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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미술관은 16일 ‘제주도립미술관 소장품 수집정책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 소장품 수집정책 학술심포지엄 개최..."도립미술관, 소장품 관리 총괄해야"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등 도내 공공 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은 어떨까? 소장품 중복, 엇비슷한 미술관 성격, 공모 구입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기됐다.

제주도립미술관은 16일 미술관 강당에서 ‘제주도립미술관 소장품 수집정책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제주도립미술관의 정체성에 맞는 중장기 소장품 수집 정책의 방향을 세우기 위해 마련됐다. 다양한 의견 속에 도내 공공 미술관의 소장품 문제 전반까지 다루는 논의로 확장됐다.

심포지엄 순서는 김유정 미술평론가, 장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2실장, 김영호 중앙대 교수, 이경은 제주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의 주제 발표와 양미경 화가,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와 발표자가 참여하는 종합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 제주도립, 현대, 기당미술관 차이는? 

이경은 팀장은 도립미술관, 현대미술관, 기당미술관의 소장품이 상당부분 중복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도립미술관만의 개성 있는 수집 방향을 강조했다.

이 팀장은 “세 곳은 미술관의 특성을 명확히 해 서로 경쟁적 관계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장품의 수집 영역을 조율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도립미술관은 좀 더 근대미술기의 작품 수집에 노력한다면 제주 미술의 근·현대 미술사를 정립하는 미술관으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올해 기준 도립미술관 총 소장품 수는 764점인데, 기당미술관과 겹치는 작품 수는 284점(37%), 현대미술관은 98점(13%), 이중섭미술관은 130점(17%)이다. 현대미술관의 경우 439점 가운데 기당미술관과 236점(54%)이 중복되고, 도립미술관은 61점(14%), 이중섭미술관이 48점(11%)다. 적지 않은 작품이 중복돼 자연스레 미술관의 특성도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도립과 현대미술관 모두 2000년대 만들어진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321점, 220점) 있다. 도립은 도내 작품 비중이 높고(451점), 현대는 도외 작품 비중이 높다는(315점) 것이 두드러진 차이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문화지구에 연면적 1700㎡, 지상 1층 규모의 공공수장고를 조성할 예정이다. 내년 11월 개관을 목표로 한다.

이 팀장은 “도립미술관은 제주의 대표적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주 근·현대 미술사를 정립하는 소장품 수집과 4.3과 관련한 평화·인권을 주제로 한 작품, 섬 문화와 해양 문화를 아우르는 확장된 주제로 수집해야 한다. 현대미술관은 5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 집중하면서 그 범위를 더욱 좁혀 자연, 생태, 청정에너지 등 환경 중심의 담론들을 수용하는 실험적 예술 형식들을 수집 대상으로 한다면 제주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현하는 미술관이 될 수 있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 작품 수집은 전문 인력에게, 도립미술관 역할 키워야

장엽 실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어느 미술관이든 적용할 수 있는 작품 수집 기준을 설명했다. 

장 실장은 “핵심은 수집에 대한 신뢰다. 공모 과정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확실한 것은 공모로는 '절대' 좋은 작품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전문 인력의 수집 판단을 신뢰하는 방향이 질 좋은 작품을 수집하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국내·외, 순수·응용 미술의 균형 ▲질적인 축적 ▲미술사 연구를 위한 기록 ▲동시대적 가치 기준 ▲능동적, 체계적 수집을 미술관의 작품 수집 기준으로 제시했다.

김영호 교수는 소장품 연구를 전담하는 인력, 상설전시실 증축 등의 정책적 변화를 언급했다. 

김 교수는 “소장품의 수집 등록 관리 업무를 넘어 소장품 연구를 전담하는 학예연구원을 두거나 혹은 소장품 연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작품 구입을 위한 예산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기증, 기탁, 관리 전환을 통한 소장품 확보에도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소장품을 효율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상설전시실 증축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미술관 주변 수면 공간을 비롯한 야외조각장을 정비하고 장리석기념관과 시민갤러리 등 관내 공간을 재배치하는 논의도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도립미술관의 소장품은 제주 지역의 상징으로서 미술관을 대변하는 자료들이며, 따라서 제주미술사 연구와 연계된 차원에서 수집 정책의 방향과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토론에서 박경훈 이사장은 “미술 소장품은 영구 보존한다는 점에서 미술인만이 아닌 도의회를 비롯한 보다 폭넓은 지역 사회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더불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제주 지역 미술사가 먼저 정리돼야 중장기적인 소장품 정책도 마련하기 용이할 것”이라며 “여기에 회화만이 아닌 다양한 미술 장르가 등장하는 시기에 도내 공공 미술관 소장품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그만한 전문 인력과 역할을 갖춘 도립미술관이 중심이 돼야 한다. 도립미술관에 인력, 예산, 권한을 부여해 소장품 관리를 일원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양미경 화가는 “작품을 눈으로 보고 느끼지 않고 컴퓨터 파일로 공모해 수집하는 방식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면서 소장품 구매 방식이 공모가 아닌 큐레이터 같은 전문 인력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변길현 연구사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예전 어느 공공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100% 소장품을 선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니 외부 의견을 넣어야 한다’는 민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됐다. 알고보니 지역 미술계와 연관된 이익 단체가 제기했다”고 사례를 들며 “소장품 수집은 어느 미술관이라도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학예연구사는 자체적인 전문성으로 조사·연구하는 역할로서 권한을 위임받은 위치”라며 공모가 아닌 전문가 판단에 힘을 실었다.

더불어 “지역 미술관으로서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제주도의 정체성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4.3은 현재도 진행되는 역사이기에 집중적으로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기 도립미술관장은 “과연 어떤 수집 정책이 필요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했다. 여기서 나온 조언을 모으고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지금과는 다른 차별화된 소장품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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