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저항...‘강정마을 유치반대위’ 출범
불붙은 저항...‘강정마을 유치반대위’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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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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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 해군기지유치 반대위원회가 2007년 5월18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해군기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시 윤태정 마을회장이 주도해 4월26일 열린 마을임시총회가 마을규약에 명시된 총회 공고일 기준 미달, 공고문 안건 조작의혹 등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총회였기 때문에 대부분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해군기지를 유치 결정했다는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명평화 강정10년] ③ 2007년 5월 해군기지 유치반대위 구성 '투쟁 본격화'

2007년 5월17일 오후 8시 강정마을회관에서는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정당성을 상실한 4월26일 마을총회에 대한 주민들이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마을 여론이 70%를 넘어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날치기 통과한 마을총회를 취소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튿날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플래카드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반대위원회’라는 글귀가 쓰여졌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위원장은 마을 토박이인 양홍찬씨가 맡았다. 반대위에는 30~50대가 대거 참여하고, 전직 자생단체장과 시의원도 함께했다.

반대위는 기자회견에서 강정마을 유치 결정 무효를 주장했다. 기존 후보지(화순, 사계, 위미, 강정)를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대상으로 예정지를 주민투표로 결정할 것을 주문했다.

양홍찬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소중한 생명의 바다를 어찌 포기하려 하는가. 선조들의 울음소리와 후손들의 원망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며 감정에 복받친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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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현애자 당시 국회의원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현 의원은 6월4일부터 7월3일까지 27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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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와 제주도가 2007년 7월30일 서귀포시 강정마을회관에서 제주해군기지 추진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려 하자 주민들이 출입구를 막아서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 10년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주민들의 호소에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종교와 정치권에서도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강정의 눈물이 전국에 알려졌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은 2007년 5월21일 천주교제주교구 중앙성당에서 열린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는 평화기도회’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강 주교는 서한문에서 “제주에 군사기지를 증강하는 계획을 수정하고 민주적인 주민투표를 거쳐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해군기지 철회를 주문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도 제주교구에 친서를 보내 “제주교구의 해군기지 철회운동은 무력증강이 평화의 보증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라며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힘을 보탰다.

서귀포시 출신인 당시 현애자 국회의원은 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저혈압과 탈수 증세에도 단식은 장장 27일간 이어졌다.

원희룡 국회의원(현 제주도지사)도 고향인 제주를 찾아 “해군기지는 제주도민들끼리 싸우는 것 밖에 안된다.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조건부 반대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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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22일 제4회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제주를 찾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측을 향해 제주해군기지는 국가 필수적 요소라며 해군기지 건설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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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20일 마을총회를 열어 제주해군기지 추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이날 투표에서는 참석자 725명 중 680명이 압도적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박수로 통과시킨 4월26일 임시총회 참석자가 단 87명이었지만 8월20일 열린 찬반 투표에는 무려 725명이 참석해 680명이 유치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시 강정마을 주민수는 1900여명이고 이 중 유권자는 약 1100여명이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리영희 교수, 황석영 작가, 현기영 교수, 도법 스님, 문정현 신부,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 등 한국사회 대표적인 양심인사 39인은 ‘제주 평화의 섬’을 염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중앙일간지 1면 광고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통해 “군사기지 건설이 안보와 평화란 이름으로, 제주의 경제적 번영이라는 명목으로 주장되는 현실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했다. 2007년 6월22일 제4회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제주를 찾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측을 향해 제주해군기지는 국가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무장없이 평화와 국가가 유지되지 않는다. 역사에 있어 어떤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 스위스 중립국도 무장 없이 평화를 지켜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군기지를 육지부에 건설하자는 의견에도 “제주해상에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 때 6~7시간 걸리는 남해안에서 올 수 있느냐. 제주를 지키는데도 해군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한달 뒤 강정마을을 찾아 제주해군기지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강정주민들은 머리띠를 매고 마을회관 입구를 원천 봉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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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10일 마을총회를 열어 윤태정 강정마을회장을 해임시키고 강동균씨를 신임 마을회장으로 선출했다. 당시 총회에서 마을회장에 선출된 강동균 회장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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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20일 마을총회를 열어 제주해군기지 추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이날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오자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더 나아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해군기지 찬성 마을총회의 책임을 물어 윤태정 강정마을회장을 해임시키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2007년 8월10일 열린 마을총회에는 주민 436명이 참석해 95.4%, 416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윤 회장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반대는 15표, 무효는 5표에 불과했다.

후임 마을회장에는 강동균씨가 선출됐다. 강 회장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강정마을회를 이끌며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

강 회장은 취임 직후 해군기지 유치 결정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묻는 마을총회를 소집했다. 4월26일 유치결정 이후 4개월만에 이뤄지는 정식 총회였다.

이날 투표에는 19세 이상 주민 725명이 참여해 93.8%인 680명이 해군기지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은 4.9%인 36표에 불과했다. 무효는 9표였다.

강정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 여론이 보다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총회를 계기로 강정마을회는 주민들의 힘으로 10년간 평화운동을 펼치며 전국적인 관심을 이끌었다.

2012년에는 4.19 혁명 52주년을 맞아 ‘사월혁명상’과 故 문익환 목사를 기리며 제정된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에는 평화운동을 인정받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운동기구인 국제평화국(IPB, International Peace Bureau)으로부터 ‘션 맥브라이드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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