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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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 D-1년] (4) 4.3교재 제작으로 평화·인권교육 첫발...' 1시간 의무화' 아쉬움

제주 4.3사건이 발발한 지 69년이 흐른 2017년. 드디어 제주 교육 당국이 4.3 교재를 제작, 각급 학교에 배포했다. 교재 제작이 전부는 아니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4.3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4.3 교육이 본 궤도에 오른 셈이다. 

아직도 4.3을 '빨간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상당수는 4.3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4.3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중심의 제주 청년들이 1948년 4월3일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한 것에만 주목하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알려졌다시피 4.3의 도화선은 3.1절 기념대회다. 1947년 제주북초등학교(지금의 북초등학교)에서 열린 3.1절 기념대회 때 기마경찰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치였다. 기마경찰이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려하자 대회에 참석한 수만명이 항의했고, 이에 자신들을 습격한다고 오인한 경찰관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자리에서 6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부상했다. 4.3이 발발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다. 이 점만 봐도 4.3이 일부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공산폭동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3은 더 이상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주홍글씨가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4.3교육이 꼭 필요한 것도 4.3과 같은 끔찍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 초, 중등 4.3교재 마침내 탄생 

4.3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총 1만4231명. 이중 3월말 현재 생존자는 단 115명이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도 적지않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 115명이 운명을 달리하면 4.3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는 사라지게 된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 시절부터 4.3교육을 주창해온 이석문 교육감은 지난 2014년 제주 교육 수장에 오르면서 ‘4.3 평화·인권 교육’ 활성화를 선언했다.  

그가 교육 수장에 오른 지 3년이 다 되어서야 4.3 교재가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5~6학년을 위한 초등용, 중·고등학생을 위한 중등용 2가지로 제작된 4.3 교재는 도내 각급 학교에 배포됐다. 

초등 교재의 경우 5학년은 학급수에 따라, 6학년은 학생 1명당 1권씩 배부됐다. 또 교사용 지도서도 학급수에 따라 보급됐다. 

중등 교재는 학급수에 따라 배부됐고, 전국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직속기관 등에도 보급됐다. 또 도교육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서울·충북·광주교육청 관내 고등학교에도 일부 배포됐다. 

지난 3일 69주년 4.3추념식에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비롯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등 4명이 참석해 “4.3 등에 대한 미래지향적 역사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교육감들은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4.3 유족들과 도민들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적인 역사 교육의 싹을 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4.3 역사가 발현하는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 상생의 가치를 역사 교육에 담아 세계 민주시민을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4.3 전국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각 지역에서 4.3 역사 교육도 약속했다. 

교육감들은 “교육 협력을 확대해 전국 아이들이 수학여행 때 제주를 비롯해 각 지역 역사 유적을 방문해 미래 가치를 체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4.3 교재를 비롯해 전국 교육청의 (역사)교재를 적극 공유하고,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만의 아픔인 것처럼 여겨졌던 4.3의 역사가 전국 학생들에게 본격적으로 교육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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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공사가 한창인 4.3평화교육센터.
▲광주민주화운동, 최소 5시간 이상 교육  

4.3 교육은 제주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5.18광주민주화운동 교육 보다는 늦었다. 

광주는 5.18기념주간에 2시간 이상 민주화운동을 의무적으로 교육하고, 도덕, 사회, 한국사 등 수업 때 5.18 관련 보조교재를 활용해 추가적으로 교육한다. 

또 5월18일쯤 계기수업과 현장학습 등 프로그램으로 모든 학생들이 최소 5시간의 수업을 받는다. 교재도 ‘5.18때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고?’, ‘달마다 만나는 민주시민 이야기’, ‘우리가 만드는 오월이야기’, ‘오월오색 이야기’ 등 다양하다. 

반면, 제주는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1년에 1시간은 4.3교육을 진행하도록 한 게 전부다. 물론, 학교 자체적으로 추가적인 수업과 현장학습 등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교사들의 의지 여하에 따라 1시간 수업으로 끝날 수도 있다. 도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 관련 교육이 매년 15시간씩 이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4.3평화공원에 지난해 들어선 4.3평화교육센터 활용 방안도 아직 부족하다. 

2014년 말부터 공사를 시작해 면적 2737.12㎡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교육센터는 다목적홀과 어린이체험관, 영상실 등으로 구성됐다. 1층은 이미 완공됐지만, 2층 어린이체험관 등 내부공사는 지금도 한창이다. 

2층은 5월 완공, 6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린이체험관에는 4.3관련 다양한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지만, 어떤 작품을 전시하고,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지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전시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라면 4.3명예교사 제도와 같은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4.3유족들로 구성된 4.3명예교사들은 4.3 교육주간이 되면 일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당시 상황을 들려주고 있다. 

