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10) 이번 ‘장미 대선’의 꽃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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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l 플루타르코스 (지은이) | 이다희 (옮긴이) | 이윤기 (감수)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10-23

예측불허 정치는 수준 미달의 정치다

장미 대선이 치러지는 5월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통령후보들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사랑의 사자 큐피트는 장미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키스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꽃 속에 있던 벌이 깜짝 놀라 큐피트의 입을 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큐피트가 안쓰러워 벌을 잡아서 침을 빼고 장미의 줄기에 꽃아 두었다고 합니다.

사랑스럽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장미 대선. 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유권자들의 표가 정치적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요?

미리 알 수 없는 앞날은 많은 괴상한 일을 감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솔론이 부자의 대명사인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에게 한 말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크로이소스만큼이나 부유한’(rich as Croesus)이라는 영어 관용구에도 등장하는 부자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져서 키루스 왕에게 화형당하기 직전 솔론의 이름을 세 번 외쳤다고 합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키루스 왕에게 솔론이 해준 충고를 모두 들려주었고, 이 덕분에 크로이소스 왕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평생 키루스 왕의 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의 말을 경멸했기에 죽을 뻔했고, 키루스 왕은 솔론의 말을 교훈으로 삼았기에 위기를 겪지 않았습니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죠.

우리나라만큼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곳이 또 있을까요? 세월호 사고, 현직 대통령 탄핵과 구속, 조기 대선. 영화보다 재밌고 코미디보다 웃기는 게 대한민국 정치라는 항간의 푸념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줍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정치지도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정치는 예측불허한 만큼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한치 앞을 모르는 앞날에 예측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정치 슬로건인 정명(正名)의 참뜻입니다.

슬로건이 바르게 되어 있지 않으면 정책에 조리가 서지 않는다. 정책에 조리가 서지 않으면 정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권이 안정되지 않으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판이 잘못된다. 재판이 잘못되면 백성은 수족을 움직이는 데에도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 <논어>, 자로 편

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미덥잖게 보았을까요? 대중은 쉽게 선동당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최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형식은 민주주의일지 모르지만 본질은 절대왕정입니다.

절대적인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파르타의 입법가인 리쿠르고스리쿠르고스(Lycurgus, B.C.800~B.C.730)는 평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왕의 절대적 권력을 합리적 수준으로 축소하고 정치권력을 나누는 데 열정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스파르타는 500년 동안 왕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드라마를 보는 것이 시시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한국정치. 드라마와 구분이 안 되는 한국정치의 특징은, 먼저 특정 인물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당은 철학과 이념의 핵심이 아니라 상품 브랜드에 불과합니다.

유행이 식었다 싶으면 이름과 로고를 바꾸면 되니까요. 인물에 의존하다 보니 인물의 개인기나 대사 하나가 무척 과장됩니다. 특정 정치인이 진보나 보수의 가치를 과잉대표하는 현상이 고질병처럼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엽기적인 사건이 빈번히 터지고 베일에 싸인 인물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유권자인 국민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우리의 수준에 맞는 정치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영웅이 나타나 모든 것을 바로잡아주길 바랍니다. 실제로 영웅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변덕만큼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다른 신선한 영웅을 기다리니까요. 이것은 전형적인 ‘유토피아’ 기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이자 유명한 정치인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 1881~1977)의 이야기를 다룬 책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의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그포르스는 20세기의 세계 사회(민주)주의 운동 전체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이론적·실천적 혁신을 이룬 인물입니다.

잠정적 유토피아란 쉽게 말해, 며칠 동안 막노동을 힘들게 해서 번 돈으로 폼 나게 킹크랩을 먹는 상상을 하기보다는 당장 냉장고를 열어서 아직 쉬지 않은 반찬들을 꺼내 볶음밥을 만들어먹자는 것입니다.

