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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글과 함께 살아온 제주시인 문충성 씨의 스물 두 번째 시집 <귀향>(도서출판 각)이 발표됐다. 

시집에는 <귀향> 등을 비롯한 89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지난 6월 <마지막 사랑 노래>에 이어 5개월여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출판사는 “시인의 작품은 그동안 시세계가 변주하고 확장했지만, 그 안에서 일관된 정서를 유지한다.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에 대한 염원”이라며 “단순히 무분별한 난개발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옛날을 추억하며 복고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귀향>에서 표현하는 고향이란, 이제는 사라져 돌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면서 시적 화자가 마음을 열 수 있는 안식처로 나타난다”고 소개한다.

특히 이전까지 작품과 비교하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어조 또한 어둡고 무겁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나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책머리에 말하고 있는 시인처럼, 이 시집으로 읽는 이들이 돌아갈 ‘고향’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석했다.

귀향
문충성


바다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고향 가는 길
칼이나 아시아나나 아무 항공기라도 타고
하늘 길 열어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지만
그 비행기 속
나도 날아갑니다
비행기 타면 한 시간이면
고향에 간다고 합니다
이미 잃어버린 고향
찾아가 봐도
옛 동무들 하나 없습니다
낯선 이들 되레
이방인처럼 대합니다
이방인이 됩니다
“누굴 찾으시는지요” 전혀
귀 선 말입니다
“누겔 찾암수과?”
이렇게 말해야 찾는 이 얼굴
생각이 나겠지요
외지인이 되어 오늘날
고향에 와도
고향은 없고
옛 동무들도 없고
초가들은 회색 콘크리트 숲 이뤄
그새 사라져버렸네요
중학생 때 만났던
이광수
김동인
이효석
동백꽃 김유정
현진건
박태원 삼국지
김소월 진달래꽃
정지용 향수
넓은 벌도 동쪽 끝도 다 사라져버렸어요
얼룩빼기 황소도

김동현 문학평론가는 추천사에서 “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태풍처럼 들끓었던 청춘의 욕망도 어느새 거울처럼 단단해진 무상(無常)의 세계에 도달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때 그가 말하는 무상이란, ‘세상 모두가 덧없다’라는 자포자기의 무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순간도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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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충성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을 잊지 않는 치열함을, 용암처럼 간직한 무상이다. 제주바다의 깊이를 온몸으로 껴안은 통찰의 무상”이라고 작가를 높이 평가했다.

1938년 제주시 ‘남문배꼍’에서 태어난 작가는 오현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신문사 문화부 기자생활을 거쳐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로 있다.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주바다>(1978), <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1997), <마지막 사랑 노래>(2016) 등이 있다. 시선집, 문학연구서, 문학번역서도 펴냈다. 

도서출판 각, 16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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