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7) 지장본풀이

지장본풀이

지장본풀이는 지장신의 내력을 풀이한 신화(神話). 어려서 부모 형제를 다 잃고 사고무친한 지장아기씨가 기구한 운명을 극복하여 불당에 불공을 드려 새의 몸으로 환생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지장본풀이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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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지장(마지막 지장본을 풀 때).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남산국과 여산국 사이에 자식이 없어 절간에 기자불공을 들여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를 지장아기씨라 불렀다. 아이는 온 가족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네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죽었다. 다섯 살에는 아버지가 죽고, 여섯 살에는 어머니까지 죽어버렸다. 연이은 불행으로 지장아기씨는 고아가 되었다. 외삼촌댁으로 식모살이를 갔으나 구박하며 내쫓고 말았다. 그러나 지장아기씨가 거리를 헤매다 잠이 들면 하늘의 부엉새가 내려와 날개로 덮어 얼어 죽지 않게 보살폈다. 날품팔이 생활을 하였으나 부지런하고 착하다는 소문이 났다. 

열다섯이 되니 중매가 들어왔고, 부잣집 착한 남자를 만나 혼인을 했다. 그러나 혼인을 하여 행복한 것도 잠시 1년도 되지 않아 시집식구들이 죽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에 시할머니, 시할아버지가 죽고, 열일곱 살이 되니 시아버지, 열여덟 살엔 시어머니, 열아홉 살에 낭군님까지 다 죽었다. 신랑이 죽자 시누이들은 지장아기씨를 죽이려 하였다. 지장아기씨는 시집을 나왔다. 주천강 연못에 빨래하러 갔다가 길가는 스님을 만나 운명을 점쳐 달라 부탁하였다. 스님은 불행을 이기려면 죽은 조상들과 낭군을 위해 굿을 하라 일러준다. 지장아기씨는 굿에 사용되는 명주, 기메전지, 시루떡 등을 모두 손수 정성으로 마련하여 죽은 영혼을 위한 전새남굿을 하였다. 

지장아기씨를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닌 재앙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들인 외삼촌이나 시누이의 학대와 위협도 괴로운 일이었다. 지장아기씨는 계속되는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죽은 부모와 남편을 위한 전새남굿을 하여 영혼을 편안하게 하였다. 그러나 죽어서는 새의 몸으로 환생하였다. 그런데 이 새(鳥)가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온갖 병을 일으키는 새(邪)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병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굿을 할 때 심방은 지장아기씨의 기구한 생애를 낱낱이 풀어 들려준 후에 환자의 몸속에서 흉험을 주는 새를 쫓아낸다.

새로 환생한 지장아기씨 -지장본풀이

옛날에 남산국이라는 남자와 여산국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원앙새처럼 사이가 좋았으나 자식이 없어 날마다 한숨으로 날을 보내냈었다. 

