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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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2012년 3월6일 제주도청에서 제주도의회 의장,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제주도당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명평화 강정10년] ⑧ 공허한 해법에 기대가 실망으로..."갖고 놀았다" 반대 격화

2010년 7월1일 민선5기 우근민 제주도정의 출범은 시기상 제주해군기지 사태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우 도정이 내세운 이른바 윈윈(win-win) 해법의 기대가 무척이나 컸다. 

제주해군기지 추진과 관련해 일관되게 당국과 보조를 맞춰온 전임 도정과 달리 강정마을 주민들의 요구사항인 해군기지 건설 제동 등 다양한 후속책 마련이 점쳐졌다.

우 지사는 지방선거 후보 시절부터 “국방부장관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다. 당선 직후에는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아 “제주해군기지 착공을 강행하면 안된다”며 정부와 각을 세웠다.

취임사에서는 “어느 일방의 맹목적인 양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둘러싼 반목과 대립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도정의 여론업무를 총괄하는 당시 김부일 환경부지사는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해, 해군기지 찬성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혼란을 야기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적절치 못한 표현이었다. 어떤 것이든 국책사업을 추진하려면 법적근거에 의한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며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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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8월19일 제주도청을 방문한 강동균 당시 강정마을회장(왼쪽)이 우근민 당시 제주도지사(오른쪽)에게 입지 재검토를 요구하는 제안서를 전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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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3월21일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오른쪽)은 제주도청을 찾아 우근민 지사를 만나 해군기지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강정마을회의 분위기도 도정 출범 초기는 나쁘지 않았다. 전임 도정 시절 등장한 제주도청 앞 제주해군기지 반대 현수막과 천막들은 자취를 감췄다.

당시 강정마을회를 이끌던 강동균 회장은 주민들을 대표해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후보지를 다시 물색해 달라’는 제안서를 우 지사에게 전달했다.

강 회장은 “우 지사가 중간자의 입장에서 윈윈 하자고 했고, 진실성이 엿보인다고 판단해서 제안서를 준비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원만히 해결해 달라”며 우 지사에 신뢰를 보냈다.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는 해군기지 공사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기존 후보지로 거론된 위미와 화순, 사계리 마을회에서는 연이어 유치 거부 입장을 밝혔다.

조건부 해군기지 수용 의혹이 일면서 갈등해소의 진정성은 의심 받았다. 강정마을 여론은 악화됐고, 우 지사가 해군기지에 대한 도민 정서를 선거에 이용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윤석 의원(민주당) “우 지사의 윈윈전략과 도민통합방안은 구체적 실체가 없다”며 “도민 정서를 무기 삼아 선거운동 전략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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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방해로 체포돼 구속수감됐던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가운데)이 석방 후 제주도청을 찾아 우근민 제주도지사(오른쪽)와 면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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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18일 제주시청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역 정치권에서는 도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발언까지 나왔다. 도의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윈윈 얘기를 하는데 실체가 없다. 도민 사기극”이라고 맹비난했다.

강정마을회가 반대투쟁 재돌입 의사를 밝히면서 제주해군기지저지범도민대책회 등 시민사회 단체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선5기 도정 출범 첫해부터 제주시청에서는 우 지사를 규탄하는 제주도민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집회는 연말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평화행동 집회로 이어졌다.

급기야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막기위해 해상 크레인에 맨 몸으로 올라 항의시위를 하던 당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2011년 8월 구속되면서 도정을 향한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강정마을회는 “박빙의 지방선거 승부에서 우 지사의 해군기지 선거공약은 반대측의 표심을 자극했다. 정작 당선 후에는 윈윈 전략의 실체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쓴소리를 건넸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석방 후 제주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얼굴이 하얘졌다는 우 지사의 인사에 ‘덕분에 그렇게 됐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강정마을은 우 지사에게 강정연안 절대보전지역 해제처분 직권취소와 사업부지 내 공유수면 매립면허권 취소처분을 요구했지만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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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24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제주해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한 강정마을 주민이 우근민 지사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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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24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제주해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강동균 당시 강정마을회장이 해군기지 반대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오히려 2012년 3월 제주도를 방문한 당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해군기지 건설은 국가사업으로 반드시 가야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공사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2년 3월 다시 제주도청 앞에는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천막이 등장했다. 강정주민들은 윈윈 해법 이행을 주문했고, 도정은 공무원 100여명을 현장에 동원해 대응했다.

그해 5월에는 제주도청 앞에서 눈물의 삭발식이 열렸다. 주민들은 도지사의 사진까지 불태우며 취임 2년을 맞은 민선5기 도정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강정주민들은 이 자리에서 “우 도정은 믿고 기다려온 주민들과 도민들을 가지고 놀았다”며 “기대감은 이제 무너졌다. 이제 남은 건 지사를 끌어 내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지사는 취임 초부터 강정주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입지 재검토를 위한 후속대책에 나서겠다며 주민들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작 마을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어느 일방의 맹목적인 양보를 강요하지 않고 강정주민과 제주도, 국방부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하겠다는 윈윈 전략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강정아픔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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