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중심지인 슈퍼마켓 앞 사거리에서 여성 주민들이 서귀포 앞바다에서 잡은 옥돔과 벵에돔을 손질하고 있다. 고기가 잡히는 날 낮시간에만 이 같은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송년특집=강정의 눈물] 해군기지 이어 크루즈터미널 공사 ‘한창’...다음 정권에 실낱 희망 

서귀포시 강정마을 슈퍼마켓 앞 사거리. 도로를 두고 양쪽 인도에 사람들이 갓 잡은 생선 구경이 한창이다. 바닥에 앉은 상인은 도마에 오른 생선을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옥돔과 벵에돔, 붕장어 등등. 생선 비닐을 연이어 벗겨내고 배를 갈라 가지런히 소쿠리에 담았다. 싱싱한 생선에 길을 지나던 주민들과 관광객들도 발길을 멈추고 시선을 뒀다.

서너척의 배가 강정과 대포 앞바다를 오가며 잡아들인 생선이다. 새벽 조업이 끝나면 낮 한때 장 아닌 장이 선다. 조업이 없는 날에는 풍경이 사라지는 일종의 또깨비 장이다.

한가로운 풍경을 뒤로하고 강정포구로 발길을 돌렸다. 좁은 마을길을 지나니 느닷없이 4차선 대도로변이 나왔다. 중장비가 대거 동원돼 ‘쿵쾅’ 거리며 연신 구조물을 올리고 있었다.

방파제로 내려가자 포구가 흙밭으로 변했다. 면적을 더 넓히기 위해 덤프트럭이 연이어 흙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제주도는 포구정비라고 했지만 주민들은 매립이라고 했다.

▲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서귀포시 강정마을 포구 끝자락에서 한 마을 주민이 물끄러미 해군기지와 강정크루즈 터미널 공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 올해 준공된 제주해군기지 서쪽 포구에 내년 7월 준공을 목표로 강정크루즈터미널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포구 끝자락에서 한 노인이 구조물에 등을 기대고 공사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까이 다가가 해군기지와 강정마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렸다. 20여분간 이야기가 이어졌다.

“크루즈터미널 공사야. 해군기지 끝나니 포구쪽에 또 시작이야. 예전에는 다 논이었던 곳인데. 그때는 살만했지. 땅과 물이 좋으니 쌀도 크고 품질도 최고야. 심지어 달걀도 컸으니까. 여름에는 강정천 가서 목욕하고 은어도 잡아먹고 풍족했지. 그래서 일강정이라고 하잖아”

과거 강정마을을 가리켜 제일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강정’이라 불렀다. 화순마을은 이번내, 신도마을은 삼도원이라고 했다. 모두 논농사로 쌀밥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부촌이었다.

강정마을은 세대가 바뀌고 논농사로 인한 수익이 떨어지면서 현재는 감귤과 화훼 등 시설작물로 농사풍경도 변했다. 강정에서 월평으로 이어지던 해안지역 논농사는 자취를 감췄다.

“세월이 흐르니 바뀌는거지.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마을이 완전히 변했지. 두 동강 났어. 해군기지 얘기만 나오면 싸웠으니. 유지들이 나서려고 해도 찬반이 첨예하니까 어려워. 예전에는 자문기구인 원로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몰라”

▲ 강정포구로 향하는 강정마을 초등학교 인근 진입로에 공사차량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 강정포구에서 바라본 강정크루즈터미널 공사 현장 모습. 대형 해상 크레인까지 동원돼 해상 매립 등의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2007년 6월 해군기지 부지로 강정이 지목된 이후 벌써 10년째다. 해군기지에 이어 크루즈터미널까지 공사도 7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의 상처는 지금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포구에서 발길을 돌려 마을쪽으로 향하자 왼쪽에 해군관사가 눈에 띄었다. 2015년 1월31일 마을주민들이 8m 높이의 망루에 올라 장장 15시간 고공투쟁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방부는 사설용역까지 투입해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펼쳤다. 20대로 보이는 앳된 청년들이 안전모를 쓰고 행정대집행 일선에 나섰다. 절단기도 등장했다.

