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후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하간거짬뽕'. ‘하간거’는 ‘온갖 것’이란 의미의 제주어다. 고기와 채소로 국물맛을 우려낸 뒤, 마지막에 불에 구운 불고기를 고명처럼 얹었다. 음식을 먹기 전 불고기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jpg
▲ '이루후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하간거짬뽕'. ‘하간거’는 ‘온갖 것’이란 의미의 제주어다. 고기와 채소로 국물맛을 우려낸 뒤, 마지막에 불에 구운 불고기를 고명처럼 얹었다. 음식을 먹기 전 불고기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출처=서귀포신문.
제주 쇠소깍 인근 문 연 전 교장선생님과 베테랑 세프의 환상 퓨전 ‘이루후제’

‘이루후제’를 처음 찾은 날이 지난해 봄이었다. 아마도 가게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을 게다. Y형의 제안을 따라 가게에 들어섰는데, 두 번 놀랐다.

우선, 가게 사장님을 보고 놀랐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시던 분이 음식점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손님 접대를 하시니 놀랄 수밖에.

게다가 음식의 맛에도 놀랐다. 이 집에서 짬뽕은 맵고 짜다는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많이 맵지도 짜지도 않고, 화학조미료 맛도 느껴지지 않는 짬뽕은 처음이다.

이런 이유로 손님이 찾아오면 난 ‘이루후제’를 찾게 되었고, 몇 차례 망설이다 취재를 요청했다.

주인장 현익부 선생님은 남들이 기피할 때 시골학교만을 골라 다니며 열정을 쏟았다. 은퇴 전, 위미중학교에 근무할 때 남긴 자취가 남다르다. 당시는 학교가 침체되어 인근 중학교와 통폐합하자는 얘기가 피어날 때였다.

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교사들과 학부모회을 설득하고, 후원자들을 모집해 전국 최로로 전교생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했다. 아이들이 음악을 하면서 자존감이 커졌다. 게다가 예절도 밝아지고 성적도 크게 좋아졌다.

학교는 그렇게 전국에 화제가 되었고, 더 이상 통폐합을 말하는 이가 없어졌다. 그리고 2012년에 위미중학교는 전국 중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대한민국 미래학교'에 이름을 올렸다.

교장선생님이 교직에 쏟은 열정

그리고 현익부 선생님은 2015년 오랜 교직을 마감하고 가게를 열었는데 그 과정도 재미있다.

퇴직할 즈음에 이후에 뭘 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갈 무렵, 우연히 애월에 있는 작은 음식점을 방문했다. 가게 분위기가 아담하고 조용한데다 음식까지 맛이 있었다. 그 가게만 가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게 주인은 서울과 시드니 특급호텔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셰프였다. 파스타와 스파게티에 소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식 세계화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애월에서 홀로 음식점을 운영하던 중 손님으로 방문한 교장선생님의 공동창업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 가게 주인이 지금 이루후제의 주방을 책임지는 정부원 총주방장이다.

퓨전 음식점 '이루후제'. 북유럽 건축양식에서 기본 테마를 빌려왔고, 기단부에 제주 천연석을 둘러 제주 귤 창고 이미지를 덧씌웠다..jpg
▲ 퓨전 음식점 '이루후제'. 북유럽 건축양식에서 기본 테마를 빌려왔고, 기단부에 제주 천연석을 둘러 제주 귤 창고 이미지를 덧씌웠다. 출처=서귀포신문.

창업을 결정하기까지 서로 만나서 의논하기를 50회 이상 반복했다. 그리고 제주에서 가장 따뜻하고 한라산이 선명하게 내다보이는 이곳, 쇠소깍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교장선생님은 그렇게 사장님이자 홀 써빙맨이 됐다.

가게 이름을 ‘이루후제’라고 정했다. ‘이 다음에’, ‘이 후에’라는 의미를 갖는 제주어다. 손님들과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제주어로 담았다.

건축도 독특하다. 천정을 높이고 지붕 경사각을 크게 했다. 접이식 유리문을 넓게 만들어 실내외 거리감을 줄였고, 창문 크기와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북유럽 건축양식에서 기본 테마를 빌려왔다. 거기에 기단부에 제주 천연석을 둘러 제주 귤 창고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실내 액자형 창틀에는 다양한 색을 입혔고, 갤러리에 사용되는 현대적 조명으로 온화함을 추구했다. 여기에 노란 테이블과 빨간 의자를 배치해 정감을 더했다.

