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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그렇게 탄핵의 봄을 맞고 있다. 5월9일 ‘장미대선’을 앞둬 대선주자들을 향해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외면한 구상권 철회와 사면복권이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개항한 제주해군기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장미대선’이 현실화됐다. ‘장미대선’은 대한민국을 바로세우고 제주가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돼야 한다. 때 맞춰 제주도가 주요 현안과 중장기 정책사업 등을 대선공약에 반영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관건은 ‘선택과 집중’이다. 중요도와 실현가능성을 기준으로 ‘소수정예 공약’을 선별·반영하지 못한다면 뜬구름 잡는 꼴이 될 뿐이다. <제주의소리>가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제주 어젠다를 추려, 7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장미대선, 제주어젠다]⑦ 제주해군기지 갈등 해결…구상권 철회, 사면복권 너머 상생센터 건립까  

2007년 4월26일. 400여 년간 조상대대로 평화롭고 우애롭게 살아오던 한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기 시작한 날이다. 제주에서 가장 물 좋고 제일 살기 좋아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리던 강정마을은 그렇게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마을공동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벌써 만 10년. 순박하기만 했던 마을주민들은 찬성과 반대 입장에 따라 철천지원수가 됐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국가를 향한 분노에 찬 투사가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헤아리기도 어려울 숱한 주민과 시민사회 운동가들을 범법자로 내몰았다. 

마을인구 1900여명, 유권자 1200여명 중 단 87명만이 참석한 마을 임시총회에서 그것도 마을향약에도 어긋난 절차로, 그 흔한 찬반토론도 없는 만장일치 박수로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유도해낸 국가와 해군의 오만함이 부른 비극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정당치 않은 절차에 의해 제주해군기지 유치 결정’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꿰게 함으로서 평화롭던 강정마을공동체를 풍비박산 낸 그 뒷배에는 국가와 해군, 당시 김태환 제주도정이 있었다는 점이고, 그 갈등의 고통과 피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단 점이다. 

그 즈음 제주해군기지는 안덕면 화순항과 남원읍 위미항을 후보지로 검토했지만 번번이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던 때였다. 그런 시점에 강정마을 임시총회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가 자신들의 마을에 건설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할때였다. 

강정마을 자치향약에 의해 소집되는 마을 임시총회는 총회 개시일 전 7일간 공고토록 되어 있으나 단 4일밖에 공고되지 않았고, 그것도 마을에 게시됐던 공고문의 안건은 ‘제주해군기지의 건’이었으나 정작 마을총회가 열린 회의장 안에 내붙은 공고문에는 ‘제주해군기지 유치의 건’으로 무슨 영문인지 ‘유치’라는 두 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노련한 ‘군 작전’과도 같았다. ‘잘못된 절차’에 의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었다. 

하물며 강정마을 초입에 자리한 켄싱턴리조트(옛 풍림콘도)를 건축할 당시에도 건축 동의안은 마을 회의가 10여 차례 열린 후에야 통과됐다. 그런데도 약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국책사업을 결정하면서 ‘번갯불에 콩 볶듯’, 공고일수도 채우지 못하고 공고문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단 한 번의 짜고 치는 날치기 총회 개최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 해군기지 갈등이 한창이던 2007년 4월,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이 제주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군사기지 설치반대' 집회에 참가한 성직자.도의원.도민들을 경찰이 무차별 강제연행되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그가 머리 위로 하트 손짓을 날리는 모습이다. 연행되는 도민들을 향해 마치 조롱하듯한 당시 김 국방장관의 적절치 못한 포즈는 국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도민들을 향한 무시와 강행 의지를 여과없이 대변하는 듯 했다. 이 사진은 2007년 제주보도사진전 '6월의 함성'에 전시된 사진이다.
그렇게 지난 10년 강정마을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싸움 속에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집성촌이기도 한 강정마을 안에서 조상 묘 벌초나 제사도 나뉘어 삼초 조카가 등을 돌리고, 누대를 이어 혈육만큼 가깝던 이웃끼리 원수 대하듯 멱살잡이를 일삼게 되는 기막힌 현실은 대체 누가 만들었나.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조기대선’을 치르게 됐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2007년 4월26일 이후, 그해 5월31일 도지사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많은 선거를 치렀다. 2007년 12월 대선, 2008년 4월 총선, 2010년 6월 지방선거, 2012년 4월 총선, 2012년 대선, 2014년 6월 지방선거, 2016년 4월 총선까지 총 8번의 선거 동안 두 번의 대선, 세 번의 총선과 지방선거를 각각 치렀다.  

