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공동체 복원과 명예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3-2.jpg
▲ 국방부가 2009년 1월21일 관보에 국방·군사시설(제주해군기지) 실시계획 승인을 고시하면서 본격전인 법적 소송의 서막이 오른다. 거리에서 반대투쟁을 하던 강정주민들은 법정에서까지 정부(국방부)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전개하게 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명평화, 강정10년] ⑦ 절대보전지역 해제 ‘편법’ 처리→의회권력 교체 ‘후폭풍’

2009년 1월21일. 대한민국 관보에 국방·군사시설(제주해군기지) 실시계획 승인이 고시된다. 이날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지난한 법적 투쟁의 서막이 오른 날로 기록된다.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은 해군기지 건설사업 결정 고시 구역 내 토지수용 및 사용을 위한 법적인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사실상 공사를 밀어붙이기 위한 사전정비가 마무리됐다는 의미다.

반대투쟁을 벌여왔던 강정마을 주민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곧바로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거리에 머물던 반대투쟁은 법정으로까지 옮아가게 된다.

그해 4월20일 강동균 회장 등 마을주민 438명은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골리앗(국방부)과 다윗(강정주민)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초반 분위기는 강정으로 기우는 듯 했다.

1, 2심 재판부는 “최초에 세운 계획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인데도 국방부가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이를 승인했다”며 국방부가 2009년 1월에 기본계획을 승인한 것은 무효라며 원고(강정주민)의 손을 들어줬다.

전주시 35사단 이전과 송파 신도시 군부대 이전 등 강정 상황과 비슷한 2건의 소송에서 국방부가 잇따라 패소하면서 다윗(강정주민)이 골리앗(국방부)을 잡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3-1.jpg
▲ 2009년 12월17일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날을 '의회민주주의 사망일'로 기억한다. 김태환 도정이 제출한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및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동의안'을 한나라당이 주도해 '편법' 처리하면서 날치리 논란이 일었다. 안건 처리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간 몸싸움에 고성, '민의의 전당'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도의회, 절대보전 해제 및 환경영향평가 동의안 ‘편법’ 처리…“의회민주주의 사망”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민의의 전당’에서는 정작 민의를 배반(?)하는 일이 벌어진다.

2009년 12월17일. 해군기지 관련 절대보전지역 해제 및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동의안이 편법 논란 속에 제주도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도의회가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제주의정사(史)에 흑역사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상임위원회 결정이 수적 수위를 내세운 당시 한나라당(이후 새누리당 거쳐 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분화) 의원들에 의해 뒤집히는가 하면 상임위 심의도 거치지 않은 안건이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등 의회민주주의가 사망한 날로 기록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성향 무소속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는 등 ‘결사항전’에 나섰지만, 청원경찰을 앞세운 한나라당 의원들의 수적 우세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안건 처리 과정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여·야 의원들끼리 뒤엉켜 몸싸움이 벌어졌고,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했다.

의장석을 탈환한 구성지 부의장은 성원보고도 생략한 채 의사봉 대신 ‘손바닥’을 내리쳐 개회를 선언하는가 하면 안건 처리과정에서도 “이의 있다”는 문제 제기에도 “그럼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며 가결을 선포하는 등 ‘모르쇠’ 진행으로 야당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후폭풍은 거셌다. 2010년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는 지방권력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 놨다. 해군기지 총대를 멨던 김태환 지사는 출마조차 하지 못했고, 한나라당은 의회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줘야 했다.

3-4.jpg
◇ 강정마을, 국방부 상대 1·2심 승소했지만 대법원서 패소…법적싸움 4년만 일단락

의회권력 지형이 바뀐 제주도의회(9대)는 민주당 주도로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 취소의결안’을 의결하며 강정 해군기지 문제해결의 마지막 카드(?)를 던지게 된다.

당시 문대림 의장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책무가 9대 의회에 주어졌던 것이고, 이를 피하지 않은 것”이라며 “도민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자, 도민적 역량을 결집시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을 확신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같은 도민사회의 노력에도 끝내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리앗(국방부)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초반 승기를 받았던 다윗(강정주민)은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2012년 7월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정주민들이 낸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피고(국방부) 패소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그해 12월13일 파기환송심을 열어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강정주민들이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낸 절대보전 해제처분 무효확인 소송에 대해서도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 원심을 확정했다.

파기 환송심에서도 원고(강정주민) 패소 판결이 확정되면서 4년 가까지 진행된 법적 논란은 일단락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는 속도가 붙게 된다.

법원마저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국방부(해군)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2007년 시작된 ‘강정의 눈물’은 10년이 흐른 2017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주해군기지 #강정 #국방군사시설 #절대보전지역 해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