음식 뿐 아니라, 건축에서 인테리어까지 퓨전예술이다

메뉴 선정은 사장님이 주방장과 오래 의논해서 정했다. 맛있는 음식을 여러 가지 만들 수 있지만, 볶음밥, 하간거짬뽕, 탕수육, 크림짬면, 수재 돈까스 등 5가지만 팔기로 했다. 레시피는 모두 정주방장이 개발했는데, 요리에 원칙이 있다. 제주산을 우선으로 쓰고, 없으면 국내산을 쓴다. 수입 식재료는 호주산 쇠고기와 베트남산 새우뿐이다. 그리고 천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화학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실내 모습이다. 오후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는 중간 정리하는 시간인데, 그때 촬영했다. 현대적 조명으로 온화함을 추구했고, 노란 테이블과 빨간 의자를 배치해 정감을 더했다..jpg
▲ 실내 모습이다. 오후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는 중간 정리하는 시간인데, 그때 촬영했다. 현대적 조명으로 온화함을 추구했고, 노란 테이블과 빨간 의자를 배치해 정감을 더했다. 출처=서귀포신문.
창문 크기와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었고, 실내 액자형 창틀에는 다양한 색을 입혔다. 큰 창 너머로 한라산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다..jpg
▲ 창문 크기와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었고, 실내 액자형 창틀에는 다양한 색을 입혔다. 큰 창 너머로 한라산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다. 출처=서귀포신문.

볶음밥이 9000원이고, 하간거짬뽕과 탕수육은 1만원, 크림짬면과 수제돈까스는 1만2000원이다. 모든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다 높지만,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하간거짬뽕과 탕수육이다.

우리 일행 3명이 취향대로 하간거짬뽕, 볶음밥, 크림짬면 각각 먹기로 했고, 거기에 탕수육 한 접시를 추가했다.

음식 한 그릇도 접시 하나도 모두 작품이다

참고로 ‘하간거’는 ‘온갖 것’이란 의미의 제주어다. 홍합, 새우 등 해산물과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어 진한 국물을 만들고, 이집 특유의 면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불로 구워낸 불고기를 고명처럼 듬뿍 얹었다. 짬뽕면을 먹기 전에 불고기향이 퍼지며 후각과 침샘을 자극한다. 진한 감칠맛이 입에 가득한데, 여느 짬뽕과 달리 국물이 짜지도 맵지도 않다. 조미료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볶음밥은 채소와 돼지고기, 통 새우를 듬뿍 넣고 볶았는데 굴 소스를 넣었는지 짙은 갈색에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역시 소스의 자극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데, 특이한 것은 샐러드와 더불어 이태리식 푸딩을 후식으로 얹어줬다. 후식으로 와플이 나올 때도 있다.

제주산 돼지고기와 새우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샐러드와 더불어 이태리식 푸딩을 후식으로 얹어줬다..jpg
▲ 제주산 돼지고기와 새우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샐러드와 더불어 이태리식 푸딩을 후식으로 얹어줬다. 출처=서귀포신문.
크림파스타 소스를 더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jpg
▲ 크림파스타 소스를 더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 출처=서귀포신문.
탕수육은 흰색인데, 씹는 느낌이 바삭한데 쫄깃하다..jpg
▲ 탕수육은 흰색인데, 씹는 느낌이 바삭한데 쫄깃하다. 출처=서귀포신문.

크림짬면은 크림파스타를 연상시킨다. 짬뽕면에 홍합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토마토를 비롯해 채소를 섞었다. 여기에 크림파스타 소스를 더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 빵 한 조각이 함께 나오는데, 바삭하고 고소하다. 후식으로 먹어도 좋고, 면을 얹어 먹어도 제격이다.

탕수육은 제주산 돼지고기에 얇게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색깔이 흰색인데, 씹는 느낌이 바삭한데 쫄깃하다. 튀김옷 재료로 찹쌀을 재료로 썼을까? 소스는 새콤달콤해서 제주산 천혜향의 향과 맛이 떠오른다.

식탁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접시도 볼만하다. 음식을 담는 접시는 물론이고, 수저를 올리는 받침과 조개껍질을 담는 그릇까지 모두 흰색 자기다. 음식에 따라 그릇의 모양이 다른데, 빛깔과 모양이 고급스러워 음식의 품격을 더한다.

오전 10시30분에 영업을 시작해 저녁 7시 50분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오후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는 휴식과 정리를 위한 시간이다.

주방에서는 정부원 총주방장과 더불어 3명이 함께 음식을 만든다. 현사장님은 요리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손님접대에만 신경을 쓴다. 자기 그릇이 무거운데, 써빙이 힘들지 않은지 물었더니 “자주 걷게 되어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고 답했다. 그리고 "음식 나르던 중 함께 일했던 교직원이나 제자들이 오면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앞으로 몸이 허락할 때 까지 활동하고, 사업이 잘 되면 2호점, 3호점으로 확장할 꿈도 꾼다고 했다. ‘이루후제’ 현사장님처럼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이 기사는 서귀포신문과의 기사 제휴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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