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석 칼럼] 바람과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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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 송악산 전경.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바람 타는 섬, 제주에는 바람의 언덕으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두 군데 있다. 성산포 일출봉과 모슬포 송악산 정상으로 가는 언덕배기.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맞서면서 초승달 같은 곡선미를 뽐내는 해안선을 품고 있다. 

정유년 새해 첫 주말, 중문 관광단지 내 L호텔에서 열리는 대한변호사회 모임에 가려던 참에 송악산 산책에 나섰다. 인연이 깊은 터다. 송악산 이중분화구 주위에 대규모 관광시설을 못하게끔 법적 투쟁을 하여 오늘의 송악산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옛 일을 생각하면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차디찬 해풍(海風)이 몸을 감싼다. 칼끝 같은 바람이 몸에 스며들어 뼛속까지 저릿하다. 온몸을 얼게 하면서도 마음을 덥게 한다. 겨울 동안 옴츠린 어깨를 활짝 펴고 심호흡 해본다. 허파 속까지 쌓인 먼지가 씻겨 나오고 불규칙하게 박동하던 심장이 더욱 고동쳐 온다. 

바람의 총명이 어둠을 허물고 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산허리를 간질이며 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라고 풀꽃들에게 소곤거린다. 남녘 먼 바다에서 마파람이 불기 시작할 양이면 산과 들에 봄빛 흐드러질 날도 멀지 않겠지. 

바람과 함께 사라져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이해인 시인의 ‘새해의 기도’를 읊조린다.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꽃이 피려고 할 때 비바람이 치는 법이지. 그게 꽃바람이야. 개나리꽃, 목련꽃, 벚꽃들이 피지만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지. 하지만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그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 가는 것이야.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음도 그럴 성싶다. 정의의 깃발은 천리동풍(千里同風)으로 온 누리에 휘날렸다. 

사람의 마음을 능히 흔드는 바람을 일컬어 세풍(世風)이라 한다. 비리와 부패를 따르는 자들은 세풍의 그물에 걸릴 것이고, 정의를 따르는 자들은 세풍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는 온갖 바람이 분다. 동에서 오는가 하면 서에서도 오고, 북에서 오는가 하면 또 남에서도 불어 닥친다. 먼지 섞인 바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것도 있고, 찬바람인가 하면 무더운 바람, 거센 바람인가 하면 부드러운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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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석 <제주의소리> 상임공동대표·발행인.
이와 같이 여기 이 마음속에서도 갖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구역질나는 느낌, 울화가 치미는 느낌, 가슴 저미는 느낌, 수치스러운 느낌, 휘청거리는 느낌,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 등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 똥 돼지들의 병신(病身)놀이 탓에 더하지 싶다.

바람아, 너는 내 맘을 알겠지. 변역(變易)하되 차디참 속에 따뜻함이 있고, 따뜻함 속에 차디참이 있어야 하리라는. / <제주의소리> 상임공동대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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