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지난 11월30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11차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의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등재는 해녀문화의 공동체적 가치와 자연친화적 삶의 방식을 세계가 인정함으로써 제주해녀들의 삶에 대한 긍정적 관심의 확산으로 그동안의 노고와 자존감을 보상받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찍이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해녀는 한국 최초의 워킹맘(working mom)으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다”고 제주해녀의 삶을 조명한 바 있다.

예부터 제주해녀로 상징되는 제주여성들은 경제적·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가정과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교육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노동과 육아를 모두 짊어진 제주여성들의 고된 삶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제주여성들은 1차 산업과 서비스업 위주, 84%에 달하는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 등 열악한 일자리 환경과 뿌리 깊은 유교 가부장제 문화의 영향으로 성평등 인식이 무척 낮아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와 육아부담으로 인해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성은 채용, 임금, 승진 등 고용의 전 부문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74.5%로 남성의 67.4%보다 높지만,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보다 오히려 23%나 낮다고 한다. 여성 취업률이 20대에는 67.8%로 높은 편이지만, 출산·육아기인 30대에 53.3%로 뚝 떨어진 후 육아부담을 어느 정도 덜게 되는 40~50대에 54.1%로 다시 치솟는다. 남성의 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여성의 임금은 37.5%에 불과하다. 도내 여성 공무원은 전체의 30.3%로 전국 하위권에 그치고, 5급 이상 간부공무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10.7%로 극심한 성별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이 이 정도라면 기업 등 민간영역의 경우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에 남편이 41분, 아내는 3시간13분으로 조사됐다. 특이한 것은 아내만 취업한 외벌이 가구도 아내는 2시간39분이나 가사노동을 하는데 반해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은 1시간39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회사에서 일한 뒤 퇴근해서도 집안일을 하고 있는 셈인데, 맞벌이를 하는데도 가사 부담이 여성에게 맡겨지는 것은 ‘집안일=아내 몫’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이 뿌리 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사회 활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엄마와 아내, 직장인이라는 무수히 많은 역할들 사이에서 고민과 걱정, 죄책감 속에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있다. 일터에서는 직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의심받고, 엄마들 사이에서는 양육자나 학부모로서의 전문성을 의심받는다. 어떻게 하면 워킹맘이 겪고 있는 고충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고군분투 중인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을까? 일과 가정의 양립과 성평등·여성친화도시 제주 구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가운데 아이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아이 키우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만의 노력을 뛰어넘어 ‘가정·직장·행정’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일·가정 양립’의 의미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부가되어온 재생산 영역인 가사와 육아역할을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누고, 남성 또한 재생산 영역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남녀가 ‘일·생활·돌봄의 균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제주도는 여성가족부로부터 2011년에 이어 성평등 발전을 위한 ‘여성친화도시’로 재지정 받았다. 이를 위해 수눌음육아 나눔터와 사회적 돌봄 공동체 조성 등의 아이돌봄 서비스, 청장년 여성 일자리와 여성창업 인큐베이팅 사업 지원 등 여성 일자리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상별 맞춤형 지원정책과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정보를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이다. 정보의 민주화 차원에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기업 등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높일 수 있는 지원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장시간 노동의 저임금 체제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높이고 고임금 체제로의 정책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가운데 부모 모두가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만 가정경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결국은 북유럽의 사회복지시스템과 노동시간의 단축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김태석(기고 180).jpg
▲ 김태석 위원장. ⓒ제주의소리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장에 답이 있고, 시민이 답’이라는 말처럼 워킹맘과 관련한 정책 마련에 있어서도 워킹맘의 참여와 의견수렴을 통해 워킹맘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답을 찾아내고, 정책입안도 워킹맘의 입장에서 워킹맘의 고충과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열린행정을 펼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