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21세기의 프랑스 혁명
[김국주 칼럼] 21세기의 프랑스 혁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23일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24%의 득표율로 선두자리를 지킨 데 이어 5월 7일의 결선에서도 2위 마린 르 펜을 넉넉히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함에 따라 프랑스는 물론이고 독일과 영국의 주식과 채권, 그리고 유로화 환율이 일제히 큰 폭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시장의 불안심리의 척도인 금(金)과 미 연방정부채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프랑스가 분노보다는 안정, 분열보다는 조화를 선택하는 기류를 보인데 대한 시장의 반응이다.

이것은 대단한 반전이다. 미국,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 가진 자에 대한 반감, 세계화에 대한 앤티(anti-establishment)의 정서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대국의 반열에 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들의 집합인 유럽연합은 총생산 순위에서 미국과 맞먹는 비중을 차지한다. 유럽연합의 중심에 유로존이라는 통화블록이 있고 그 중심에 독일과 프랑스 양대 기둥이 있다. 그래서 프랑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여부는 유럽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앤티의 화살이 다분히 유럽연합이라는 기존질서와 유럽연합의 맹주 독일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존 양대 정당인 중도 좌파의 사회당과 중도 우파인 공화당이 결선후보에 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변이었지만 선거기간 내내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의 맨 오른쪽에 있는 국민전선과 맨 왼쪽에 있는 '좌파들의 정당'이 앤티의 열망에 힘입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다.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는 차분한 중도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국민전선의 르 펜 후보의 경우는 프랑스의 유로 존 탈퇴는 당연하고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과의 동반탈퇴까지 말했다.

앤티(anti) 정서의 지배

중도 성향의 대안정당 앙 마쉬(En March)가 등장한 것은 작년 4월이었다. 이를 창설한 38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8월에 경제장관직을 사임한 후 11월에 대선 전에 합류했다. 그의 정강을 요약하면 친기업 친유럽 친이민이다. 독일에 대해서는 "통화블록 내의 불균형의 덕을 보고 있는 최대의 수혜자인 독일이 자기의 역할을 좀 더 충분히 해야 한다" 정도의 수사에 그친다. 여기서 불균형이란 나라 간의 경쟁력 차이 및 그에 따른 소득불평등을 말한다. 유로화의 환율은 유로존 전체의 평균 경쟁력에 따라 정해지는데 만일 독일이 통화 독립국이었다면 마르크 환율은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그에 따른 초과 이익의 일부를 다른 회원국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극우도 극좌도 아니고 기존 질서에 대한 앤티도 아니면서 짧은 기간 내에 엄청난 지지를 모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정부 각료에 입각하기 전에는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 뱅크에서 일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파리정치학 대학원(일명 '시앙스 포', Science Po)과 국립행정대학원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그의 모교 시앙스 포의 쟈키 라이디 교수는 지난 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의 '다가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크롱의 승리는 이제까지의 좌우 이분법의 종식을 의미하며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평했다.

조직 없이 자원봉사자 중심의 선거운동을 하는 그는 앤티의 화살을 국내의 가진 자나 세계의 흑자국에게 향하지 않고 기존 정치권을 향해 조준했다. 좌우 모두가 프랑스가 필요로 하는 개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했던 것이다.

"이분법의 종식이 프랑스 혁명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 않다. 프랑스는 대통령 중심제이긴 하나 의회 의석 수를 기준으로 과반수가 되기까지 다른 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한다. 만일 곧 있을 6월의 총선에서 앙 마쉬가 다수당이 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좌와 우 여러 소수 정당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150쪽에 달하는 그의 구체적 정강정책이 지난 3월 2일에야 공개되었다는 사실도 진기하다. 르 펜의 경우는 1972년 그의 아버지가 창설한 국민전선에서 2011년에 당수로 선출된 이후 국내외의 수많은 난제들에 대한 정책대안을 발표해 왔다. 극우적 편향을 완화하기 위해 심지어 골통보수인 아버지 르 펜을 출당시키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마크롱의 국정운영 프로그램은 정제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때묻지 않은 정치 신인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어쩌면 약간은 맹목적인 여망(輿望)이 유럽과 세계 경제의 안정에 좋은 기여를 하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26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