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올 한해 도민들은 평안하게 지나가길 기원했지만 어김없이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게 중에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갈등과 대립, 논란과 좌절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다가오는 정유년(丁酉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6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7대 키워드’를 선정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2016, 올해의 제주 키워드] (1) 촛불…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최다 인파 운집 "이제 시작"

▲ 제주에서 열린 집회 사상 최다인 1만1000명이 참가한 촛불집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6 병신년(丙申年),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시했다. 외신은 우리나라 정치 수준은 퇴보했지만, 시민의식 만큼은 전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일깨웠다고 극찬했다. 전국 수백만명이 밝힌 촛불을 일컬어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상정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에만 주최측 추산 170만명이 모였다. 전국적으로는 232만명이다. 

'잠들지 않는 남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60)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제주에서는 청년들이 가장 먼저 시국선언에 나섰다. 

지난 10월27일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된 꼭두각시”라고 성토했다. 이후 법조계, 학계, 의료계, 종교계, 노조에 이어 중·고교생들도 시국선언에 함께했다. 

촛불민심은 시국선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학계와 종교, 정치, 교육, 농민, 언론, 여성단체 등 도내 100여개 단체가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의 범도민 연대기구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이 발족했다. 제주도개발특별법 저지를 위한 대규모 단체 조직에 이은 25년만의 범도민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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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제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행동 발족 이후 제주 촛불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수백명으로 출발한 제주 지역 촛불집회는 2차, 3차, 4차를 거치면서 참가 규모가 크게 불어났다. 특히 제주 지역은 다른 지방보다 1차례(11월9일) 더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실망과 분노의 정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2016년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 발췌)


박 대통령의 담화는 오히려 촛불 민심을 더 자극했다. 그 결과 12월3일 6차 촛불집회(제주는 7차)에서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최다 인파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제주에서는 주최측 추산 1만1000명(경찰 추산 3000명)이 운집했다. 

이전 촛불집회에서 기록한 30년만의 최다 인원(6000명)을 1주일만에 갈아치웠다. 

수많은 도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데도 경찰에 연행된 인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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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소추안 가결 이튿날인 12월10일 열린 촛불집회. 이날 최초로 제주시청 앞 도로 3개 차선이 집회 장소로 쓰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집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질서를 지켰으며, 경찰 통제도 잘 따랐다. 누가 봐도 ‘평화시위’ 그 자체였다. 

인원이 점점 불어나면서 집회 장소도 수차례 바뀌었다. 제주시청 민원실 앞 2차선도로에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으로, 다시 민원실 앞 대도로까지.

집회 참가자가 1만명을 넘어설 때는 제주시가 시민안전 차원에서 주차장을 개방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양초, 햄버거, 빵, 무대, 조명, 음향, 현장중계 등으로 촛불 집회를 적극 응원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튿날인 12월10일에는 사상 최초로 제주시청 앞 도로 3개차선이 집회 장소로 쓰였다. 제주에서 교통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도로가 통제됐는데도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량들은 오히려 집회 참가자들이 다치지 않을까 속도를 줄였다. 몇몇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파이팅”이라고 응원을 보냈다.  

촛불집회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어김없이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다. 수천명의 인파가 머물렀던 자리였지만, 쓰레기는 찾을 수 없었다. 평소보다 거리가 더 깨끗할 정도였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제주지역 주역 중 한명인 진희종 전 제주도 감사위원은 “당시는 군부세력과의 대치 등으로 긴장감이 넘쳤다. 지금의 촛불집회와 다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번 촛불 민심에 다시 한 번 우리나라 국민들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적인 촛불 집회는 우리나라의 상징이 됐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정치권을 질타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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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부터 계속 참가한 이지화(26.여)씨는 촛불 집회를 축제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오히려 축제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말에 횃불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국민들의 성숙한 의식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평화적이고, 깨끗했다.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무거웠지만, 촛불집회 현장 만큼은 축제장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촛불 민심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미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남아있다. 헌재 판결은 촛불 민심이 끝이 아닌, 이제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국토 최남단의 촛불 민심도 앞으로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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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인근 작근 공터에 '서귀포 6월민주항쟁 기념비'가 있다. 훗날 이곳에 '2016년 촛불집회 기념비'도 세워질지 모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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