“낙원은 인류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다”라는 그의 연설은 명확하게 설명해주죠. 5년마다 정치적 신기루의 비애를 맛보기보다는 우리의 깜냥을 잘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선택하자는 생각이 우리 정치에서 실현된다면 비로소 삶이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건국자들의 ‘초심’을 듣는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120)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 겸 작가입니다. 아테네의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고, 아폴로 신전의 신관이자 자신의 고향의 지방 행정관 및 대사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전기와 에세이를 집필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50인의 그리스 로마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4인을 제외하면 총 23쌍의 영웅이 비교됩니다. 그래서 ‘비교영웅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건국자들을 다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테세우스, 로물루스, 리쿠르고스는 그리스와 로마, 스파르타의 건국자들입니다. 이 외에 누마 폼필리우스와 솔론, 테미스토클레스는 초기 정치가이거나 제2건국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정치는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을 실증합니다.

즉, 정치는 교육이라는 심장에 의해서 펌프질되며 ‘법률’을 표현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리쿠르고스가 법률을 돌에 새겨놓았다면 500년이나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이의 마음속에 법의 정신을 철저히 녹였을 뿐만 아니라 그 법을 사랑하도록 만들었죠. 정치가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일이죠.

테세우스는 그리스의 굳건한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귀족, 평민, 직공이라는 세 계급으로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안배했습니다. 귀족은 명예로, 농민은 이익으로, 직공은 숫자로 서로 우세했기 때문에 권력독점이 생기지 않았죠. 로물루스는 귀족을 보호자라는 뜻의 ‘파트론’으로, 평민을 피보호자라는 뜻의 ‘크리엔트’라고 불렀습니다.

두 계급 상에 사랑과 친근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를 구축함으로써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했습니다. 예컨대 파트론은 항상 법정에서 크리엔트의 변호인이 되기도 했고 모든 일을 조언하고 뒤를 돌봐주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 아랫사람에게 돈을 받는 것을 천하고 불명예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리쿠르고스는 나라 전체를 군대처럼 만들었지만 그 취지만큼은 깊이 고민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은화를 없애고 철로 만든 동전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부의 축적과 이동을 어렵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혜를 동원해 문화적으로 ‘부’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쿠르고스 사후 500년이 지나서인 아기스 왕에 이르러 처음으로 황금과 은이 스파르타에 유입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굳건한 전통을 만들었는지 놀랍습니다.

전쟁에서 부자들이 금과 은을 가지고 돌아온 이후 스파르타는 존경의 대상에서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금은와 더불어 부에 지나친 욕망을 불러일으킨 모든 악이 들어왔기 때문이죠. 우리가 지금 ‘스파르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처음 리쿠르고스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스파르타’의 입법가라는 사실과 제 편견이 충돌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떠한 법령도 문자화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무척 신선합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법원으로 달려가고, 법조문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갑’이 되는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세요.

테미스토클레스의 제2건국에 관한 강한 메시지도 주목할 만합니다.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을 치르며 전국민 소개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약자들이 배에 오르며 피난하는 처연한 묘사가 코끝을 찡하게 하죠.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힙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뇌물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전선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스파르타 군의 이탈을 막으며 승리를 거둡니다. 아테네로 돌아와 재건하면서 놀라운 정책을 시행합니다.  아테네 인들의 관심을 바다로 돌린 것입니다.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이 아테네 땅을 차지하는 문제로 했던 내기가 유명하죠. 아테네가 올리브나무를 지어냈기 때문에 이겼다는 신화를 볼 때 테미스토클레스의 정책은 반 아테네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바닷가에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싹트기 쉬우며 농사짓는 백성들은 소수독재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책을 강행하죠. 이로 인하여 평민들은 실권을 쥐게 되어 자신감을 얻었으며 결국 귀족들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장미 대선’이라고 부르는 이번 대선은 단지 대통령을 뽑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제2건국 수준으로 대한민국을 쇄신시키는 사명을 담고 있는 장입니다. 얕은 수와 정치공학적 계산보다는 우리들의 일상과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를 사회 전반적으로 고민하고 정책에 담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정치드라마 채널을 담담한 정치 다큐멘터리로 돌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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