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화 강정 10년] ④ 말 뿐인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더 큰 상처만 남겼다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안가 49만㎡의 부지에 위치한 ‘제주해군기지’의 공식명칭이다.

10년 전부터 이 사안을 꾸준히 들여다 본 이들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 곳의 이름이 두 개 인지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두 개의 명칭 사이 간극은 이 항만의 정체성을 두고 끊임없이 논란을 재생산해온 동시에, 그 자체가 이 사업이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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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전체 조감도.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안으로 주목받은 ‘민군복합형 기항지’

‘민군복합’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각종 공방이 이어지던 2007년 12월, 국회 예결위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 예산을 한창 심의하던 때였다.

2007년 12월 14일, 당시 서귀포시가 지역구였던 대통합민주신당 김재윤 국회의원과 김성곤 국방위원장, 유덕상 제주도 환경부지사, 송영무 해군참모총장 등 군 관계자, 해양수산부 조종환 국장 등이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는데 대안 중 하나로 여겨지던 ‘민군복합형 기항지’에 대해 군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29일 제주해군기지 예산은 당초 324억원 중 150억원이 삭감된 채 ‘민군복합형 기항지 용역 후 제주도와 협의한 뒤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이 달린 채 통과됐다.

당시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주도해 온 ‘제주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이 더 이상 ‘기지’가 아닌 ‘기항지’로 논의를 전환시킨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대형 크루즈 선박의 입항과 정박이 가능한 민항을 건설하되, 군이 이를 공동활용토록 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인 지역사회는 이를 ‘군항에서 민항으로 기본 성격이 바뀐 것’으로 해석했다. 합리적 해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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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9월 11일 제주도가 최초로 공개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구상안. 그러나 이 때 이미 "무늬만 민군복합항"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정도로 정부와 제주도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군항? 민군복합형 기항지? 결국은...

그러나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국회가 부대조건으로 제시한 ‘민군복합형 기항지 용역’을 추진하기에 앞서 2008년 4월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기본계획’을 담은 사전환경성검토서를 공개했는데 민군복합형 기항지는 커녕 군기지 건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

2008년 4월 16일 제주도의회 제248회 임시회 도정질문.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의 답변도 이와 일맥상통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사업주체가 방위사업청이다. 용역예산 역시 방위사업 관련 예산이다. 민항이 중심이라면 주체가 해군이나 국방부가 될 이유가 없지 않나”

사실상 군항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민군복합형 기항지 용역이 마무리될 때까지의 행정절차를 중단해달라는 국회 부대조건을 무력화시킨다는 의미기도 했다.

곧바로 국회 원혜영 예결위원장과 제주지역 국회의원 3인이 해군을 향해 군항에 비중을 둔 자의적 해석이 잘못됐다며 국회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발표했고, 이경찬 당시 해군제주기지사업단장이 제주도의회에서 “해군기지보다는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추진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진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말 뿐이었다.

2008년 5월 2일 강창일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제주해군기지 크루즈선박 공동활용 예비타당성 조사 요청 공문서’가 또 다시 논란이 됐다.

해군본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예비타당성 조사 요청서에서 국회 결정과 달리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못박고 여기에 마지못해 크루즈선박 시설 공동활용 방안을 부수적으로 주문한 것으로 확인된 것. ‘민군복합형 기항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뒤늦게 정부는 ‘민군복합형’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오히려 ‘꼼수’ 논란만 커졌다. 

2008년 9월 11일,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최대 15만톤 규모의 크루즈 선박이 기항할 수 있는 민군복합항으로 건설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시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 조차 “크루즈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방파제 하나 건설한다고 해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반응했을 정도다.

정부와 제주도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키로 했지만 시민사회와 정당에서는 ‘무늬만 관광미항’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같은 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 편성 항목 명칭도 ‘제주해군기지’였다. 같은 해 11월 13일 이상희 국회 국방위원장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반대한다”며 “현재 국무총리실에서도 공식명칭을 민군복합형 제주해군기지로 공식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껍데기만 민군복합항’이라는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숱한 논란에도 같은 해 12월 26일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항만공사에 대한 입찰공고를 게시했고, 이듬해 1월 14일 국방부가 사업계획을 공식승인하면서 절차는 재빠르게 진행됐다.

이후 정부는 숱한 반발을 뚫고 공사를 위한 절차를 하나 둘 이어갔고, 제주해군기지는 마을에 치명타를 남긴 채 2016년 2월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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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공식을 하루 앞둔 2016년 2월 26일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해군 함정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4400톤급 구축함 문무대왕함, 7600톤급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4400톤급 구축함 왕건함, 2500톤급 신형 호위함 전북함, 14500톤급 대형수송함 독도함. '군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서히 현실화되는 ‘무늬만 민군복합항’

다시 2017년 4월. 해군기지가 완공됐지만 이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개항 1년이 지났지만 제주도와 해군 간 군사시설 구역 협의조차 마무리되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 항만시설 중 크루즈선이 오가는 방파제 안쪽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둘 것이냐를 두고 이견이 크다.

제주도는 크루즈선이 오가는 방파제 해역 중 함정이 계류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보호구역 제외를 요구하고 있지만, 해군은 이 곳 모든 수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는 크루즈 선은 입항 7일 전까지 운항 일정을 관할 부대장에게 통지해야 한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명칭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핵심이 돼야 할 크루즈 부두조차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되는 셈이다.

크루즈터미널은 완성되지도 않았고, 미군 함정까지 드나드는 지금 ‘제주해군기지가 민항 중심’이라고 말했다가는 코웃음을 면키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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