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4) 공약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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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 ⓒ 김정숙

사람답게 사는 법 펼쳐 보이겠다며

인가 근처 터 잡은 신출내기 뻐꾸기가

막 익은 보리밭 향해

"떡국!

떡국!"

외친다.

                      - 김정숙 <공약> 전문-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보리밭에서 뻐꾸기 소리 들린다. 그런데 그 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뻐꾹, 뻐꾹’이 아닌 ‘떡국! / 떡국!’이다. 울음소리가 좀 이상하다는 것 외에는 아주 단순하게 읽히는 시다. 그러나 따져보자.

뻐꾸기는 왜 하필 떡국을 부르며 울까. 울음소리에 꽂혔던 시선이 이제 막 익은 보리밭을 돌아 사람답게 사는 법을 펼쳐 보이겠다는 신출내기에 가 닿았을 때, 작은 씨앗 속에서 우주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 그러나 떡국과 보리밭과 사람답게 사는 법, 한 번에 건너뛰기엔 너무 먼 징검돌들이 띄엄띄엄 발길을 머뭇거리게 할 때쯤 제목 <공약>에 가서 일직선으로 확 그려지는 그림. 뻐꾸기가 ‘떡국, 떡국’ 우는 이유를 알았다. 
 
철새도 아닌 것이 선거철만 되면 철새처럼 사람 사는 근처에 내려와 ‘나도 당신들과 똑 같은 생활권을 가졌어요.’하며 표정을 바꾼다. 그리고,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보리밭에서 떡국을 꿈꾸게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보리와 떡국 사이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과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지는 간단하게 무시하고 말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게 이보다 더 할까.
 
늘 그랬다. 보리밭에서 떡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게 공약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따끈따끈 입맛 다시게 하는 떡국 냄새에 끌려 한쪽으로 몰려들었다가 빈 입맛만 다시기를 수차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선택의 책임만 허기처럼 남았던 기억을 시인은 아프게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시 형식과 단순한 이야기의 행간에서 큰 의미가 읽히는 시는 독자를 즐겁게 한다.

다시 선거철이다. 토박이 텃새들도 나오고, 떠돌이 철새들도 나와 저마다의 수레를 끌며 역사의 바퀴를 굴리기 위해 출발선을 다진다. 어느 게 빈 수레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우리들 몫이다.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아프게 감당하고 나서 다시 찾은 선거. 두 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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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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