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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칭)애국탐라인연합회와 하모니십연구소(대표 신백훈)는 6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 소재 제주항일기념관(관장 이재부)에서 ‘스마트폰 활용법 및 자유·법치 사회 회복을 위한 시국강연회’를 강행했다. ⓒ제주의소리

강정영화제·야스쿠니 고발 사진전 대놓고 막더니 편향 시국강연은 묵인? 행정 ‘자가당착’

딱 ‘눈 가리고 아웅’ 이다. 바로 드러날 일을 순간 감추려고 얕은꾀를 부린 어설픈 행보에 다름 아니다. 항일기념관 조성 취지에 맞지 않은 특정 정치적 목적을 띈 시국 강연 개최를 막겠다던 제주도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국 제주 항일운동의 성소(聖所)인 조천읍 속칭 만세동산 소재 제주항일기념관이 ‘태극기 물결’로 포장한 극우보수 정치집회의 장으로 ‘오염’되고 말았다. 항일정신의 산 교육장이 이념논쟁의 장으로 변질되도록 행정이 방조한 꼴이다. 

(가칭)애국탐라인연합회와 하모니십연구소(대표 신백훈)는 6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 소재 제주항일기념관(관장 이재부)에서 ‘스마트폰 활용법 및 자유·법치 사회 회복을 위한 시국강연회’를 강행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약 100여명이 참석했고, 이들 중 30여명 가까이는 육지부에서 내려온,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로 알려졌다. 

자유·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국가 리더십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등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온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시국강연이, 3.1영령들을 추모하는 제주항일운동 성지에서 강행했고, 사실상 제주도가 이를 묵인한 셈이다. 

이날 제주항일기념관 강당에 참석한 참석자들은 저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었고, 일부는 ‘법치준수, 국가수호’ ‘종북좌파 몰아내자’는 손 피켓을 들어 보이며 항일기념관에서의 탄핵반대 시국 강연을 반대하는 문화계 인사들을 향해 “빨갱이들은 나가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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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항일기념관에서 열린 탄핵반대 시국강연회장 앞에는 4.3유족과 도내 문화예술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항일정신 산 교육장을 이념논쟁 장으로 변질시키지 말라"며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다. 시국강연회 참가자들 중 일부는 이들을 향해 "빨갱이는 나가라"고 망발을 퍼붓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당초 행사의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대관허가를 내준 것은 행정이다. 이후 행사 본질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항일기념관 조성 취지에 맞지 않는 정치 목적 시국강연회는 안된다”며 ‘서경석 목사’의 강연을 빼고 당초 대관 신청한 스마트폰 교육만을 하도록 하던지, 아예 대관허가를 취소하겠다던 결정도 행정이 내렸다.    

그러나 이런 약속(?)과 달리 탄핵반대를 서슴없이 드러낸 시국강연회는 서경석 목사 등이 그대로 강연자로 참석하는 등 행사는 대부분 예정대로 치러졌다. 

제주도가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이 아니면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앞서 제주도는 지난해 4월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신청을 불허했고, 2015년 광복절에는 제주시가 ‘군국주의 망령’을 고발한 권철 사직작가의 ‘야스쿠니 두 얼굴’ 사진전의 전시를 목관아지에 허가해줬다가 돌연 개막 이틀 전 불허했다.

당시 야스쿠니 신사에 물든 군국주의 망령을 고발하는 전시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찬양 사진전으로 곡해하는 코미디 끝에 사진전 개막 당일까지 공무원들을 동원해 결국 사진전을 가로 막는 오기를 부린 것도 행정이었다. 

이번 국정농단 책임자인 박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정치집회를 제주항일운동 성지에서 열리도록 그대로 방치(?)한 것도 행정 당국이다. 

당연히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자, 자가당착일 수 밖에 없다. 

제주도 고위관계자는 이날 시국강연회 직후, “오늘 오전에 공문으로 주최 측에 시국강연과 도민정서를 해하는 강연은 하지 말라”고 했고, “항일운동 정신에 어긋나는 강연은 하지 말라. 서경석 목사 강연도 빼라고 요구했다. 응하지 않으면 대관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주최 측이 강행해 버렸다”며 난감해 했다. 

이날 서 목사는 “촛불집회는 친북좌파 세력들이 주도하고 있다” “JTBC 태블릿 PC는 조작된 것이다. 이는 서울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는 등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탄핵정국이라고 해도 탄핵을 반대한다는 자기 소신과 주장을 펴는 이들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장소다. 항일운동의 성소를 정치집회의 장으로 ‘눈 감은’ 행정의 행위나, ‘자유·법치 사회회복’을 내걸고 항일기념관에서 뻔뻔하게 시국강연을 여는 극우 세력의 행위는 도민정서와 화학적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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