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14) 문재인 정권의 ‘유권자’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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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코마코스 윤리학,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3. 사기열전, 4. 에티카, 5. 존재의 심리학, 6. 팡세, 7. 안자춘추, 8. 나는 왜 쓰는가, 9. 맹자집주, 10.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1. 춘추좌전, 12. 거대한 전환, 13. 로버트 오언, 14. 논어

유권자도 변화해야 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는 인천 부평구청 앞을 서성였다. 당시 부평구민이었던 나는 나름 언론운동을 하면서 당시 야권의 승리에 보탬이 되었다는 자긍심이 있었고 승리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부끄럽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승리에 대해서 유권자로서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그저 당선자 일터를 서성거릴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2월부터 지금까지 <제주의소리> 지면을 빌려 13편의 동서양 고전을 리뷰하며 대통령 선거를 환기했다. 이 글은 그 결산으로 13편의 고전에서 한줄씩 추리고 <논어>에서 한줄을 보태 총 14편의 동서양 고전으로 문재인 정권 이후 유권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옛날 중국 한나라 황제 유방이 천하를 얻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책사 육고가 입을 뗄 때마다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자 황제는 배알이 꼬였다. 황제는 말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는데 어찌 시경과 서경 따위의 책에 고개를 숙이겠느냐고 따져물었다. 육고는 차분히 대답했다.

1.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 사마천, <사기열전> 「역생ㆍ육고열전」

정신이 번쩍 든 황제는 진나라가 어떻게 천하를 잃었고, 자신이 어떻게 천하를 얻었으며, 고대 국가들의 성공과 실패는 어떠했는지 글을 지어 올리라고 지시했다. 육고는 국가 존망에 대한 13편의 글을 서술해서 바쳤다. 그 책을 <신어(新語)>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정권의 1등공신 한신이 토사구팽된다.

사마천 <사기열전> 중에서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의 고사를 첫머리로 꼽은 이유는 유권자와 문재인 정권의 주역들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특히 우리 유권자들은 노무현 정권 당시 말 위에서 다스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후보가 대권을 잡았다. 

노영민 전 민주당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처럼 최측근들이 자진해서 출국하거나 고위공직을 고사하고 있지만 문재인 캠프로 간 많은 폴리페서가 있다. 유권자는 대통령 취임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집요하게 요구해야 한다.

2. 치자 고유의 탁월함은 선견지명(phrnesis)뿐이다. 다른 탁월함은 치자와 피치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대신 피치자의 탁월함은 선견지명이 아니라 올바른 의견(doxa alethes)일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시민이라면 자유민답게 지배할 줄도 알고 자유민답게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의견을 뿌리로 삼은 올바른 실천으로 문재인 정권이 엇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2010년 6월로 돌아가 보자. 지방선거 직후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일명 '홍위병'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보수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문재인 지지자들이 홍위병으로 변신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가 직접 거론하며 대단히 논란이 된 이슈이지만 문재인 후보 당선 후에 현실화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이 아마 대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3. 어떤 사람의 품성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지혜롭다거나 이해력이 있다고 하지 않고, 온화하다거나 절제있다고 말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국민 대통합은 다름 아니라 보수세력과 보수 지지자들에게 "겁먹지 마라, 해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실제로 믿음을 주는 것이다. 보수 세력은 겁이 많으니까. 승리감에 젖을 시간은 없다.

정권에 상상력을 더하면

​지난 20년 동안 딱 절반씩 대북 정책이 갈렸다. 두 정책의 차이는 한마디로 '해서 욕 먹은 것과 아무것도 안 해서 욕 안 먹은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은 대북 정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민망하다.

대선 토론 때도 보수 후보는 김영삼 정권의 일명 '버르장머리 고치기' 기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독 보수는 대북 정책에 무능했고 미국 의존도가 심했다. 문재인 정권이 북한과 대승적인 타협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하지만 상상력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에게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4.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은 상상력을 정치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명백한 정치 색깔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이 훼손되지 않은 불멸의 작품을 여럿 남겼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산적한 문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의 상상력 문제라고 생각한다. 10시 11시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중고등학생들이 상상력이 자랄 수 있을까?

지금의 교육문제는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틀이다. 틀은 그대로 둔 채 부분만 바꾸다 보니 현재처럼 기형적으로 바뀌었다. 일단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데 힘을 써야 한다. 멈춰버린 아이들의 뇌를 현장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을 뽑으라면 '웃음'을 선택하겠다. 권위주의 정권 10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농담 한마디를 하더라도 눈치를 보며 했다. 정치풍자를 잘못 했다가는 비난에 휩싸이거나 법정에 끌려갈 수도 있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 조롱, 대통령 풍자 문화가 다시 살아나길 기원한다. 다만, <환생경제>보다는 품격을 갖춘 풍자물이 나오길 기대한다.

5. 기쁨은 인간의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슬픔은 인간의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욕망과 감정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모든 감정을 기쁨과 슬픔으로 나누고 그 중간에 있는 감정들을 분석한다. 이것은 음양(陰陽)을 양극으로 하고 그 사이의 62개 현상을 분석한 <주역(周易)>의 원리와 같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아이와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강력한 증거로 '웃음'을 꼽았다.