해군은 15시간만에 진압을 마무리했다. 현장에 있던 텐트촌과 천막은 모두 뜯겼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망루에서 투쟁한 9명과 주민 등 24명을 입건했다.

중덕삼거리에는 또다른 망루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곳은 해군기지 건설 초기 해군에서 부지 경계에 대형 펜스를 세우자 환경감시를 목적으로 주민들이 설치한 시설이다.

▲ 강정마을 중덕삼거리에 위치한 망루. 강정주민들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초기 펜스를 설치하자 환경감시를 위해 망루를 설치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 중덕삼거리 옆에 왕복 4차선의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제주도는 도로 건설을 위해 중덕삼거리 망루와 컨테이너 등 시설물 철거를 추진하다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망루를 중심으로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 10개동이 5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귀포시는 이곳에 크루즈터미널 진입로를 뚫는다며 올해 7월 철거에 나섰다.

주민들의 반대 속에 도로 부지 밖에 위치한 망루는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왕복 4차선 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해군기지 정문을 지나 해군기지 동쪽 끝자락인 강정천으로 향했다. 다리 위에서는 해군기지 반대과정에서 주민들이 설치한 각종 현수막과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강정천을 끼고 해안가로 향했다. 범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하천 하류인 일명 ‘멧부리’다. 해안경치가 뛰어난 멧부리는 2012년 2월 공사과정에서 산산조각 났다.

경계지 모서리에 설치된 초소에서는 해군 장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 옆으로 멧부리 동쪽 해안에서는 낚시객들이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고기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 제주해군기지 동쪽 끝 강전천에서 멧부리로 이어지는 진입로. 멧부리에는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다. 멧부리 해안가는 육상공사를 위해 2012년 대부분 폭파됐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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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부리와 제주해군기지 경계지에 3~4m높이의 펜스가 설치돼 있다. 해군은 해군기지 준공이 끝난후에도 펜스를 철거하지 않았다.ⓒ제주의소리 <김정호>
해군기지 경계에는 철조망과 함께 3~4m 높이의 펜스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벽면에는 주민들과 강정활동가들이 그린 그림과 평화를 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해군은 2007년 6월 강정마을을 건설부지로 확정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월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인 올해 2월 제주해군기지를 준공했다.

수년간 이어진 반대 운동 과정에서 연인원 700여명의 마을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만 3억7000만원 가량이다.

해상공사를 맡은 삼성물산은 주민들 반대로 공사가 지연됐다며 해군에 공사지연에 따른 손해배상금 360억원을 요구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금액은 273억원으로 줄었다.

해군은 이중 34억5000만원을 강정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지난 3월 121명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에 나섰다. 대림산업도 이어서 손해배상 청구 절차를 밟고 있다. 

▲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 위치한 나무에 구상권 철회와 군사기지 반대를 알리는 노란 띠가 걸려 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그 사이 마을공동체는 붕괴됐고 주민들은 전과자로 전락했다. 콘크리트로 메워진 강정해안은 본 모습을 완전히 잃었고 일강정을 외치던 마을주민들의 단합된 모습도 옛 일이 됐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전과자에 빚쟁이가 되어 버린 마을의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현 정권에 대한 쓴소리도 쏟아냈다.

“마을 지킨다며 나섰다가 죄다 범죄자가 됐지. 정부나 도정이나 갈등해결, 공동체 회복을 얘기하는데 말로만 하지. 주민들은 벌금에 손해배상까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어. 구상금 청구까지 인용되면 말 그대로 마을은 풍비박산이야”

잠시 민원인을 대한 조 회장이 TV를 보더니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뉴스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구상권 철회 등 정부차원의 조치가 없으면 공동체 회복도 쉽지 않은 상황이야. 박근혜 정부 들어 강정주민은 국민으로 취급받지도 못했지. 다음 정권에 대한 기대를 하는 거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면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우리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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