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괴물이 얼씬거리지 않게 하려면
나라에 괴물이 얼씬거리지 않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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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질문이며, 질문은 문입니다. 나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술의 문. 우리가 맨 먼저 넘어서야 할 장벽은 ‘그림책은 어릴 때 읽고 만다’는 편견입니다. 그림책은 초·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요즘 성인들 사이에서 ‘그림책의 발견’이 한창입니다. <논어>와 ‘그림책 이야기’로 함께 했던 오승주 작가가 이번엔 물음표를 달고 독자 곁을 찾아옵니다. 바로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입니다. 질문을 가지고 그림책을 읽는 사람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 (9) ‘나라의 일’이란 어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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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판사 | 제마크(글) | 마고 제마크(그림) | 장미란(옮긴이) | 시공주니어 | 2004-03-15 | 원제 The Judge (1969년) 

괴물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몸을 던져야 하는 사람은?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괴물을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은 모조리 재판에 끌려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괴물이 재판장에 나타나 판사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무서운 괴물이 많은 사람들의 목격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어서 나타날 때까지 그 고장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헛발질만 하다가 소중한 목숨까지 잃어버렸기에 그림책 제목도 <어리석은 판사>입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괴물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우리를 찾아옵니다.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에도 괴물이 나타났었죠. 제나라는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이어졌으니(549년) 조선왕조(505년)보다 더 오래 나라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멸망한 후에도 북제, 남제, 서제, 유제 등 비슷한 이름의 나라가 계속 세워질 정도로 중국의 대표적인 고대국가 이름이었습니다. 최저라는 대부가 자신의 왕인 장공을 시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죠. 시해(弑害)란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 또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일을 부르는 낱말입니다. 당시 최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최저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은 사람들은 단칼에 목숨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한 최저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이때 제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직업인 태사(太史) 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형이 죽간에 이렇게 쓰죠.

“최저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

죽간(竹簡)이란 역사를 기록하는 대나무 조각입니다. 역사를 청사(靑史)라고 부르는 이유는 죽간의 색이 푸르고 그 색깔만큼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죠. 영원히 자신의 일이 기록될지 모르기에 최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당장 태사를 죽이고 역사를 다시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죽은 태사의 동생이 죽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최저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

당시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아들이나 동생이 그 일을 대신하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태사가 되었죠. 어쨌든 최저는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새로운 태사마저 죽여 버립니다. 죽은 둘째형에 이어서 태사가 된 셋째. 그는 죽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최저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

최저는 자신의 행동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태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셋째는 이렇게 살아남았죠. 당시에는 전화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나라 밖에 있던 역사 기록관이었던 남사씨가 급히 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남사씨는 태사 삼형제가 최저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는 “최저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제나라로 온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 태사가 살아 있고, 역사 기록도 잘 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제나라를 떠나 자신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제나라 역사 기록관들의 이야기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누가 나서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춘추좌씨>라는 책에 나옵니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궁금하다고요?

요즘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공무원은 대통령으로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서 선생님, 길에서 자주 만나는 경찰관, 항상 바쁘게 달려가는 소방관, 그리고 도청 같은 나라의 건물에서 바쁘게 일하는 분들 등 다양합니다. 이 분들은 나라에 기쁜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또는 아무 일이 없을 때도 담담하게 할 일을 합니다. 이 분들의 일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직(公職)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공무원은 공직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공직자(公職者)라고 부르죠. 나머지 일들은 스스로의 생계를 위한 자영업이나, 회사의 이익을 위한 직장 등이니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탄핵(彈劾)이란 대통령 같은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내쫓을 수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해서 지금 그가 하는 일을 멈추게 하는 걸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옳았는지 의논하고 최종결론을 맺으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대통령이 꿈인 어린이들이 참 많은데, 이번에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 일이 ‘나라의 일’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나라에 괴물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공무원입니다. 만약 공무원이 자신의 손해를 걱정해서 나서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실상 ‘괴물의 부하’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라의 일을 한 훌륭한 공무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손해를 걱정해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은 공무원은 더 많았습니다. 앞의 사람들은 영웅이 되었고, 뒤의 사람들은 죄인이 되었죠. 하지만 그 분들은 영웅도 아니고 죄인도 아니고 그저 공무원일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괴물이 나타났을 때 어떤 공무원이건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자신의 일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라에 정의가 살아있어야 괴물이 얼씬거리지 않거든요.

★ <어리석은 판사>를  읽고 질문을 2개 만들어 보아요.

1. 만약 여러분이 판사였다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어요?
2. 괴물을 목격한 사람들이 죄인이 되어 재판장에 끌려왔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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