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화 강정 10년] ⑥ 김태환 전 지사 주민소환 투표...절반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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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소환운동본부는 2009년 5월5일 김태환 전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선언했다. 

해군기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김태환 지사에게 전국 최초 광역단체장 '주민소환'이라는 불명예가 씌어졌다.

도민사회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도민의 뜻을 무시한 제주도지사에게 '주민소환 청구'라는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이다.

제주군사기지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와 강정마을회 등 도내 29개 단체로 꾸려진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2009년 5월5일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선언했다.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처분이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단체장이나 지역의원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6년 5월 제정돼 2007년 5월25일부터 발효됐다. 주민의 직접투표로 해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전국적으로 하남시장과 시흥시장, 광역의원 등에 대해 주민소환이 추진돼 왔지만 광역단체장 중에서는 김태환 제주지사가 사상 처음이었다. 

당시 주민소환이 이뤄지려면 제주지역 만 19세 이상 41만6490여명의 10%인 4만1649명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소환운동본부는 불과 한달만에 7만7367명의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했다. 

김태환 지사 이후 광역자치단체장 주민소환은 현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인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대해 지난해 추진된 바 있다. 홍 전 지사는 '무상급식 폐지'로 경남 시민사회단체와 학부모들이 추진했지만 청구인 수 부족으로 투표조차 하지 못했다.

김 전 지사 주민소환 역시 당초 소환청구인 수가 많아야 2만~3만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많은 숫자로 제주지역은 물론 전국 최초의 광역단체장 주민소환에 전국이 제주를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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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5일 김태환 전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선언됐다. 투표일은 8월26일이었다. <제주의소리 DB>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에서 "제주지사는 오늘 안 오신 것을 보니까 아마 주민소환 때문에 안 오신 것 같다"며 "국책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소환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태환 지사 구하기' 의도로 해석됐다.

제주도선관위는 7월15일 전체 위원회의를 개최해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제출한 서명부 7만7000여명 중 5만1044명(제주시 3만1079명, 서귀포시 1만9965명)으로 확정했다. 제주도민 10%인 4만1649명 보다 1만명 가까이 많기 때문에 8월26일 주민소환투표를 결정했다.

8월6일 주민소환 투표가 발의되자 소환운동본부는 투표율 40%를 목표로 본격 주민투표 운동에 돌입했고, 김태환 전 지사는 20일 동안 직무가 정지됐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철저하게 '투표 불참' 전략을 취했다. 게다가 직무가 정지됐지만 현직 지사라는 프리미엄을 십분 살려 관료조직과 읍면동 이통장, 부녀회, 청년회는 물론 관변단체를 이용, 투표불참을 유도했다.

실제로 모 관변단체 관계자는 "투표율 5%를 넘는 마을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준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주민소환 투표는 '관권개입' 논란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8월26일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지만 결국 투표함을 개함하지 못했다. 주민소환투표법이 정한 개표 하한선인 1/3을 넘지 못했다. 갖은 투표방해 행위로 주민소환 투표에 참여한 도민은 4만6076명(1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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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환 전 지사는 "국책사업인 해군기지는 주민소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주민소환에 대한 적극 방어에 나섰다. <제주의소리 DB>

주민소환 투표는 비록 실패했지만 해군기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제왕적 도지사'에게 전국 최초의 주민소환투표가 이뤄진 2009년 5월5일부터 8월26일까지 123일은 '주민참여 정치'를 직접 실현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 가능성을 제주사회에 확인시켰다.

선출된 권력이 주민통제에서 벗어나 일방적으로 나갈 경우 언제든지 자치단체장은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민통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김태환 전 지사는 주민소환투표에서는 살아났지만 1년 후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주민소환이라는 '정치적 내상'을 입어 불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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