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끝없이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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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9) 매튜 배틀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고영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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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튜 배틀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지식의숲. 강미경 옮김.

일찍이 고전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만큼 오래된 미국 영화 <러브스토리>(아더 힐러 감독, 1970년)를 기억하시는가? 물론 그 영화가 개봉될 당시 필자는 갓난아기였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와 극장가를 달구고 그 주제곡인 ‘눈싸움(Snow Frolic)’이 인기절정에 달했던 것은 나의 학창시절이었다. 그 영화 속엔 명장면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올리버(라이언 오닐 분)가 제니(알리 맥르로우 분)를 처음 만나게 되는 하버드 대학 도서관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영화에서 제니는 대학교 도서관 사서(librarian)로 등장한다. 긴 생머리에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가슴에 책을 한 아름 안고 도서관을 드나드는 모습하며, 사방에 책들이 빼곡하게 꽂히고 조명 사이로 지성이 넘치고 엄숙함과 경건함이 한층 배가되는 영화 속 도서관이라는 세계가 어찌나 멋지던지! 또 그런 곳에서 사서 제니와 법대생 올리버의 사랑이 싹트기까지 했으니…….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소위 문명국가의 ‘도서관다운 도서관’이란 것을 아마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삼다삼무의 섬에서 처음으로 접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면 영화 <러브스토리>가 개봉되고 한창 인기절정인 때는 그때대로 ‘도서관다운 도서관’이라는 시대적 원형(Archetype)이 존재했었던 것 같다.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소장된 책들을 대출받기 위해 그곳에 비치된 색인목록카드를 조회한다든지, 미궁 같은 서가 속 책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서는 사서대로 효율적으로 책을 관리하고 찾을 수 있도록 책을 분류하고 색인카드를 끊임없이 추가 작성·수정하곤 했다. 필자에게도 익숙한 도서관 풍경이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아날로그형 색인카드사용은 구시대 유물이 되었다. 대신 온라인 색인 체계가 생겨나 책 조회며 책의 대출상황을 검색어만 누르면 굳이 도서관에 가지 않고서라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라지만 책을 수탁하고 관리하는 도서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오히려 복잡해졌다. 물론 제대로 된 도서관이라면 오늘날 사서는 텍스트를 관리하고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이 형태의 안내서와 도서목록은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 서비스나 CD롬과 같은 형태로 직접 텍스트를 창조하기도 한다. 디지털 텍스트도 다른 형태의 문자와 똑같은 발전 경로를 쫓으며 오늘날 도서관의 새 원형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호에 소개할 매튜 배틀스(Matthew Battles)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는 주목해 볼만한 책이다. 이 책은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디지털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생존과 파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도서관이 “말을 담고 있는 책을 관리하면서 과학기술과 변화의 힘, 시간의 힘과 맞서 싸워”(p.334)왔음을 강조하며 오늘날 도서관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다. 이는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표현 매체가 변하여도 도서관이 “말을 담고 있는 책”을 모으고 보관하는 곳일 뿐 아니라 지식을 형성하고 영감을 주는 지(知)의 원천이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저자의 신념이자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교 와이드너 (Widener) 도서관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도서관은 하버드대 졸업생(1907년)이자 서적 수집가로 타이타닉호 침몰(1912년) 때 같이 가라앉은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Harry Elkins Widener)를 추모하며 그의 어머니가 그의 소장 서적과 도서관 건립비를 하버드대학에 기증해서 건립(1914년), 개관(1915년)한 도서관이다. 이는 현재 90여 개의 단과 대학과 학과를 거느린 하버드 연방의 핵심이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술도서관이다.

1914년 와이드너의 어머니가 그의 소장 장서를 하버드에 기증하고 도서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하버드대학 측과 한 약속이 여담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건물 내 와이드너의 초상화가 언제나 싱싱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할 것. 둘째, 모든 졸업생에게 30미터 이상 수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할 것. 셋째, 건물 내의 벽돌 하나라도 외부로 반출돼서는 안 될 것. 이상 지켜지지 않을 경우, 도서관 및 그 장서는 모두 보스턴 공공도서관 소유로 넘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바다에서 비명횡사한 아들을 위해 다시는 “침몰할 염려가 절대 없는 천하무적의 도서관”(p.14)을 만들어 달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 가지 약속 중 마지막, 즉 ‘건물 내의 벽돌 하나라도 외부로 반출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표현에서, 문득 서구 도서관의 역사, 즉 ‘말’이 담긴 책을 돌(혹은 나무) 항아리(biblioteke)에 보관했었다는 전통이 떠오른다.