정치인에게 공약(公約)이란 어떤 일에 대해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다짐하는 약속이고 맹세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유력 후보들이 남발(?)해온 공약과 구호가 공허할 뿐이라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이번 대선에서도 관성처럼 받아들여 헛웃음을 웃고 말아야 하는 걸까. 

“제주해군기지 철회” “해군기지 공사 중단 및 원점 재검토”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해군기지 갈등 완전한 해결” 등에서부터 “구상권(구상금 청구 소송) 철회” “(해군기지 반대 사법처리 대상자)사면복권 실시” 등은 모두 낯익은 제주해군기지 관련 공약들이다. 물론 아직까지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은 공허한 메아리들이다. 

지금까지 구상금 청구 소송에 휘말린 '피고'는 조경철 현 강정마을회장을 포함한 주민과 5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모두 121명이다. 구상금 청구 소송은 제주해군기지 1공구 공사를 맡은 삼성물산이 “공사 지연으로 약 300억원을 손해봤다”며 해군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해군은 “이 가운데 34억5000만원을 조 회장 등 강정주민과 해군기지 반대단체가 물어야한다”며 소송을 지난해 3월 제기했다. 2공구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제기한 손해배상 요구도 있어 해군이 강정주민을 대상으로 제기할 구상금 청구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진정성 있게 사전 주민동의나 설득 과정도 거치지 않고 국책사업을 밀어붙여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반대와 마찰로 발생된 것을, 거꾸로 국가가 지역주민에게 구상금을 청구한 사례가 아직 없었음은 물론,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과정에서 사법 처리된 마을주민과 활동가 등이 무려 206명이다. 강정마을과 제주사회의 아픔과 눈물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바꾸면 그만인 것이고, 처음부터 약속이 아닌 것이며, 이미 지키지 못할 걸 알면서 내는 게 정치인들의 ‘공약(空約)’ 아니냐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서글픈 역설을 대선주자들은 깊이 자성해야 한다. 그 같은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맞게 된 조기대선을 통해 대선주자들이 강정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공약 제시와 실천에 나서야 하고, 구상권 철회와 사면복권은 물론 국가가 강정마을에 대한 ‘유감 표명’ 수준의 사실상의 위민(爲民)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치기를 부리듯 마을주민들은 안중에 없이 밀어붙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이미 준공돼 지난해 개항됐다. 국가는 해군기지로 야기될 수 있는 사회·문화·경제상의 각종 문제와 민원에 대해 민간차원의 지속적인 연구조사를 지원함으로서 주민들과 상생할 것을 피력해야 한다. 

유흥업소의 난립과 기지 환경오염 문제, 갈등 트라우마 피해 등은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당장 우려되는 것들이다. 마을주민들의 입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순수 민간연구조사기관 설립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관련분야 박사급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된 (가칭)‘제주해군기지 상생센터’ 등을 제안하는 배경이다.    

강정주민과 도민, 해군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칭)‘구럼비 치유 문화예술제’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지역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등 조심스럽지만 강정마을 갈등치유를 위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각론 차원의 방안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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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31일 강정마을내 해군기지 군관사 공사현장 앞에 설치됐던 해군기지 반대 망루에 대한 군과 경찰의 진압작전 당시 격렬히 저항하는 강정주민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황경수 제주대학교 교수는 “제주해군기지가 강정주민들의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외면하고 이미 개항됐다. 주민들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해군기지를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나 일본 오키나와 해군기지 사례를 보더라도 기지 개항에 따른 유흥업소 난립과 기지내 환경오염 문제 등이 당장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은 국가가 지역주민을 위한 구조적 지원시스템을 만드는데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해군기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지 않으면 다시 그 피해는 온전히 강정주민들에게 당장 돌아온다”며 “국가가 지원하는 순수 민간연구소를 만들어야 하고, 사면복권과 구상권 철회 등은 치유와 상생을 위해 국가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라는데 대선주자들의 인식이 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비롯된 역사적인 ‘2016헌나1’의 헌재 판결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였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탄핵의 봄을 맞았고, 5월9일 ‘장미대선’을 치를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외면한 구상권 철회와 사면복권이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의 첫걸음임을 대선후보들은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작위이건 부작위이건,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상관없이 대선후보들과 정치권은 ‘강정마을과 제주도민’을 더 이상 기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준엄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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