지장 난산국 신풀어 올리자-
지장아, 지장아 (후렴 : 소무들이 반복하여 따라 한다) 
지장의 본(本)이사 어디야 본인고. 강남은 천자국 일본은 주년국 우리나라 소저지국 지장의 본이여. 남산과 여산이 자식(子息)이 없어서 / 무후(無後)야 하더라(후손이 없더라)
어느야 절에서 영급(靈及)이 있던고
어느야 당에서 수덕(修德)이 있던고
동게남(東觀音) 상저절(上佐寺)
서게남(西觀音) 금벡당(金法堂)
영급(靈及)과 수덕(修德)이 좋아야지더라
송낙지 구만장(九萬) 대백미 일천석(一千石)
중백미 일천석 소백미 일천석
백근을 채와 원불당 가는고
원수룩(아기 낳기를 기원하는 불공) 드리니
지장의 아기씨
소슬와 나던고(솟아나더라. 태어나더라.)
한 살이 나던 해
어머님 무릎에 안자서 연조샐 놀린다(어리광을 부린다.) 
두 살이 나던 해
아버지 무릎에 연조샐 받던고 세 살 네 살에(三四歲) 나는 해, 
아버지 무릎에서 어리광을 부렸고, 그러나 그런 넘치는 사랑을 시샘했는지 
지장아기가 네 살이 나는 해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다섯 살 나는 해, 설운 아버지도 세상을 뜨셨고, 
여섯 살 나는 해, 설운 어머니도 오도독 죽고 말았다.
이년의 팔자여, 이년의 사주여, 어디로 가리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다 잃고 고단한 신세가 된 지장아기씨는 
동네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면서 지내려고 했다. 
외삼촌은 가는 날부터 개 밥그릇에 쥐나 파먹던 밥을 겨우 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런 밥도 더 이상 먹여주기가 아깝다며 길거리로 내쫓고 말았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죽으라는 건가. 
어머니 살았을 적에는 그렇게도 좋던 외삼촌이 어찌 저리도 변하는가. 
지장아기씨는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날품팔이해주고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지장아기씨의 이런 처량한 신세를 하늘옥황의 부엉새(鵬鳥)가 보고는 
밤이면 내려와 한 날개는 깔아주고, 한 날개로는 덮어주며 
얼어 죽지 않게 했다. 
인간세상에서 밥 한 술 못 얻어먹은 날은 하늘이 밥을 주고, 
하늘이 옷을 주었다. 
점점 지장아기씨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고 
일도 잘한다는 소문이 동서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리 저리 열다섯 십오 세가 되어 나이가 차니 
문혼장(問婚狀)_#1이 왔다.
#1  혼인을 청하는 문서.
양가에서 허락이 내렸고, 궁합을 가리니 궁합이 맞았다. 
신랑 집에서 예장이 오고, 이바지_#2로 어마어마한 재물이 보내져왔다.  
#2  혼사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여러 가지 물품. 
시집가는 날 지장아기씨는 새 신랑을 처음으로 보았다. 
동네방네에 새 각시 지장아기씨가 착하게 살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났다. 
시집에서 차려준 신혼살림은 유기 재물에 논이며 밭, 
소와 말(牛馬)까지 사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이었다. 
열다섯 살 어린 새 각시인 지장아기씨는 행복이 넘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 시집 간지 꼭 1년이 되는 열여섯 나는 해, 
시할머니 시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 
열일곱 나는 해, 시아버지께서도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 나는 해, 시어머니께서도 저승길로 떠났다.
열아홉 나는 해, 설운 낭군님마저도 오도독기 죽고 말았다. 
지장아기씨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남편까지 죽여 먹었으니 이년의 팔자여, 
이년의 사주여,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난 지장아기씨, 살길이 막막했다. 
시누이에게나 의지해서 살까 하여 시누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안에서 소곤거리는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누이들이 모여앉아 지장아기씨를 죽일 계획을 짜는 소리였다. 
남편이 죽은 그날부터 시누이들은 벼르고 있었다. 
“저 재수 없는 년을 처치하고 우리가 이 재산을 나눠 갖자.”
시누이는 아무리 좋아도 기저귀 찼을 때부터 시누이 텃세를 한다 했다.
지장아기씨는 그런 시집에서 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은장 놋장 유기 그 좋은 재물 다 버려두고 낯익은 거리를 떠나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지장아기씨는 대바구니에 한두 살에 입던 옷부터 
모든 행장 다 걷어 담고 주천강 연못에 빨래하러 갔다. 
시름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며 빨래를 하노라니, 
동쪽에서 스님 한 분이 오는 게 보였다.    
지장아기씨는 하던 빨래도 내버리고 스님을 불렀다. 
“대사님아, 가는 길 멈추시고 기구한 이년의 팔자, 
이년의 사주 좀 보아주고 가소서.”
지장아기씨의 간절한 부탁을 듣고 스님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원천강_#3 사주역법 책을 꺼내어 보더니 말하였다.
