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탁발순례단, '백조일손지묘'에서 위령제…도법·수경 스님 천도재

'예비검속' 학살터에 원혼을 달래는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이제 그만 한을 거두고 영면하시라는, 살아남은 자들의 간절한 기도였다.

30일 오후 2시 대정읍 상모1리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사방이 산방산과 단산, 송악산으로 둘러쳐진 이곳에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모여 들었다.

제주권 순례 8일째를 맞은 순례단이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백조일손지묘를 찾았다. 첫 순례지인 지리산권도 그렇거니와, 이곳 역시 무고한 양민이 억울하게 떼죽임을 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요시찰 인사를 전원 구금하라고 전국 경찰서에 지시했다. 이렇게해서 제주에서도 1200여명이 검속됐다.

모슬포경찰서 관내(지금의 한림·대정·한경·안덕면)에선 347명이 모슬포 고구마창고와 한림어협 창고, 각 지서 등에 붙들려갔다.

치안국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구금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에 나섰고, 347명중 252명도 음력 칠월칠석날(8월20일) 새벽 수차례에 걸쳐 송악산 인근 섣알오름에서 학살당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게 뒤엉킨 시신...'한날 한시에 죽은 한 자손'

   
순박한 농민, 마을유지, 교육자, 공무원, 청년단체장, 학생 등 아무런 죄가 없는 양민들이 군·경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그 어떤 사법적 절차도 없이 정부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는 천인공노할 참극이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서슬퍼런 이승만 독재에 유족들은 입도 벙긋 못하고 숨을 죽여야 했으며, 시신은 세월이 한참 흐른뒤인 56년에야 이뤄졌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게 뒤엉킨 시신을 132개 칠성판 위에 유골들을 적당히 맞춰 지금의 묘역에 안장, '백조일손지지'라 명명했다.

즉 백조일손은 '조상이 다른 백서른두 할아버지 자식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한 자손'이라는 뜻. 학살당시 참혹상을 가늠케한다.

'백조일손 영령 위령비' 앞 제단에 순례단이 차례로 분향하자 양신하 백조일손유족회 고문이 50여년전 참극을 설명했다.

양씨는 당시 큰 형님과 사촌형을 잃었다.

▲ 집단학살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양신하 백조일손유족회 고문.
원혼을 달래려 온 순례단에 감사를 드린 양씨는 "무고한 양민을 집단 학살한 것은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참혹한 비극"이라며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4·3과 연관지어 이곳을 찾아오지만 4·3과 예비검속은 거리가 멀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여러분들이 똑똑히 기억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윤배 백조일손유족회 부회장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이곳까지 찾아와줘 감사드린다"며 "제주에서 아무탈없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어 제단에 술잔이 올려졌고, 순례단은 일제히 영령들에게 큰절을 드렸다.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이 끝나자 순례단장인 도법스님과 수경스님이 불교계 천도재를 올렸다.

▲ 도법스님과 수경스님(오른쪽)이 불교계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도법 스님"불신과 대립의 벽 허물자"... 박남준 시인 즉석 추도시

수경 스님은 반야심경 등 불경을 독송했고 도법스님은 추도사를 읽어내려갔다.

"야만적 전쟁으로 희생당한 영령들이시여! 순례 참여자들이 오늘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같은 민족끼리 시기와 질투, 원한과 복수 등으로 차마 벌어져선 안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좌익은 무엇이며 우익은 무엇입니까. 잘한 사람은 누구이고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백조일손영령들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인간 역사의 불행의 근원인 무지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찾았습니다. 부디 무지의 불신과 대립의 벽을 허물어 버립시다…지난날의 어리석움을 참회합시다.

금일의 모든 영령들이시여. 저희들이 조촐한 진수를 차려옵건데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공양하소서"

순례단 일원인 박남준 시인은 즉석에서 추모시를 지어 바쳤다.

"그 섬 오름속에 일어섰다
4·3제주에서

여기까지 왔네
지리산 양민학살터를 돌아…

노란 유채꽃아래
학살로 쓰러지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내 어린 누이가
피흘리며 손짓을 하네…

살아남은 물결들의 팽팽한 긴장이
이 섬을 이루었다

별들의 슬픈 메아리가 이 오름을
만들었다.

오름속에 눕고 별들이 일어났듯이
기다려온 것들은 모두 오름에 올라
별이되어 꽃피운다
그 이름 반짝인다…"

순례단은 마지막으로 묘역을 한바퀴 돌며 132위 영령들의 영면을 빌었다.

평화의 메시지가 묘역 주변에 메아리친 이날 참가자들은 모두 숙연히 고개를 숙였으나 인근 군부대 사격장에선 콩을 볶는듯한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탁발순례 참가자들이 백조일손 영령들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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