영어로 도서관을 library라 한다. 이는 책을 뜻하는 라틴어 liber에서 나온 말이다. 반면,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뜻하는 그리스어는 biblion이며, 두루마리 보관 용기는 biblioteke, 즉 돌(혹은 나무) 항아리였다. 일부 언어에서는 도서관에 해당하는 단어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인 bibliotheke의 변형으로 쓰인다. 가령, 도서관을 뜻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Bibliothek 그리고 bibliotheque다. 이처럼 유럽어 어원에서 보면 도서관은 책을 자연적 재해와 인위적 파손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보존하고 이용, 전수하기 위한 공간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유럽사회에서 교회(성당) 못지않게 도서관이라 하면 우선 불멸의 견고한 대리석 건물이 떠오른다. 전자가 신을 모시는 신전(神殿)이라면, 후자는 (神의) 말을 담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러한 도서관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 이상(理想)처럼 ‘불멸의 양서를 비치하는 장소’인 셈이다.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저자 배틀스는 이런 유형의 도서관을 일반 도서관과 차별하여 ‘파르나소스 도서관’이라 부른다. "델포이의 경우처럼 세네카가 염두에 둔 도서관 역시 폴로와 뮤즈의 영지인 파르나소스 산 허리 신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선과 아름다움(고대 그리스·로마시대), 혹은 신성(중세시대)의 정수가 비치되어 있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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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세페 아르침볼도 ‘사서’ 1566년경(본서 p.16 삽화)

하지만 이것만이 이 책의 핵심은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인류의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보호하고 숭배하려는 장소 보존의 욕구와 동시에 펼쳐졌던 이교도·이민족 도서관의 약탈과 파괴 및 인간 지식을 향한 통제와 관리의 역사를 더듬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고대 도서관들의 파괴와 쇠퇴의 역사 및 중국 한나라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 그리고 16세기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지화를 위한 아스텍문명(서적) 말살 역사 등을 다룬 2장은 이 책의 백미다. 한마디로 여기서는 정복자 시각에서 이교도·이민족의 서적 파괴가 과감히 이루어진다. 서적을 파괴(분서)하는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의도적으로 행해졌다. “시황제처럼 과거를 다시 쓰려는 의도에서 책을 불태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슬람 세력이 출현하면서 코란의 신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다른 종교 서적을 불태우는 경우가 있다.(중략) 이 밖에 멕시코의 경우처럼 역사를 지워 없애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사례도 있다.”(p.72) 

어디 이러한 서적 파괴(분서)하는 행위가 먼 과거에나 있었겠는가? 저자는 20세기에 들어서도 도서관 파괴의 역사는 계속해서 곳곳에서 자행되어 왔음을 이 책 6장에서도 다루고 있다. 세계1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한 벨기에 루뱅대학 도서관 파괴를 비롯해서 1930년대 나치정권 하 검열과 금서목록 작성을 통한 로젠베르크의 문화적 숙청/약탈 및 괴벨스의 공권력을 동원한 문화탄압 사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19세기가 도서관을 건축하는 시기였다면 20세기는 도서관을 파괴하는 시기였다.”(p.244)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비단 위에서 본 것처럼 도서관의 물리적 파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문서화된 책을 파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책을 개발해, 발전시킨 시기는 바로 20세기였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활자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바뀌고, 다시 인터넷의 전자파로 변하게 되면서 갑자기 책이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오늘의 현실은 사실 1,2차 대전에 이르러 책에 대한 폭력이 재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p. 244~5)

이런 현실 앞에서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년~1745년)가 생전에 근대 책들이 고대의 정전을 밀어낼까 봐 두려워했던 것처럼, 오늘날 ‘말’이 종이와 잉크 대신 형식을 바꿔 픽셀과 비트를 거주지로 삼아, 그 결과 ‘말’이 마치 사라져버린 듯한 현실에 경악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말’의 사라짐 및 도서관의 파괴로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저자는 누차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디지털 화상 처리 기술 덕분에 불에 그을린 채 도서관에 흉물처럼 널려 있는 파피루스 문서나 숯처럼 변한 고전의 파편들을 판독할 수 있다. 

살아 있던 ‘말’이 글로 쓰이면서 ‘말’의 환영에 두려워했던 고대의 소요학파나 인쇄술의 발명 앞에서 글자가 위험에 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르네상스기의 사본 수집가나, 컴퓨터 타이핑의 등장으로 말도 글자도 종이에서 완전히 사라진 현상 앞에서 말과 글, 나아가 책 그리고 도서관의 몰락까지 예견하는 일부 아날로그형 현대인들……이들 모두를 변화무쌍한 역사의 무대에서 끝없이 순환하는 재생 과정의 일부로 여긴다면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도서관(비록 가상일지라도)엔 무한한 희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은 책들이 죽을 때 가는 곳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책에 파묻혀 죽었던 말과 글이 기술발전(새로운 매체 등장)에 힘입어 소생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도서관의 역사가 아니라 시대변화와 기술발전에 따라 도서관 스스로 변화해 온 궤적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망각했거나 알지 못한 진실의 예기치 않은 도래를 조용히 예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The Library of Balel)》에서 말하듯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육모꼴의 열람실’, ‘거울들이 있는 복도’처럼 “도서관은 끝없이 순환한다.”는 메시지가 왠지 의미심장하다.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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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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