#3  원천강은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로 점으로 인간의 운명을 백발백중 알아 맞혔다고 함. 
“아기씨. 초년은 아주 좋은데, 중년은 아주 궂습니다. 
아기씨의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설우신 낭군님까지 죽은 원혼들을 달래주는 전새남_#4굿을 헙서. 
#4  병자를 살려달라고 기원하는 굿. 망자의 원한을 풀어줄 때도 이 굿을 한다.
그래야 아기씨가 편안하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스님은 제 갈 길로 떠나버렸다.
지장아기씨는 하던 빨래를 거두고 돌아왔다. 
그날부터 스님이 말한 전새남굿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서천강 들판으로 가서 뽕나무를 심었다. 
뽕나무는 심은 날부터 싹이 났고, 나는 날부터 잎이 돋았다. 
연한 잎을 따다가 알 까고 나온 누에에게 밥으로 주었다. 
누에 밥 먹이고, 누에 잠 재워서 고치가 되자 실을 뽑았다. 
뽑은 실을 꾸리에 감았다. 
지장아기씨는 누에실로 물명주 강명주를 짜나갔다. 
곱게 짠 물명주 강명주를 구덕에 넣어 등에 지고 
주천강 연못으로 빨래를 갔다. 
강명주 물명주를 석 달 하고 열흘, 백일 동안 정성을 들여 하얗게 바래었다. 
이렇게 공들여 마련한 명주는 
굿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데 쓸 것이었다. 
초감제에 쓸 다리_#5,
#5  굿에서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 놓기를 할 때, 명주나 무명으로 펼쳐놓는다.  
초공전에 쓸 다리,
이공전에 쓸 다리, 
시왕전에 쓸 다리,
삼공전에 쓸 다리, 
사자님전에 쓸 다리, 
군웅님전에 쓸 다리, 
영게님전에 쓸 다리, 
차사님전에 쓸 다리까지 모두 준비하였다.
그렇게 하고 남은 명주로는 무악기인 북, 장고, 징에 맬 끈을 만들었다.
악기 매는 끈을 하고도 남은 명주로는 
심방(巫堂)이 사용하는 요령과 신칼(明刀)의 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명주 열다섯 자와 
아강베포 일곱 자를 드려서 호롬줌치_#6를 만들었다.
#6  긴 자루. 스님들이 탁발을 다닐 때 가지고 다님. 
이렇게 모든 준비를 다하고 나서 지장아기씨는 
대공단고칼_#7로 삼단 같이 검은 머리를 삭삭 깎았다. 
#7  중들이 머리를 깎는 칼.
스님들이 머리에 쓰는 고깔모자를 쓰고 회색장삼을 입었다. 
손에 목탁을 들고 보니 완연한 중이었다.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탁발을 하여 쌀을 모았다. 
집집이 한 홉씩 얻은 쌀이 몇 섬 모이자 
동네의 청비바리_#8들을 불러 방아를 찧었다.
#8  어린처녀의 제주어. 
이여도 방애여 이여도 방애여
오공콩 찧는구나 이여도 방애여
온종일 방아를 찧어 만든 하얀 쌀가루가 보슬보슬해지니 
가루 치는 체로 다시 곱게 쳐서 떡을 만들었다.
도래떡, 송편은 물에 삶아놓고 
일곱 구멍 시루에 첫 징_#9을 놓고,
#9  시루의 층. 층과 층 사이에는 팥 또는 콩으로 고물을 넣는다. 
두 번째 징을 놓고 세 번째 징을 놓은 후 
수인씨(燧人氏)_#10를 불러다 불을 피워 시루떡을 쪘다.
#10  불의 신
당클을 매고 기메 전지를 오려 걸어놓고 
굿상에는 초감제에 쓸 시루떡, 초공전에 쓸 시루떡, 
시왕전 삼궁전에 쓸 시루떡을 올려놓고, 
영게님 차사님에 쓸 시루떡도 올려놓았다. 
지장아기씨는 굿상을 갖추어 잘 차려놓고 
죽어서 저승 간 조상과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열아홉 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설운 낭군님을 위하여 전새남굿을 이레 동안 하였다. 
“지장아기씨가 인간에 살아서 좋은 일 하였구나.” 
온 마을에 칭송이 자자했다. 
그 후 지장아기씨는 죽어서 새의 몸으로 태어났다.  
이 새가 사람의 몸에 들면 새(邪)가 되어 괴롭혔다.
머리로 가면 두통새 되고, 
▲ 만지장 닭.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눈으로 가면 눈 홀기는 흘기새, 
코로 나오면 거친 숨쉬는 악심(惡息)새,
입으로 나면 살림을 가르는 헤말림새, 
가슴에 가면 답답증 일으키는 열화새, 
오금에 붙어 조작거리는 오두방정새,  
이 새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온갖 병을 가져다주고, 풍운조화를 부렸다. 
그래서 병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굿을 할 때 
심방은 지장아기씨의 기구한 생애를 
낱낱이 풀어 들려준 후에 
환자의 몸속에서 흉험을 주는 새를 쫓아낸다.

전새남 올린다 전새남 올려두고 
지장의 아기씨 부모야 조상들
신가슴 열리고 어딜로 가리요
은장의 거리로 놋장의 거리로
다 찾아 가는고 가다가 보난에 
지장새 앉아서 지장씰 감더라 
요새야 저새야 주어나 훨쭉 훨쭉 훨짱 
지장만보살 신풀었습니다. 
난산국 본산국 신풀었습니다 이-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만지장은 시왕맞이 끝에 액막이하고 지장본풀이를 창한 뒤, 두 하늘 굿이 막판 양궁을 숙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지장본을 풀고, 닭을 죽이는데 이 굿을 만지장이라 한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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