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나서고 보자" 심리 확산…자치단체 행정공백, 자질검증 기회 부족 우려

"하마평에 오르지 못하면 유지가 아니"

민주사회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된 기본적 권리다. 따라서 누가 어느 선거에 출마하든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6·5 도지사 재선거 등을 겨냥한 지역인사들의 발빠른 행보는 그들의 자유의사를 떠나 심각한 과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름이 좀 알려졌다 싶으면 너도나도 선거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하마평에 오르지 못하면 유지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질과 능력 검증은 애초부터 기대를 접어야 할지 모른다.

특히 자지단체장과 핵심 간부들까지 출마채비를 서두르고 있어 제주사회는 사상초유의 행정공백이 빚어질 판이다.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거론만 되는 정도라면 우려가 덜하겠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출마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고,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출마권유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사상초유의 행정공백 우려

6월5일 치러지는 도지사 재선거는 벌써부터 예비후보가 난립, 공천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우선 유력한 후보군의 한명인 김태환 제주시장의 출마가 확실시된다. 당을 업고 가느냐 무소속이냐의 문제만 남아있을뿐 본인도 출마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상주 서귀포시장은 저울질이 한창이다. 일각에선 한나라당 공천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섣불리 시장직을 사퇴하겠느냐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의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다음달 7~9일 사상 처음으로 서귀포에서 개최되는 도민체전과 ADB 총회 때문에 사퇴시기를 놓고 고심중이다.

진철훈 서울시 주택국장의 행보는 예상보다 빨라졌다.  당초 3일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3~4일께 열린우리당 경선후보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시기를 앞당겼다. 진 국장은 1일 저녁 제주도당에서 입당원서 제출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거취를 표명한다.


송재호 제주대교수는 이미 1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송 교수는 일요일인 2일 오후 2시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는 완전국민경선을 통해 도지사로서의 능력을 검증받겠다고 의욕을 과시했다.

강지용 제주대 교수도 3일 오전 10시30분 기자회견을 열어 경선 출마의사를 표명한다. 강 교수는 최근까지만 해도 시야에 가려져 있었다.

열린우리당 당내에선 도당 부지부장인 강승호 대변인이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다. 강 대변인은 3일 오전 10시 경선 참여 기자회견을 갖는다.

우근민 전 지사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오재윤 기획관리실장도 심증을 굳힌 상태다.

오 실장은 우 전 지사의 지사직 상실로 위기의식을 느낀 측근들로부터 강력한 출마권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에 입당 예정인 오 실장도 3일 또는 4일께 거취를 표명할 예정이다.

출마설이 분분했던 고충석 전 제주발전연구원장(제주대교수)은 꿈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행보도 관심사다.

4·15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한나라당 현경대 의원과 변정일 전의원, '탄핵역풍'으로 총선 출마까지 포기한 고진부 민주당 의원도 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을 '천직'처럼 여겼던 이들은 도백 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밖에 김창진 전 제주시장의 출마설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아쉬울게 없다?

이처럼 지역인사들이 앞다퉈 도지사 재선거에 뛰어드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보듯이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이른바 '바람'만 잘 타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바람'이 당과 관계가 깊다고 보면, 당 공천 경합이 치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다, 일부 인사의 경우 선거에서 지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것도 난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아쉬울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 수장을 잃은 제주도의 기획관리실장 마저 선거에 '올인'할 경우 산적한 현안과 맞물려 엄청난 행정공백이 빚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은 '시장'으로 선택한 시민들의 민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감수하기 어렵다.  

너도 나도 제주시장 후보...10여명 넘게 거론

특히 제주시의 경우 김영준 부시장의 시장 출마가 점쳐지고 있어 자칫하다간 정, 부단체장이 동시에 자리를 비울 가능성도 있다.

김태환 시장의 지사 출마와 함께 재선거가 불가피한 제주시장 선거의 난립상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본인이 출마의사를 내비쳤거나,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사를 모두 합칠 경우 그 수가 무려 10여명에 이른다.

한나라당 김영훈 제주도의회의장의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고, 김승석 전 정무부지사도 출마를 선언했다.

또 6·13지방선거때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으나 막판에 눈물을 머금고 출마를 접은 장성철 녹색연구소 소장, 하맹사 전 제주시부시장, 진영진 변호사도 출마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별로 보면 지방의원(광역·기초) 출신 6명, 전직 자치단체 간부 2명, 법조계 3명, 정당인 1명, 여성계 1명 등이다.

지역사회 일각에선, 그 역할에서 도지사 못지않은 제주시장 선거가 도지사 재선거에 묻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 공천을 거치다보면 어느정도 '교통정리'가 예상되지만, 지금으로선 과열우려를 씻기도, 자질이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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