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화 강정 10년] ①르포 - 제주해군기지 갈등 10년 강정마을을 가다
수만 년 혹은 수천 년을 너럭바위로 살아왔을 구럼비다. 이제 볼품없는 자갈돌로 으깨져 차가운 콘크리트 더미 아래 묻혔다. 이제 더 이상 옛 모습을 되찾을 길이 없다. 무자비한 인간의 폭력에도 구럼비는 여전히 대응하거나 외마디 비명도 없다. 오히려, 두려움과 연민이 교차하는 어룽진 눈빛으로 강정마을을 찾아온 우리를 되레 위로할 뿐이다.
이날도 강정마을을 내려다보는 한라산은 우직했고, 해풍에 실린 강정포구의 짠 내도 콧등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흘리고 멈추기를 반복한 강정의 눈물, 강정의 통곡…, 그 눈물과 통곡을 생각하면 평소처럼 한마디 비명조차 없는 구럼비가, 말없는 한라산이, 해풍에 실린 짠 내가 미련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대자연은 여전히 말이 없다. 분명 역설이다.
지난 21일,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강정마을을 찾았다. 마을 곳곳에 나부끼던 그 많던 ‘해군기지 결사반대’ ‘생명평화 강정마을’ 깃발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일까. 마을길은 언뜻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시일 뿐.
지난한 10년 세월 속에 비바람에 찢기고 헤져서인지 해군기지 반대와 생명평화 강정마을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들은 대부분 모습을 감췄다. 마을 안길 귀퉁이를 지날 무렵,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의 긴 장대 끝에 매달린 낡디 낡은 노란 깃발이 그것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적폐청산 부르짖다, 갑자기 통합하자고?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 당당한 서민대통령, 국민이 이긴다, 보수의 새 희망,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10여 미터를 길게 줄지은 제19대 대선 벽보의 문구들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그 앞을 지나는 주민들의 눈빛에서도 이제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듯 무심함을 넘어선 원망이 읽힌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현재 대선 정국에서 강정마을은 공동체회복과 명예회복이 제일 중요한 과제다. 가장 살기 좋고 의좋던 ‘제일강정(第一江汀)’ 마을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대선후보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 회장은 “(박근혜)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대부분 대선 후보들이 적폐청산을 부르짖고, 적폐세력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다가 지금은 표가 아쉬우니 통합이니 단일화니 뭐니 한다”며 “누가 될지 모르지만 대통령 당선인이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겠나”고 우려 섞인 불만을 토해냈다.
발걸음을 돌려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강정마을의례회관을 향했다. 굳게 문이 닫혔다. 주민과 활동가들이 늘 북적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회관 앞 농업창고 벽화에 덧쓰여진 ‘사리사욕에 빠진 매향노를 몰아내자’라는 글씨와, 해군기지 유치를 주도한 전임 김태환 도정과 해군을 향한 ‘때려잡자 주민 기만하는 김태환을’ 또는 ‘해군≠이순신 후예, 해군=꼼수, 갈등조장의 달인’ 등의 문구에서 마을주민 간 갈등과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강정마을회가 제주해군기지를 유치 결정한 날이 10년 전인 2007년 4월26일이다. 당시 강정주민 1900여명 중 유권자는 약 1100여명. 그러나 해군기지 찬성 주민 단 87명만이 문을 걸어 잠근 채 1조가 넘는 해군기지 국책사업의 유치 여부를 결정하는 마을 임시총회를 열면서 단 한 번의 찬반토론도 없이 박수로 만장일치 유치 결정을 내려버린 건, 분명한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고 오류다.
그뿐인가. 더군다나 당시 임시총회 소집 근거인 마을향약에 총회소집 공고문은 총회 개최일 전 7일간 부착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사흘이 부족한 단 4일밖에 부착하지 않았다. 마을 공고문에 기재된 임시총회 안건도 ‘제주해군기지의 건’이었으나, 총회 당일 회의장 안에 기재된 안건은 어쩐 일인지 ‘유치’ 두 글자가 더 들어간 ‘제주해군기지 유치의 건’이었다.
