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51) 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bst-51.png
▲ 조정환 지음 『예술인간의 탄생-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감성혁명과 예술진화의 역량』갈무리, 2015.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1959)에서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활동 형식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노동은 인간이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작업은 생존을 위한 인간활동 이상의 인공세계를 제작하는 활동이다. 행위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창출하는 존재기반이다. 인간의 조건을 다시 사유한 아렌트는 1)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노동과 2) 물질형식에 기반을 둔 예술창작으로서의 작업, 3) 비물질 예술활동에 유비할 수 있는 행위 등 인간활동 전반을 두루 살폈다. 이런 맥락에서 아렌트는 정치철학자일뿐 아니라 총체적 수준에서 인간의 일을 재검토한 인문과학자이다.

조정환 또한 정치와 예술을 인문과학적 차원에서 하나의 궤적으로 엮어낸다. 그는 1980년대 급진적인 혁명운동을 이끌었던 정치운동가이자, 노동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예술운동가이다. 혁명의 시대가 지난 이후 조정환의 시간은 정치와 예술 양면을 겸비한 공진화의 시대를 맞았다. 그는 『인지자본주의』에 이어 『예술인간의 탄생』을 냈다. 그것은 정치철학과 예술과학의 융합을 일군 인간활동 보고서이자 예견서이다. 그의 작업은 방대하고 장중하다. 그는 정치와 예술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선상에 올려놓고 양자 간의 조화와 대립을 체계적으로 성찰하면서, 경제인간을 극복하는 예술인간 개념으로 인간존재 규정의 미래상을 제안한다. 

근대 이후의 예술 또는 예술노동은 그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공론장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예술노동이라는 인간의 실천양식은 예술이라는 공론장을 통하여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으로 성립하며 체계적인 전문화 과정을 거쳤다. 수 천 년동안 지속해온 예술(노동)은 최고의 기술적 완결과 정신적 가치를 집약한 인간활동의 핵심으로 평가받으며 근대성을 창출했다. 예술(노동)은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문화민주주의 관점과 맞물려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주문생산에 의거해 개인이나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왔던 예술(노동)은 그 수요/향유층이 개인이든 공공이든 간에 자율생산 기반의 창조적인 활동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예술(노동)의 자율성은 자본주의라는 근대적 경제체제에 종속하고 말았다. 

예술(사)의 종말을 공언한 예술 담론과 실천은 전위예술론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는 근대 이후의 예술을 향해 변화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의 본성을 가름하는 창조적 행위로서의 노동가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서, 예술은 본연의 사용가치를 지향하기 보다는 화폐가치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교환가치에 무게중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제 예술은 자본주의 예술체제라는 새로운 제도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는 비관적 진단이 팽배하다. 하지만 조정환의 진단에 따르면 이게 다는 아니다. 그의 핵심은 예술의 실천적 가치를 복원하여 경제인간으로부터 예술인간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데 있다. 경제에 잠식당한 자본주의 예술체제는 또 다른 예술체제나 예술개념에 의해 극복 가능한 하나의 이행기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검토사항이 있다.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에 묶인 노동과 예술의 모순 관계를 넘어설 노동예술 개념을 해명하는 일로서, 예술을 노동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내포한다. 예술 또한 인간을 인간으로 성립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노동 가운데 하나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과 예술, 일과 놀이는 이성과 감성, 합목적성과 비합목적성 등으로 나뉘는 이원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체로서 인간성을 완성하는 길이자 틀이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노동은 정주와 이주, 정규와 비정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성의 국면 등에서 이중의 소외가 발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투쟁의 최전선이다. 예술이라는 노동도 마찬가지다. 예술노동 또한 가장 첨예하고 처절하게 갈등하는 담론과 실천 공간이다.

자칫하면 노동과 예술을 이원화하여 예술의 노동 가치를 망각할 위험도 존재한다. 경제인간과 예술인간을 구분하는 관점으로 혹여 노동과 예술을 확증적인 이원구조로 사유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20세기 관점으로 노동과 예술 양자를 가르는 강단좌파의 주장도 있다. 엘리트 예술장에서는 예술이 노동을 다루는 일조차도 낯설게 읽히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일각에서나마 노동을 소재나 주제로 삼는 예술이 굵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노동예술’이라는 의제는 ‘노동과 예술’, ‘노동의 예술’, ‘예술이라는 노동’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포괄한다. 노동예술은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의 역사는 물론 노동의 현재와 미래를 사유한다. 조정환은 성찰적인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로 경제인간이 예술인간으로 진화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술이 노동을 사유하듯, 경제로 직결하곤 하는 노동의 사유가 예술적 성찰을 통하여 더욱 넓어지게 하는 일. 조정환이 예술인간을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20세기 예술운동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엘리트예술로 귀결하고는 종말을 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활동의 근본문제를 재구조화기 위한 치열한 사유와 실천이 담겨있다. 조정환은 그 씨앗을 살려 인간활동의 본성을 예술활동을 통한 인간해방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누구나 예술가다’라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선언을 ‘누구나 기업가다’라는 명제로 전환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동시대 예술의 역할은 경제인간을 예술인간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 배려, 관리할 수 있다’는 명제의 예술인간은 ‘모든 사람이 기업가가 되어 자신의 노동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경제인간의 명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개념이다.

예술가는 경제인간으로부터 예술인간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획된 인간활동을 해방하여 다중지성을 일깨우는 존재다. 그것은 문화상품으로 얼룩진 예술노동 생산품, 즉 예술작품의 유통질서로부터 탈피하고, 예술적 소통을 통해 새로운 인지를 획득함으로써 경제인간의 질서를 거부하고 예술행위의 공유지를 생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감성혁명과 예술진화의 역량’을 이야기하는 조정환의 예술인간 개념은 경제인간 개념에 포획된 21세기 동시대인들에게 새로운 저항주체로서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예술과학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통틀어 통합적인 인지체계로 재구조화하려는 21세기 감성과학의 시대에 조응하는 새로운 예술체제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명쾌한 답변이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 김준기 관장

kimjunki.png
▲ 김준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 예술학과 학부 및 석사 졸업 및 같은 학교 미술학과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과학연구소 대표 역임.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2014-2016), ‘프로젝트대전’ 총괄(2012,2014), ‘해인아트프로젝트 커미셔너’(2013) 등을 역임했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으로 공공미술과 사회예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과학예술과 우주예술을 연구 및 기획하고 있고, 올해 처음 열리는 ‘제주비엔날레’를 총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