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과 강정 10년] ⑩ 강정마을 주민 명예회복-진상조사 '현재진행형'
“강정의 아픔도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합니다. 강정마을의 아픔을 내버려둔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도민통합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방치하지 않는, 다른 정치로 이 문제를 풀겠습니다”
지난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 승리로 제37대 제주도지사에 당선된 원희룡 지사의 취임사 중 일부다.
후보 시절 원 지사는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차례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강정 주민들이 원 지사의 ‘진정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강정 주민들 입장에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 지사가 집권당(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에 강정 주민들의 면담 요청을 외면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원 지사는 취임 두 달 후인 2014년 9월2일 강정마을 조경철 회장, 고권일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 등 5명과 처음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수년째 고통을 겪고 있던 강정마을 주민들로서는 의미있는 대화가 오갔다. 주민들은 “강정마을의 명예회복을 위해 절차대로 진상조사를 실시, 보고서가 나오면 좋을 것 같다”며 원 지사에게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원 지사도 “진정성을 갖고 진상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순간, 갈갈이 찢긴 강정마을 내 갈등 해결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면담 이후 강정마을 주민들은 9월30일 마을총회를 열어 ‘해군기지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통을 겪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수년간 이어진 갈등을 단박에 끝내기에는 무리였다.
당시 조경철 회장은 “제주도 차원의 진상조사는 한계점이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관련 위원회 설치를 기대한다”고 요구했지만, 원 지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4시간이 넘는 긴 토론에도 강정주민들은 '윈윈 전략'을 내세웠으나 결국 실패한 이전 도정에 대한 배신감 탓인지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한달쯤 뒤인 11월11일 강정마을회는 다시 임시총회를 열고 ‘해군기지 진상조사 추진의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다만, 해군이 강정마을에 계획한 ‘군 관사’ 설립을 제주도가 철회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로 강정마을 주민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초 해군은 강정마을 내 9만9500㎡부지에 616세대의 대규모 군관사 건립을 추진하다 주민들의 반대로 384세대로 축소했다가 다시 9407㎡부지에 72세대 건설로 규모를 더 줄였다. 이마저도 주민들의 요구(반대)가 있으면 관사를 짓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주민들은 마을에 관사가 들어서면 안된다고 반대했다.
11월13일 원 지사가 해군참모총장에게 군 관사 건립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이튿날 해군은 철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11월20일 서귀포시 연두방문 중 “군 관사 문제는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원 지사가 발언한 다음 날 해군은 군 관사 반대 농성천막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2015년 1월26일에는 해군 지도부가 비밀리에 제주도를 찾아 원 지사와 면담을 가졌다. 군 관사 문제 해결을 통한 강정마을 갈등 해소에 전기가 마련되는 듯 했다.
행정대집행(1월31일) 전날인 30일부터 강정마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국방부는 경찰에 인력 지원을 요청하고 사설용역업체 직원을 투입했다.
당시 대구1기동대와 광주기동대 80여명, 광주여경제대 30명, 육지부 용역 100명 등 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강정마을에 운집했다.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31일 강정마을은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주민들은 비명과 함께 울부짖으며 장장 15시간에 걸쳐 공권력과 마주했다.
국방부가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는데도, 이날 원 지사는 한·일지사회의 일정을 이유로 일본에 있었다.
당시 원 지사는 일정을 앞당겨 당일 귀국해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현지 상황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는 내내 원 지사는 강정마을을 찾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길고 길었던 하루는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현장을 찾아 수습에 나서면서 마무리됐다.
강 주교는 수차례 어디론가 전화했고, 망루에 있던 주민들과도 대화에 나섰다. 누구와 전화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 주교 설득에 주민들은 스스로 망루에서 내려왔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행정대집행이 끝나고 나서 2월2일 강정마을회와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는 군 관사 공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행정대집행에서 원 도정이 보여준 태도에 실망했다. 주민들이 짓밟히는데 수수방관했다”며 진상규명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원 도정 출범 이후 갈등 해결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갈등 해결의 단초가 될 줄 알았던 진상조사가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낳은 셈이다.
“군 관사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대집행이 시행돼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원 지사의 유감 표명도 상처받은 강정주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진 못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2016년 4월30일 강정마을회는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 강창일·오영훈·위성곤 의원에게 “국회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다시 요구했지만, '해군기지 갈등 1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강정 주민들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원하고 있다. 올해 4월11일 강정마을회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정당 후보들에게 법률에 근거한 진상조사와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공식 요청했다.
유감스럽게도, 대선이 임박한 지금까지 강정마을회가 제안한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관련 국가폭력 진상조사 및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약속한 정당은 정의당 뿐이다.
다만, 국민의당은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국가폭력 사례가 입증될 경우' 국가 차원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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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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