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5) 우리가 진짜로 탄핵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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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심리학 | 에이브러햄 H. 매슬로 (지은이) | 정태연 | 노현정 (옮긴이) | 문예출판사 | 2005-08-10 | 원제 Toward a Psychology of Being (1968년)

쫓겨난 대통령을 보며 아이들을 생각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 어른들의 고리타분한 시대와 어린이들의 새로운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모르는 일입니다. 21세기 심리학자로 불리는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오래된 비밀들을 알게 되었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대학 시절 심리학을 피했는지, 초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왜 공부와 담을 쌓았는지 하나하나 돌이켜보는 과정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취급당하고 있으니 이제 와서 탄핵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어릴 때부터 취급당하는 데 익숙하니까요. 매슬로는 타인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자신의 법칙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때때로 나는 글을 쓸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손자의 손자를 상대로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고자 한다. 내 글은 어쩌면 그 아기들에 대한 사랑 표현인 셈이다. 이 글이 돈을 남겨주지는 못하겠지만 애정 어린 기록과 조언, 그리고 내가 체득한 교훈들을 남겨줄 것이다. - 매슬로, <인간 욕구를 경영하라>

매슬로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내적 본성이 겉으로 나오고자 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했습니다. 억눌려 있었던 본성이 걸어나오면 우리 어른들은 그에 걸맞는 ‘손님맞이’를 해야 합니다. 탄핵의 제단에 박근혜 대통령만을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1호에 불과합니다.

전국시대 북방의 연(燕)나라가 내란이 벌어져 위태롭자 강대국 제나라가 도와주는 척하며 정벌에 나서자 백성들이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연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제나라의 야심이 드러나면서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제나라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롭지 못한 나라가 의롭지 못한 나라를 대신하는 걸 고사성어로 이연벌연(以燕伐燕)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인 탄핵 결정은 자칫하면 이연벌연으로 몰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탄핵해야 할 것들

먼저 고통과 좌절, 욕구불만의 심리학을 탄핵해야 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시기를 거치면서 덜 떨어지고 불안정하고, 멍청하고, 철없고, 개념 없는 철부지라도 된 듯한 취급을 받습니다. 매슬로는 자신의 대표작인 <존재의 심리학>에서 프로이트를 기반으로 한 학교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통찰했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에 의하면, 아동은 변화를 꺼려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이 선호하는 편안하고 비활동적인 단계에서 새로운 갈등 상황으로 그들을 계속적으로 내몰아야만 한다. -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매슬로는 스스로를 "프로이트주의자이고 행동주의자이며 인본주의자”라고 했으며 프로이트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현재 속에 과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너머를 향해야 하며, 프로이트가 밝혀놓은 부분의 반쪽을 채워서 인간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 매슬로 심리학의 지향점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육과정 평가 연구’ 2017년 2월호에 실린 김주환 교수(안동대학교 국어교육과)의 ‘중학생들의 작문 능력 실태 조사 연구’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생의 작문 점수는 평균 49.53점(100점 만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매일매일 참담한 심정으로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의 문장 구사능력은 문장을 온전히 완성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가나다는 읽지만 글의 내용 파악을 못하는 신문맹(新文盲)은 초등학생도 위협하는 지경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리터러시(literacy) 능력, 즉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갈길이 무척 멉니다.

20대 성인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이나 수험생, 직장인이 정신과 상담시 부모와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원래 그 나이가 되면 혼자 오기 마련이죠. 청소년 시절에 해야 할 고민을 20대에 하고 있으니 우리의 정신수준이 퇴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사회 초년생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이상 징후는 헌법재판소의 탄핵보다 더 무서운 경고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탄핵당해 마땅한 사람들은 우리 같은 부모, 교육자, 교육정책 입안자 등입니다. 매슬로는 아이들이 퇴행하는 까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어른들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들이 많은 혼란을 겪게 되는 이유는 성인들이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성인들의 가치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가치에 근거해 살아가고 있는데, 당연히 이러한 가치는 미성숙하고, 무지하며, 청소년들의 혼란스런 욕구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청소년기의 가치가 가장 잘 투사된 것이 '서부' 영화의 카우보이나 불량한 갱이다.  -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우리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어른들은 정말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효도(孝道)라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 가족들의 행태를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논어>에는 ‘능양(能養)’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부모님께 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 사드리고 좋은 옷 사 드리는 등의 행위를 말합니다. 공자는 개나 말 같은 가축도 소중하게 사육되는데 부모를 모시는 것은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아이의 영혼을 부탁해요

이 맥락에서 나온 개념이 ‘뜻을 봉양한다’는 뜻의 양지((養志))입니다. 성인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마음을 챙기는 것과 자녀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효(孝)란 강물처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어떤 존재의 최종 목표가 ‘본성’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이르러 ‘자기 보존’ 본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매슬로가 ‘자기실현’을 말할 차례입니다. 이 개념은 흥미롭게도 뇌손상을 입은 군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안되었습니다.

뇌 손상 군인들에 대한 골드슈타인의 연구는 매우 잘 알려져 있다. 환자가 부상 후에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재조작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자기실현이라는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그러니까 우리들이 받았던 상처와 고통을 미래 에너지의 동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난을 당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동안 많은 수난과 피탈 속에서 살았던 우리 민중, 그리고 학살과 착취, 탄압에 시달렸던 제주 백성들. 그리고 정상적인 성장이 어려울 만큼 시달리는 아이들. 우리들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매슬로의 말처럼 “인간의 덕성을 저버리는 모든 행동,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모든 범죄와 모든 악한 행동”이 예외 없이 우리의 무의식에 입력되어 우리 스스로를 경멸하도록 만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경멸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은 거의 자해 수준입니다. 제주말로 아이들의 ‘기십’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주 땅에 기십 좋은 미래의 태양이 비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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