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화 강정 10년] ⑪ 민군복합항? 커져가는 의심...구상권 철회 요구에 귀닫은 해군  

2016년 2월26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는 상반된 두 가지 풍경이 연출됐다.

흙으로 덮인 연병장 위에 오열(伍列)을 맞춰 열병한 정복 차림의 해군·해병대 장병들. 그 뒤로 만국기를 두른 군함들이 미동없이 정박해 있다. 통상 구령대(口令臺)로 불리는 각진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는 황교안 국무총리, 한민구 국방부장관,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전직 장성, 그리고 김태환·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와 원희룡 현 도지사가 자리했다. 이들은 완전한 모습을 갖춘 해군기지와 병력을 내려다보며 힘찬 경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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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26일 제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 준공식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다른 한쪽에서는 분노와 피로감이 역력한 중년의 강정마을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섰다. 피켓에는 ‘강정에 평화를’, ‘참된 평화의 섬 제주’라는 문구가 적혔다. 다른 이들은 노란색 깃발과 함께 해군기지 앞 도로를 막아섰다 이내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여기에는 천주교 수녀·신부들도 포함돼 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피눈물 흘리는 장승은 사라진 구럼비 바위, 지금은 해군기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도록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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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준공식에 맞춰 세워진 장승. 해군기지를 향해 서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2790-1 일대를 대한민국 해군은 공식적으로 해군기지라 부르지 않는다. 지난해 2월 26일 준공식 보도자료에서는 ‘제주민군복합항’이라 명시했고, 공식 홈페이지는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 소개한다. 그러나 강정 주민과 상당수의 도민, 국민들은 이곳을 해군기지로 여긴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란 개념은 2008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그해 9월 11일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를 ‘민과 군이 함께 공존하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으로 조정해 건설하겠다고 결정했다. 

2009년 9월 11일 한승수 국무총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차 제주도지원위원회 회의에서 “서귀포시 강정에 들어서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며 “제주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만들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천혜의 자연환경도 아끼면서 새로운 도약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명품관, 향토체험존, 교육문화센터, 의료센터 같은 각종 시설이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계획에 포함됐지만, 해군기지와 다를 바 없다는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고 커져만 갔다.

제주도의회는 2012년 8월, 만 19세 이상 도민을 대상으로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크루즈선박을 제외한 민간선박이 드나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5.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군함과 크루즈선박만 이용하고, 민간선박은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0.7%가 반대라고 대답했다.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무효확인 소송(2009),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 무효확인 소송(2010), 공유수면매립 승인처분 취소 소송(2010) 같은 법적 대응이 이어졌으나, 2012년 3월 7일 해군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면서 공사는 속도가 붙었다. 

어느새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준공식이 열린지 1년이 지났지만, 과연 도민·국민들은 해군이 홍보하듯 민군복합형관광미항으로 생각할까? 최근 상황을 보면 도리어 해군기지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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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준공됐지만, 크루즈 기항지로서 제 기능을 갖추려면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미국, 일본 자위대 함정까지...구상권 청구, 강정주민엔 '청천벽력'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월 미군의 최신예 전력, 스텔스구축함 ‘줌월트(Zumwalt)’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배치하자고 정부 측에 제안했다는 언론 보도가 최근 나왔다. 3월 25일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 스테뎀함(USS Stethem)은 군수적재와 승조원 휴식을 위해 이곳에 입항한 바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자위대 함정이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훈련’에 참여하면서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할 계획이었지만 논란 끝에 무산됐다. 한 발 더 나아가 공군은 제주 제2공항과 연계해 남부탐색구조부대를 설치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희미해진 ‘세계 평화의 섬 제주’ 대신 '군사기지의 섬'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현재는 해군 함정 계류시설만 완성됐을 뿐, 크루즈터미널과 무빙워크 같은 이동 지원 시설은 각각 내년 3월, 올해 7월에야 완성될 전망이다. 크루즈터미널은 기관 입주 절차까지 고려했을 때 빨라도 내년 6월에야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사드 배치 등으로 중국 크루즈 관광객이 제주에서 사라지면서 앞으로 크루즈터미널 역할이 어떻게 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주민 갈등은 완화는 커녕 계속 깊어졌다. 특히 해군이 강정주민·평화활동가를 상대로 행사한 구상권은 갈등의 핵심이다. 지난해 3월 28일 해군은 공사 지연으로 약 275억원의 손해를 봤다면서 121명에게 34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이미 3억원이 넘는 벌금으로 마을회관 매각까지 검토한 강정마을에게 해군의 구상금 청구는 청천벽력이자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구상권 행사에 대한 정당성은 일찌감치 도마에 올랐다. 진짜 속내가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일었다. 앞서 2015년 민군복합형관광미항 1공구 건설을 담당한 삼성물산은 해군을 상대로 공사 지연 손해 배상금을 청구했다. 이 사안을 다룬 대한상사중재원은 중재판결문에서 '공사지연의 책임이 강정마을회 등의 반대활동과 함께 제주도지사, 제주도의회, 일부 국회의원의 해군기지 사업 반대행위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강정마을회, 천주교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4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백번 양보해 반대활동 때문에 공사 지연 피해가 발생했다면 중재판결문에 제시한 대로 제주도 등은 왜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됐는지 해군은 명확히 답해야 할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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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회, 천주교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가 지난해 4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34억 5000만원을 강정마을 주민 등에게 청구한 해군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각에서는 그러지않아도 방산비리로 얼룩진 해군이 구상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비판도 있다. 함정 건조 수주와 관련, 기업 돈을 장남 회사로 챙겨 지난 2월 구속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무기중개상으로부터 꾸준히 향응·편의를 받고 해군참모총장 당시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허위 시험평가에 연루돼 구속된 최윤희 전 합참의장 등 해군의 방산비리는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강정주민, 도민사회, 도의회·국회까지 한 목소리로 해군의 결단을 촉구하지만, 해군은 꿈쩍도 않는다. 다만, 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후보들 상당수가 구상금 청구 철회에 찬성하고 있어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2790-1.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지금까지는 군기지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해군은 구상권을 들이밀며 갈등 해결도 외면하고 있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여전히 제주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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