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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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후유장애인협회 회원인 오인권 할아버지는 1949년 신양해수욕장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는 66년만인 2014년 정뜨르비행장 유해발굴을 통해 시신을 수습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4.3 70주년 D-1년] (2) 세살때 총상 오인권 할아버지...광주트라우마센터의 교훈 ‘독립화’
  
1949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해수욕장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갓난아이를 가슴에 품은 여성은 모래바닥에 머리를 치며 그대로 쓰러졌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모래사장을 기어다녔다. 다시 한번 총탄이 바닷가를 향했다. 조준사격이었다. 총알은 아이의 양쪽 팔을 스치듯 지나갔다.

놀란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모래사장을 기어 다녔다. 이를 지켜보던 군경도 죽여서는 안될 아이로 생각했는지 더 이상 총구를 겨누지 않았다. 

오인권(71) 할아버지는 당시 세 살배기였다. 백사장을 기어 나온 아이는 주민들 손에 이끌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어머니 현정생(당시 25세)씨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의 아버지를 수소문 했지만 허사였다. 성산포지서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던 아버지 오명언(당시 27세)씨는 4.3 광풍 속에 집을 나선뒤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가 산으로 갔다는 소문이 돌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군경의 탄압은 계속됐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아이의 유년 시절은 충격과 허기진 생활의 반복이었다.

자라서는 아버지 기일을 몰라 생일인 음력 8월10일마다 제사를 지냈다. 그러던 중 2014년 4.3희생자 유해발굴 과정에서 아버지 유골이 제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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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후유장애인협회 회원인 오인권 할아버지가 2014년 4.3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확인 결과 통지서를 보고 아버지(오명언)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66년만에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한 오인권 할아버지는 2015년 유골을 고향인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가족묘지에 모셨다.

“총알이 내 팔과 가슴쪽으로 스쳐 지나갔어. 어린 나이에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 이후 삶은 말도 못해. 차라리 그때 모래판에서 총이나 맞아 죽는게 나았을지도 모르지…”

제주4.3특별법 제정과 국가추념일 지정이 이뤄졌지만, 생존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아직도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설치는 불안한 삶이 벌써 69년째다.

제주도가 2015년 제주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 의뢰해 진행한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 생존 희생자 중 39.1%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고위험군이었다.

일반 상태를 뜻하는 안정군은 2.7%에 불과했다. 경도위험군은 16.4%, 중등도위험군은 41.8%였다. 고위험군을 포함하면 위험군 분류 대상만 97.3%에 이른다.

어린나이에 4.3을 경험한 일부 생존자들은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대인기피와 정서불안 등을 겪고 있지만, 정작 이를 전담할 트라우마센터 건립사업은 여전히 제자리다.

제주도는 2015년 1월 제주대학교병원을 위탁기관으로 지정해 제주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개설했지만, 제주4.3희생자 유족들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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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제주국제공항(옛 정뜨르비행장) 활주로에서 진행중인 4.3희생자 유해 발굴 장면.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정신건강법 제13조에 근거해 자살예방과 위기관리를 하는 기관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치유하고 공동체 회복을 돕는 트라우마센터와는 엄연히 다르다.

국가폭력 피해에 대한 대표적 국내 치유지원 기관은 5.18피해자를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다. 광주는 정신건강법과 정신건강 증진 조례에 근거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2012년 10월부터 2년간 시범운영이 끝나자 광주시는 운영기간을 연장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국내 첫 트라우마센터지만 아직 상설기구화 등 조직안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2016년부터는 정부의 예산 집행까지 끊겼다. 결국 광주시는 독자사업으로 방향을 정하고 지난해부터 자체 예산을 투입해 트라우마센터를 이끌고 있다.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처럼 정신건강법에 근거를 둘 경우 법적 안정성과 독립성을 확보가 힘들다. 제주도가 4.3트라우마센터 설립 근거를 4.3특별법에 두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시는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재단이나 법인 형태로 독립화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하는 모든 법인은 행정자치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어 이마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이진 광주시의회 운영전문위원은 “광주트라우마센터는 복지부 사업이 아닌 광주시 독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법인 전환과 함께 지원조례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문민서 광주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유사업은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독립적인 치유시설이 필수”라고 밝혔다. 

강 부센터장은 “4.3트라우마센터 성공의 핵심은 피해자들과의 신뢰감 형성”이라며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과 전문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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