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예상보다 거센 꽃샘바람에 다시 위태로워진 민주시민들의 촛불

그녀의 제 자리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이 물러나자 갑자기 찾아 온 봄. 볼품없던 앙상한 나뭇가지에 화사한 벚꽃이 피자 눈이 부시다. 당연한 순리임에도 올봄이 자꾸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지난 겨울이 힘들었던 탓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누구도 자연의 섭리를 막을 수는 없는 법. 이제 사람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고 자연은 상큼한 녹음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옛 시구는 잠시 접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만인지상의 지위로 올라갔던 그분이 바닥으로 내려앉고, 구천의 심연으로 내려앉았던 세월호가 밝은 세상으로 올라온다. 유체이탈의 구름 위에서 자신을 반인반신으로 착각하며 망국의 지경으로 어지럽히던 혼군이 있어야 할 자리는 결국 청와대 구중궁궐이 아니라 컴컴한 구치소 철창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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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 차량을 타고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춘향이 대통령

그녀의 처참한 운명에 대해 막말의 달인으로 불리는 보수정당의 한 대통령 후보도 ‘제자리 찾기’의 섭리를 떠올렸을까. “춘향인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었다”는 그의 촌철살인이 핵심을 찌른다. 하지만 극우성향에 가까운 보수정치인 답게 그의 발언엔 계급 차별적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 한 마디. “민주국가에서 향단이라고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그녀가 향단이가 아니라 춘향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식견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세간의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저잣거리 세상물정을 꿰찬 향단이의 자질은 기본 중의 기본일 터. 독재자 아버지의 절대왕권 하에서 공주로서의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대통령은 당초부터 잘못된 자리였다.

주인과 노예의 역설

그로 인해 그녀가 써내려간 역사는 “주인이 노예가 되고 노예가 주인이 된다”는 헤겔의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입증하는 영원한 세계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자신에게 말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줄 알았던 ‘저만치’ 아랫사람이 레이저 눈빛 하나로 대통령인 그녀를 권력서열 3위로 밀어내고 서열 1위로 등극해 천하를 갖고 논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못할 정도다.   

지나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고 이미 지나간 전 대통령에 대한 이 ‘춘향단’ 논란이 그저 한가한 가십거리 놀음에 불과할까. 단 한 명의 무지한 대통령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신세로 전락한 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 뼛속까지 공주이던 춘향이가 향단이로 너무나 손쉽게 변신했던 이 한국판 ‘트랜스포머’ 이야기는 코앞에 닥친 대선에 있어서도 너무나도 중요한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새 정치의 비밀

하지만 현 대선정국이 돌아가는 모습은 봄은 왔어도 여전히 제자리 찾기의 섭리대로 가기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날이 밝으면 다른 후보를 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자신이 표방하는 새 정치 철학의 전부였을 어느 후보.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어느덧 그가 지지율 1위에 올라선 것은 관객인 우리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촛불민심이 바라는 대통령이 과연 이런 정치인이었을까. 

“남이 하면 패권주의고 자신이 하면 새 정치”라는 주장이 이렇게 곧이곧대로 먹혀 들어가는 정치판은 우리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그의 당이 대박을 터뜨렸다고 자찬하던 당 경선에서의 차떼기와 조폭 동원은 3~40년 전 ‘고무신’ 선거판의 케케묵은 독재정치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까만, 21세기에 그것도 이미 중엽으로 접어든 시대를 사는 민주 국민의 고루한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위험한 동침

그의 ‘새 정치’가 실은 구 정치라는 비밀이 새어나간 때문이었을까. 그의 당의 차떼기 구태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지 극우보수정당의 ‘양박’ 의원들과 대표적인 극우논객들을 비롯한 이른바 구악의 적폐세력들까지 지지선언이 속속 줄을 잇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그도 당의 정체성이자 공식입장이었던 사드배치 반대를 즉석에서 찬성으로 전격 변경함으로써 패권주의보다 훨씬 독단적인 새 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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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출처=오마이뉴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도 촛불시위가 한창 뜨거울 때는 촛불을 들고 시민들의 눈도장을 찍으며 적폐척결을 외치던 사람이 아니던가. 이러던 그가 무주공산이 된 보수민심에 눈독을 들인 나머지 적폐들과 손을 잡고 적폐척결을 하겠다는 것은 춘향전 버전으로 계속 가자면, 변 사또가 암행어사인 이몽룡이 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여론만을 의식해 화해와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적폐를 감싸는 것은 그 또한 적폐일 뿐이다. 

파우스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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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리사회의 적폐의 본질은 성장주의와 반공주의에 빌붙어 사는 정치, 자본, 언론권력 등 우리사회의 기득권 세력인 이른바 ‘내부자들’이다. 대통령이란 지위에만 욕심을 낸 나머지 촛불민심을 저버리고 이들과 손을 잡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는 ‘파우스트’ 대통령으로 전락할 뿐이다. 얼마 전 조작에 가까운 여론조사에서 보듯, 제자리 찾기로 향한 자연의 섭리를 막아서는 적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예상보다 거센 꽃샘바람에 민주시민들의 촛불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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