고 사람 사는 이치를 터득한다 해도 타고난 습관이나 성질을 바로 잡는 데는 힘이 부쳤을 것. 오죽 애가 탔으면, ‘오그라진 개꼴랭이 삼년 대롱에 찔러도 오그라진 냥 있나’ 했을꼬. 

우리 선인들 애간장 타들어 가며 한소리 하던 게 지금 귓전으로 온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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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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