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자고로 아무리 절대왕정이라도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었다

역사적 변곡점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유린을 규탄하는 국민들의 촛불시위가 다시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에서만 광화문의 사방의 수 킬로미터에 걸친 차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숫자가 사상최고인 100만 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제주에서도 시청 앞 넓지 않은 공터가 턱없이 비좁음을 증명하듯 버스차선까지 침범해가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시민들이 족히 일천 명은 넘어 보였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마녀의 주술에서 풀린 듯 그동안의 마법의 잠에서 깨어난 수많은 시민들의 끝없는 시위 행렬은 저 멀리 구중궁궐의 마녀성을 뿌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이에 버금가는 대규모의 촛불시위가 있었지만, 정권타도를 내걸었던 일반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군부독재를 종식시켰던 87년 직선제 항쟁 이래 정확히 30년만이다. 그동안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순항하던 우리의 민주주의. 오랫동안 정치에 무심했던 필자의 게으른 발길마저 시청 집회에 닿은 것은 민주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했던 민주주의가 MB의 삽질 정부를 거쳐 박근혜의 무당 정부에 이르러 수십 년 전 군부독재정권 때와 다를 바 없는 암흑시대로 역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위기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촛불의 진정한 민의

이날 시청 집회는 한 마디로 직접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과거에 비추어 청소년들이 집회의 주류를 이루는 것도 놀라웠지만, 앞뒤 재지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들을 군중들에게 표출하는 그들의 솔직함과 대담함은 분명 필자와의 세대 차이를 실감케 하는 모습이었다. 이 집회를 직접 경험하면서 분명히 확인한 것은 현 정국에 대한 현장의 민의와 기성 정치인들의 생각과의 엄연한 괴리였다. 촛불시위의 시민들의 일관된 요구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다. 그럼에도 현 정국의 난맥상에 대한 일부 책임이 있는 기성 정치인들이 아직도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추해 보이기만 하다. 
IE002050578_PHT.jpg
▲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청와대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남소연.
184186_210798_4838.jpg
▲ 12일 오후 제주시청 어울리마당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4차 촛불집회.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특히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촛불의 성난 민심이 단순히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한 사이비 무당의 권력농단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10년에 이르는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의 민심과 시대에 역행하는 반민주적 정치로 인해 누적돼 온 것이다. MB 정부가 각종 무모한 토목공사와 수상한 해외자원 투자 등으로 미래산업에 대한 투자재원을 탕진하느라 투자의 적기를 실기하고 만성적인 청년실업을 초래한 것은 차라리 약과에 불과하다. 그의 가장 큰 과오는 민심을 탄압하고 국정원 댓글부대와 같은 공작정치를 폄으로써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헬게이트’를 연 데 있을 것이다. 

무당정치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세월호 참사, 노동법 개악, 한일 위안부 졸속협상, 사드 배치, 백남기 농민 물대포학살 등 무당의 섭정정치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반민주적 정치행위들이 줄을 이었다. 이 모두가 국내적으로는 재벌과 기득권층의 이익을,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행위들 뿐이었다. 무당의 주술에 혼이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정치를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있었을까. 그로 인해 희생된 것은 힘없는 국민들뿐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삼백 명 이상의 단원고 학생들의 인명이 눈앞에서 수장되고 있어도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행적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현장의 해경은 사실상 구조작업에서 손을 놓아 버렸다. 이런 엉터리 정부가 또 어디 있을까.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책임, 그리고 사고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조사조차 방해를 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유족들을 줄기차게 탄압해 왔다. 그러고도 이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상최악의 사고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대통령이고 고위직 공무원들이고 국회의원들로 버티고 있으니 우리 민주주의의 시스템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닭짓을 한 정치인이라도 선거철만 되면 대통령의 속보이는 거짓웃음 사진을 내걸면 콘크리트 지지층의 ‘묻지 마’ 투표로 무조건 당선된 것은 우리 모두가 마녀의 주술에 홀렸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근대의 합리주의적 산물인 민주주의가 아차 하는 사이에 수천 년 전 단군왕조의 신정(神政)시대로 돌아가 버린 기분이다. 그러나 고조선 시대에도 국민들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탄압하고  핍박했으면 왕조가 결코 성치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IE002047977_PHT.jpg
▲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공동취재사진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대통령의 잘못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전적은 아니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의 책임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으면서 이기적인 대통령과 표독스럽고 탐욕적인 사이비 무당 밑에는 또한 도덕과 정의를 살피지 않고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탐관오리들이 들끓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당의 점괘에서나 나옴직한 대통령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맹종하며 서민 탄압에 앞장섰던 호위무사 여당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뿐만 아니라 중과부족 탓만 하며 무당정부의 반민주적 정책들에 대한 견제책임을 방기하고 하릴없이 고액연봉과 특혜만 꼬박 챙기는데만 골몰했던 야당의원들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대통령의 애완견이었던 언론들은 용비어천가로 대통령을 예찬하기에 바빴다. 민주열사들의 헌신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들로 인해 이제 세계로부터 웃음거리가 돼 버린 지금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의 정치적 집회는 항상 역사적 변곡점이었다. 지난 두 차례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고로 아무리 절대왕정이라도 민심을 이겼던
183493_209931_0909.jpg
▲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권력은 없었다. 권력에 집착해 민심을 억누르려 했던 모든 정권은 오히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최근 한 원로 정치인은 “박근혜는 고집불통이라 절대 내려올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어느 시사평론가는 “내려올 사람이 아니니 끌고 내려오라는 소리”로 해석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가장 바람직한 수습책은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비록 즉각 퇴진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지만 민주시민들은 과거의 비극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용단을 바란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