10년 전 해군기지 갈등 초기부터 마을대책위 활동을 이끌었던 전·현직 지도부를 잇달아 찾아갔다. 당시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했던 주민 B씨도 어렵게 만났다. 찬반 주민들 대부분 취재에 조심스럽게 응하면서도 모두 “실명은 거론 말아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작은 노력으로 봐달라는 취지였다.
가장 평화로워야 할 강정마을에 가장 필요한게 평화라니…
반대 운동을 주도한 마을 지도부들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마을의 헌법과도 같은 ‘향약’을 우롱하고 기만한 당시 윤태정 마을회장, 그 뒤에는 해군과 김태환 제주도정이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다”고 여전히 절규했다. 매향노, 사꾸라라는 표현이 거침없이 반복됐다.
해군기지 유치 찬성 입장을 밝혀온 A씨는 “저 뿐만이 아니다. 마을에 도움이 될까해서 단순한 생각에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했던 대부분 사람들도 정부와 해군이 마을주민들에게 수십억 원의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반대대책위 집행부 활동을 하던 B씨는 “이제 찬반을 떠나 주민들 잔치에도 가보고 싶고, 찬반을 달리하던 친척집의 제사에도 가고 싶다”며 “가장 평화로워야 할 강정마을이 가장 평화가 필요한 지금의 상황은 모순이다”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마을은 여전히 갈등으로 찢겨 있고, 해군이 청구한 수십억원 구상금에 주민들 삶은 피폐하다”며 “유력 대선주자들이 구상권 취하를 약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기 정권에서 구상권은 어떻게든 철회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가장 중요한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과 명예 회복을 위한 주민의견 수렴의 장과 토론의 장이 여러 차례 필요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 구상권 취하 대선 공약은 지난 10년간 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사법처리로 고통 받는 강정마을에 더 이상 고통이 가해지지 않도록 해소하는 최소한의 수단에 불과하다. 강정마을에 필요한 것은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 회복과 명예 회복이다.
전 강정마을회 임원이던 C씨도 “주민들이 처음부터 해군기지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총회를 열어 주민들의 찬반 의사를 정확히 물어달라는 것이었다. 51%의 찬성과 49%의 반대가 나오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게 반대 주민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해군기지 반대하는 강정주민들은 모조리 빨갱이’라거나,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반대하는 것’이라는 일부 보수언론과 극우세력들의 ‘의도된’ 편견과 곡해는 강정주민들을 더 분노케 만들었다.
조기대선에 거는 실낱같은 희망, 마을공동체 복원과 명예회복
마을 안길을 다시 걸었다. 밭일에 수눌음하는 마을 주민들이 트럭 적재함에 몸을 맡겨 마을길을 부지런히 오간다. 허나 왠지 어깨가 쳐진 모습이다. 붉은발말똥게가 떼 지어 살던 중덕 바닷가로 가는 길에는 ‘해군기지 군관사 공사차량 출입금지 - 강정마을반대대책위’라고 써진 입간판이 안간힘을 내어 서 있었다.
생명평화를 외치는 의로운 목소리가 군경의 방패 앞에서 수없이 절규하고 부딪혔던 해군기지 건설 현장의 잿빛 정문 앞을 지나니 을씨년스러운 신작로 모퉁이마다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해군제주기지’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10년 동안 지역갈등을 겪어온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률에 근거한 진상조사와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요청한바 있다.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국가폭력이 있었는지 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수준에서 사과와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공약해야 한다는 요구다.
마침 강정마을을 찾은 이날 저녁엔 마을회관에서 ‘강정지역 주민공동체 회복지원 조례안’ 검토를 위한 회의가 열렸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공동체회복을 위한’ 여러 방안과 지원사업들을 검토하기 시작한 유의미한 자리였다.
분명한건 보상이 아니다.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까지도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묵살하며 강압적으로 해군기지를 강행한 국가의 책임을 뒤늦게라도 다하는 것이란 게 주민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이날 강정마을은 언뜻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건 착시였다. 찬반으로 나뉘어 10년 세월을 보내온 강정마을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전봇줄을 빼닮았다. 이번 조기대선에 실낱같은 희망이 걸려 있다. 더 늦출 수 없는 공동체 복원과 명예회복을 향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힘겨운 발걸음에 우리 모두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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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기자
mallju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