일부 명예교사들이 4.3당시 잔혹함을 알리기 위해 피해 사진·영상 자료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장면을 보여줬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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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처음 발간된 4.3교재.
▲ "4.3교재 너무 축약"...교육청 "매해 수정 보완"

올해 4.3 교육주간에 맞춰 일선 학교에 4.3 교재가 처음으로 배부됐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다. 

적지않은 교사가 4.3 교재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내용을 굳이 교재에 담아야 했나’라는 지적이다. 

“교사들이 이미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수업 내용이 대부분 교재에 실렸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활용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너무 축약됐다’는 얘기다. 

초등용 교재에 4.3에 대한 설명은 단 2장. 4페이지다. 

나머지는 “해방이 되고 나서 ‘우리 일은 우리가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노력했던 제주도민들처럼 우리 주변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봅시다” 등 질문이 대부분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초등학생들이 남로당 등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수 있기 때문에 4.3의 역사적 흐름 이해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48년 4월3일 경찰지서 습격 부분의 경우 “1948년 4월3일 새벽, 350여명의 제주도 청년들이 ‘경찰과 서북청년회가 도민들에 대한 탄압을 멈춰야하며,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주도내 열 두 곳의 경찰지서를 습격했어요”라고 기술됐다. 

4.3특별법에 명시된 내용이라면 문제될 이유가 전혀 없지만, 4.3특별법 내용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너무 간략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따른다. 

4.3 교재를 처음 훑어본 한 초등교사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교사는 “초등 교재만 하더라도 남로당 부분이 다 기술됐으면 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교사다. 지금의 4.3 교재는 2~3줄에 불과한 기존 교과서와 큰 차이가 없다. 별도 교재라면 더 상세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의 평화·인권 교육은 교사들 스스로가 자신만의 교육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중등 교재도 초등용과 큰 차이가 없다. '제주도 청년들'의 습격이 '남로당 위주 청년들'로 바뀌었고, 4.3 사건 당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추가된 정도다. 

물론 일부 교사들의 반응일 수도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지적인 만큼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등에 비하면 많은 얘기가 담겼다. 또 4.3의 아픈 과거를 풀어내기 위해 학생들 수준에 어떻게 맞출지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4.3 교재를 꼼꼼히 읽어보고, 확인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학생 수준에 맞췄을 뿐 애매한 부분 등을 기피한 것은 절대 아니다. 신중하게 검토해 나온 교재”라며 “4.3 교육 뿐만 아니라 평화인권 가치까지 교육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매해 수정·보완을 거쳐 더 좋은 교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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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장을 직접 찾아 현장학습하고 있는 무릉초 학생들.
▲ 과거 잘못까지 철저히 가르치는 독일

제1조 1항 =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제1조 2항 = ‘이에 독일 국민은 세상의 모든 인간공동체와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서의 불가침이고 불가양인 인권에 대해 확신하는 바이다’ 

제1조 3항 = ‘이하의 기본권은 직접 효력을 가지는 법으로서, 입법과 집행권력 및 사법을 구속한다’

독일의 헌법 제1장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헌법은 각국의 역사와 시대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장기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나라의 헌법 제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인 이유도 그렇다. 

독일이 존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섰던 국가로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미가 강하다. 

각종 사료를 종합해보면 독일은 각 학교와 지역, 교사들에게 역사 교육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편찬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또 대부분의 역사 교재에 ‘나치 정권’에 대한 얘기가 상세히 기술됐다. 히틀러의 독재부터 전체주의, 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로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역사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자신들만의 관점이 아닌, 이웃 국가들의 역사관까지 같이 교육을 받는다. 혹여, 나치정권 당시 자신들의 잘못을 미화할 수 없게 주변 국가인 프랑스나 폴란드, 체코 등 국가 연구진들과 함께 당시 피해 정도를 파악해 교재에 담고있다. 

잘못된 행동, 잘했던 행동, 그른 행동, 옳은 행동 모두 있는 그대로 교육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제주 4.3 교육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어떤 수업방식으로 가르칠까’ 보다 아직도 ‘무엇을 가르칠까’가 논의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4.3 역사 교육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백년지계막여수인(百年之計莫如樹人). 백년 계획을 세우는데, 사람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4.3의 아픈 역사를 통한 평화·인권 교육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는 결국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이 필수다. 또 4.3은 교육청 뿐만 아니라 도민, 지자체 등 모두가 함께해 알려나가야 할 역사다. 

지난 3일 제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는 중학교 1곳, 초등학교 4곳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4.3 추념식과 평화공원, 제주 곳곳이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된 셈이다. 4.3 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4.3특별법’에 명시된 있는 그대로의 4.3 교육이 우선되고, 현장 체험학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4.3과 관련된 그 어떤 사업보다도 중요한 것이 4.3 교육이다. 69년이나 흘렀다. 2018년 4월3일 도내 모든 학생들이 4.3을 충분히 알고, 이해한 상태에서 4.3평화공원을 찾아 70주년 4.3추념식에 함께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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