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흘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빚어진 강정마을 공동체가 두 동강 난 세월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수십명이 박수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비극이었다. 그동안 마을은 찬반으로 갈라져 깊은 상처만 남았다. 주민 설득 없이 국책사업을 강행한 정부와 국방부, 무책임한 제주도를 향한 주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명예 회복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생명평화마을, 강정의 지난 10년’을 총 12차례의 기획으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생명평화 강정 10년] ⑤2008년 9월17일 S산호요리점 ‘해군기지 유관기관 대책회의’ 파문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반대 주민을 구속하는 등 걸림돌 제거가 필요하다”,“인신구속 등이 있어야 (반대)수위가 낮아진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의 해임도 검토해야 한다”,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은 막아야 한다. 제주도가 공세적으로 고소고발 해주면 조치가 가능하다”
어떤 ‘대화’일까?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2008년 9월17일, 해군과 국정원, 경찰, 제주도정 관계자 등 15명이 제주시내 S전복요리식당에서의 대책회의를 기록한 ‘제주해군기지건설관련 유관기관 회의록’이다.
이로부터 4개월이 지난 2009년 1월19일, 제주KBS 취재진이 이 대책회의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제주도내 정당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김태환 지사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일었다.
결국, 정부든 제주도든 반대 세력과의 ‘대화 의지’가 없었음이 극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권력이란 이름의 탄압이 있었을 뿐이다. 제주도정과 정부 주요 권력 기관들이 해군기지 반대 세력 진압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결정 과정에서의 잘못된 절차와 민주적 의사 결정을 요구하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인식과 대응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메모 형식으로 된 유출된 문건에서 당시 유덕상 제주도 환경부지사는 “이제는 추진단계, 걸림돌은 제거하고 가야. 해군이 주도해서 공세적으로 해야 한다. 분열은 좋은 상황, 공세적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발언한다.
이에 모 경찰 간부는 “제주도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공세적으로 고소 고발해줘야 경찰도 조치가 가능하다. 인신구속이 있어야 (반대)수위 낮아진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국정원의 한 간부는 “제주지검 차장 만나 해군기지 관련 불법행위에 대해 엄격히 법 집행 요구하고, 외부 개입세력에 대해서는 강정 찬성 측에서 문제제기하면 국정원․경찰이 측면 지원”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당시 제주도 자치행정국장도 서귀포시장이 전면에 나설 것을 주문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는 제주도의회가 장애가 될 것”이라거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의 해임도 검토하라”고 대천동장에게 지시한다.
해군기지 반대를 요구하는 강정주민들을 ‘걸림돌’로 인식하고 이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공세적’이고 ‘엄격한 법 집행’을 위해 유관기관들이 일사불란한 전술전략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에 대한 고소 고발과 구속이라는 법 절차를 사전 공모하는 치밀함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주도 고위 공무원들의 해당 발언들은 당시 해군이 항만공사 입찰과 토지보상 공고 등의 각종 행정절차를 일사천리로 강행했던 것이 제주도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주KBS 보도 이틀 후인 2009년 1월21, 당시 유덕상 환경부지사는 도청 기자실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도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 도민 여러분께서 어떠한 질책을 하시더라도 달게 받아들이고, 이를 계기로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도정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라는 두 문장의 짧은 공식 회견문을 발표하고 자리를 떴다.
이른바 ‘전복요리점 해군기지 기관 대책회의’를 누가, 왜 열었는지 등 구체적인 상황 설명을 ‘건너 뛴’ 구렁이 담 넘는 화려한(?) 화법을 구사했다. 결국 대책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다. 오로지 ‘탄로난’ 사실에 대한 파문 확산을 조기 차단하기 위한 기자회견이었을 뿐이다.
해군은 지난해 ‘제주민군(民軍)복합형 관광미항(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한 개인과 단체를 상대로 구상권(求償權) 행사에 나섰다. 구상권이란 채무를 우선 변제한 사람(단체)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행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해군은 지난해 3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관련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 제출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2월 26일 강정마을 해안지역에 들어선 제주 해군기지의 준공식을 마친 직후 취한 해군의 조치다.
제주 민군복합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부 개인과 단체가 불법적으로 공사를 방해해 공사 기간이 14개월이나 늘어났고, 이에 따른 추가비용 275억원 중 약 35억원을 원인 행위자에게 청구하기로 했다는 것이 해군 측의 구상권 청구 취지다.
2007년부터 4월26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일부터 현재 2017년 4월26일까지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이 만 10년, 일수로 3650일을 맞았다. 현재까지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한 주민과 활동가 등 700여명이 불법행위 혐의로 연행됐고, 이중 600 여명 기소, 57명은 구속됐다.
이 많은 연행자와 기소자, 구속자의 숫자가 우연이 아니다. ‘걸림돌’ ‘공세적’ ‘인신구속’ 등의 대화가 오간 2008년 9월17일, 해군과 국정원, 경찰, 제주도정 관계자 등 15명이 제주시내 S전복요리식당에서의 대책회의를 기록한 ‘제주해군기지건설관련 유관기관 회의록’이 그걸 말해준다.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공세적’ 절차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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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기자
mallju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