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black swan), 검은 백조란 상상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블랙 스완이 나타났다. 그런데 개표 당일 밤 블랙 스완의 당선을 축하하는 만찬장을 도중에 뛰쳐나간 사람이 있었다. 트럼프의 가장 가까운 측근의 한 사람인 칼 아이칸은 식사를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가 S&P 주가지수 선물을 대량 매입했다. 블랙 스완의 등장으로 놀란 시장이 잠시 주춤하자 이를 매입기회로 본 것이다. 주가지수는 그의 예상대로 바로 다음날부터 크게 반등했다.

정치나 행정 경험이 없고 오직 저돌적인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지 않다. 그러기에 다른 정치인들과는 운신의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는 낙후된 도로, 교량, 터널, 공항, 학교, 병원건물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약 1조달러를 지출하겠다고 한다. 민자도 동원하지만 대부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한다. 동시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의 35%에서 최소한 영국의 수준인 20%로 낮추어 GDP의 3.5% 추가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출은 늘고 세수는 줄어드는 데 따른 재정 건전성 훼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본래 공화당은 균형예산을 주장해왔다. 정부부채를 줄일 것을 요구하며 오바마 정권과 재정절벽 몸싸움까지 했던 정당이다. 트럼프는 당내의 재정보수주의와의 일전도 불사할 기세다. 미국의 주식이 발 빠르게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배경이 이와 같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지출을 늘이고 세금은 줄여주는 정책을 과거에 몰라서 안 쓴 것이 아니다. 재정건전성이라는 규율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 미국정부의 부채비율은 76%,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35%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높은 수준이다. 세계2차 대전 중의 78%에 필적하는 크기다.

재정건전성을 도외시하는 저의

트럼프에게는 부채 비율을 걱정하지 않고 지출을 늘일 수 있는 비법이 있는 것일까?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 즉 정부채권 발행 잔액은 14조3000억달러다. 이 중 2조4000억달러를 미 연준이 가지고 있다.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소위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중에서 사들인 것이다. 이 숫자는 해당 채권의 만기가 남아 있어 2014년 이후 거의 줄어들지 않았는데 미국 GDP의 13%, 미국 정부부채 총액의 17%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6년에 걸쳐 연준의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통화공급을 위한 공개시장조작의 명분으로 사들인 금액의 합계가 어느 사이 임계점을 넘어 시장조작의 탄성을 잃었다. 이제는 이를 시중에 도로 내 놓을 수도, 만기가 되었을 때 미국 정부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항간에서는 만기가 도래하면 새 채권 또는 만기가 없는 영구채(永久債)로 교환하는 방안과 함께 어차피 장래에도 정부가 갚지 않을 복안이라면 차제에 정부의 빚과 연준의 자산을 상계 처리하는 방안도 간헐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연준의 손실과 정부의 이익이 서로 상쇄되어 국가 전체적으로는 잃는 것이 없다.

영국의 전 금융감독원장 어데어 터너(Adair Turner)는 "헬리콥터 머니"를 옹호한다. 이는 중앙은행이 직접 정부에게 돈을 쥐어주고 정부는 이 돈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정부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간접적인 경로로는 경기를 부양하는 힘이 약하다고 보아 한 단계 진화시킨 것이 "헬리콥터 머니"다.

연준과 정부간의 상계(相計) 가능성

그러나 이것도 정부의 부채비율을 늘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래서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 중앙은행이 가진 정부채권의 소각이다. 제닛 옐런 연준의장의 임기는 2018년까지 남아있지만 연준 위원회의 공석 2자리는 그 전에 임명이 가능하다. 만일 트럼프가 고리타분한 금기(禁忌)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먹고 내리면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은 즉시 13%포인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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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선된다.

화폐 금융시장의 비정상은 너무 장기간 지속되었으므로 정상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바늘 허리에 실을 꿰듯이 자산과 부채의 상계라는 "마(魔)의 한 수"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물론 마침 미국의 군사외교적 불개입주의로의 선회 시기와 맞물려 미국의 G1 지위까지 한데 흔들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1월 16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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