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칼럼] 태극기가 수모를 당하고 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삼일절 노래'는 1946년에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의뢰로, 위당 정인보의 가사에 작곡가 박태현이 곡을 붙인 것이다. 작사가 정인보(1893~1950)는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박은식, 신채호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작곡가 박태현(1907~1993)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첼로 연주가이며 동요와 가곡을 작곡한 작곡가이다. 

삼일절 노래에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라는 가사가 있다. 태극기(太極旗)는 흰 바탕의 기 위에 빨강색과 파랑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乾)·곤(坤)·감(坎)·리(離) 4괘(卦)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 

태극기는 조선말기인 1882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이 국기를 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조선이 청과 분리된 자주국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조선이 자주국임을 주장하는 의미로 탄생했다. 그 후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정식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태극기에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지만 국가주의나 국가에 대한 복종을 뜻하는 의미도 있다. 태극기가 민심의 상징이 된 건 1919년 3.1운동 때다. 100만명의 조선인이 일제에 저항했고, 가슴속에 태극기를 꺼내들었다. 이후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해방 후엔 헌법정신이 됐다. 1960년 4.19혁명, 1987년 6월항쟁 역시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오랜 기간 태극기는 저항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태극기의 의미를 변질한 세력은 유신정권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학교에서부터 강요했다. 독재세력은 태극기를 통해 국가주의를 강요했다. 이들이 강조한 애국심 이면에는 독재를 정당화하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는 효과를 가져왔다. 

강소천이 작사하고 박태환이 작곡한 동요가 학교 운동장에서 울려 퍼진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입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펄럭입니다.” 

태극기 집회, 태극기 수모

요즘 태극기만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태극기가 주말마다 열리는 탄핵 반대 집회의 상징이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보수단체 등에서 태극기를 정치적 의미의 ‘애국 보수’와 동일시하면서 자랑스러운 국기(國旗)가 아닌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대한독립을 위해 온 겨레가 태극기를 들고 분연히 일어섰던 기미년의 참뜻마저 훼손되고 말았다. 

태극기를 들고 ‘탄핵 무효’를 외치는 이들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간간이 청년들도 보인다. 그들이 뱉어내는 생경하고 섬뜩한 언어는 욕설과 협박에 가깝다. 대부분 시민들은 눈길을 주지 않고 총총 스쳐간다. 마뜩찮아하는 눈으로 시위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보인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뒤틀린 것뿐 아니라 태극기 자체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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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에서 박사모 등이 참여한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 제16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출처=오마이뉴스.

그들이 마치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그들은 헌법정신에 나온 임시정부를 부정한다. ‘다까키 마사오’ 박정희 친일군 행적을 감추기 위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건국절로 내세웠다. 5․16군사군데타를 일으킨 독재자를 미화하기 위해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였다. 어린 소녀를 끌고 가 성노예로 삼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요구에 따라 합의를 한 그들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를 다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태극기 집회’로 부른다. 초기에는 맞불집회라고 불렸다.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가 집회를 주최한다. 이번 정국이 끝나면 태극기의 의미가 변질된 채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태극기의 의미를 변질시키는데 일정부분 성공했다.  

3.1절이면 연례행사였던 태극기 나눠주기 행사가 취소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탄핵반대 집회참가자들 일부가 시민이나 취재진을 태극기로 폭행하기도 했고, 계엄령을 주장했다. 태극기가 반민주적인 집회의 수식어가 됐다. ‘태극기’만 극우 세력에게 빼앗긴 건 아니다. ‘애국’이라는 말도 이미 뺏겼다. 민주주의를 희망하고 제국주의나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은 극우 세력에게 ‘애국시민’, ‘태극기’를 빼앗겼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빨갱이와 종북 좌파로 비난하며 잡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일부 보수 단체 집회 참가자들은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구호가 적힌 손 팻말을 들기도 했다.  

2017년 1월 26일, JTBC는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보수 단체들이 돈을 주고 시위자를 동원한다는 증언을 포함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모든 태극기집회 참여 단체들은 이를 전면 부정했다. 친박단체 집회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사실 그 동안 계속돼 왔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최근의 친박집회도 돈을 주고 참가자를 동원한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왜 ‘태극성조기’인가? 
 
세상은 변하고 있을까? 최근 미국에서 재미동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미지를 합성한 로고 사용으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태극 문양에 성조기 무늬를 덧입힌 모양새였다. 재미한인차세대 지도자 모임 ‘넷캘(NetKal)’이 ‘재미한인 봉사의 날’ 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활용해 한인 2세들의 정체성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도 했지만, 반대 쪽에선 태극기 훼손 행위라며 비판을 가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었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었다. 독재에 대항해 태극기를 든다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로의 변화, 국가 정체성의 변화 요구였다. 요즘 서울광장에는 한미동맹을 강조하기 위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은 한손엔 태극기, 또 다른 한손엔 성조기(星條旗)를 들었다. 대형성조기도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에 'MAKE KOREA w AMERICA GREAT AGAIN!! 탄핵무효'라고 적은 대형 현수막도 나왔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은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집회에 나오는 성조기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곳을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

성조기는 미합중국의 국기로서 'Stars and Stripes'라 불린다. 성조기를 들고 나온 이유는?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친미로 다져왔다. 브루스 커밍스가 1947년 미 군정 고위 한국인 관료 115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1명만이 항일 운동과 관련 있고 나머지는 일본 강점기 때 관료, 군인 등이었다. 군사정권은 인권을 유린했고, 반대자들을 탄압했지만 세습 왕조국가나 다름없는 북한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강화하면서 반공과 친미는 보수의 종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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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한기총 주최로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는 늘 성조기와 한 쌍이다. 성조기와 박근혜·트럼프 현수막은 왜 들고 나왔을까? 성조기를 든 이유로 미국 참전과 구호 지원, 한미 동맹 강화, 트럼프의 박근혜 지지 기대 등을 꼽았다. 대한민국 우익의 깃발은 오래전부터 태극기가 아니라 ‘태극성조기’였다. 왜 거리의 우익들은 미국 국가를 틀어대고 ‘태극성조기’를 드는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와 함께 올라간 그 성조기. 한국 우익의 핵심은 반공주의다. 한국 우익의 ‘반공’은 사실상 ‘평등에 대한 반대’이다. 그들에게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 전부다. 공정 경쟁의 토대가 아니라 몇몇 재벌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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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태극기 집회는 계속 떠든다. 한미동맹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도 바로 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더욱 강조하고 미국에 우리 국민의 의지와 신뢰를 더욱 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우리는 적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점령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보수에게 미국은 전쟁에서 한국을 구해준 ‘구세주’에 가까운 나라라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미국이 우리를 구해줬다는 냉전논리가 일종의 신화처럼 작동하고 있다. 미국이 있어야 우리가 산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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