나도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공부할 때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심각한 사안을 다룰 때도 고급서러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 수 있는 여유 있고 성숙한 정치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툭하면 목숨걸고 옥쇄파업하듯 대치하면 아까운 시간이 많이 사라질 테니까.

6. 사람들은 더 높은 지능을 소유하면 할수록 독창적인 사람들이 더욱 많이 있음을 발견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 파스칼, <팡세>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의한 타락이 꼭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파스칼조차도 인간 이성의 편을 들어주었더라면 인간은 방향을 잃고 헤맸을지도 모른다. 신에 복종함으로써만이 위대성과 비참함 사이에서 인간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파스칼의 경고는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통찰이다.

한국사회는 마치 전체주의처럼 천편일률적인 정치가 지배해 왔다. 다양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당들이 나오지만 선거에 임박하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양당제였듯한 착각을 줄 정도다. 대선 막판에 우리는 초조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자를 혼란시키는 ‘선동’을 한 것을 똑똑히 보았다. 표심 왜곡은 정치를 후진적인 모습으로 가두는 퇴행 중의 퇴행이다. 정권탈환에 모든 가치가 매몰돼 버린다면 5년마다 유권자들은 정권 노름이나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과 사과가 있어야 하고 유권자는 이를 압박해야 한다. ‘나쁜 첫 단추’가 될 위험이 큰 사안이다. 당장 정의당과 정책공조가 어려워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상황이 안 되는 준엄한 국면에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진짜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 만들려면

​지금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사는 존재는 아이들뿐일지도 모른다.

7.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유아와 아동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목적이나 미래를 위해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삶을 즐기느라 너무나 바쁘고, 순간 순간을 능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살아가지, 살려고 준비하지 않는다.
- A.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21세기 심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철학자 겸 심리학자 매슬로는 생식기나 꿈 같은 몸의 일부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가지고 심리학을 했다. 김수영 시인의 말마따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순간'을 되돌려주어야 할 뿐 아니라 어린이들로부터 '순간'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어른 자신의 어렸을 적을 최대한 기억해내야 한다. 지금은 순간은커녕 모든 시간을 어딘가에 다 퍼주고 여가 시간 하나 없이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이게 사는 거냐?"로 바꿔서 던질 때다.

8. 큰 인물이 되려면 아이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 <맹자>

마음에 관해서 맹자는 집요한 심리학자와 같다. 마음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 심리 이론을 확대해 나간다. 사람들이 손가락은 다쳐도 마음 다친 것을 돌보는 사람은 없다는 통찰은 대표적인 예다. 그런 사람이 아이의 마음을 강조했다. 아이의 마음을 강조한 게 맹자뿐이랴. 노자도 예수도 강조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 권위'의 상징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의 소중한 유산이다. 권력 분립과 대통령 권한의 분산화는 노무현 정권에 이어서 역점을 두고 해야 할 일이다. 빠른 걸음을 멈춰야 비로소 개미가 먹이를 지고 가는 모습이 보이듯, 대통령이 만사를 틀어쥐지 않아야 사람이 보이고 일이 풀린다.

그 동안 권력이 분산되지 않으니 그 틈에 부패가 생기고 최순실 같은 이들이 똬리를 튼다. 고대 스파르타의 영광이 수백년이나 이어진 비결도 바로 권력의 현실화였다. 검찰의 권력과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수사권 재조정은 불가피하다.

9. "더 적어진 것이 아니오. 왕의 권력은 더욱 커진 것이오. 왜냐하면 이 권력이 더욱 오래갈 것이기 때문이라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리쿠르고스 편」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120)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 겸 작가다. 아테네의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고, 아폴로 신전의 신관이자 자신의 고향의 지방 행정관 및 대사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전기와 에세이를 집필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마천과 비슷한 인생 궤적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50인의 그리스 로마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4인을 제외하면 총 23쌍의 영웅이 비교된다. 그래서 '비교영웅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가와 영웅에 대해서 다루다 보니 정치에 관한 메시지가 유난히 많다. 정치개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리쿠르고스 편' 정도는 읽는 것이 좋다.

10. 근심거리는 세 가지입니다. 충신을 믿지 안는 것이 첫 번째요, 임금이 신하를 믿는데 그 신하에게 충성이 없다는 것이 두 번째요. 임금과 신하가 각각 딴마음을 품는 것이 세 번째입니다. 이 까닭으로 명철한 임금이 윗자리에 있으면 충성 없는 신하는 믿음을 얻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신하는 충신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임금과 신하가 같은 생각을 갖게 되고, 백성은 원망이 없어지게 됩니다.
- <안자춘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금 사람들은 '기계 사는 세상'의 부속품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람 사는 세상의 향기만 느끼게 해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권에 잡음이 없어야 하고 한몸처럼 긴밀해야 한다.

안자춘추의 주인공 안영(晏嬰, BC.578년~BC.500년, 안자(晏子)는 안영의 존칭)이 살던 당대는 제나라의 주인이 강씨(姜氏)에서 전씨(田氏)로 바뀔 조짐이 보이던 때였다. 안영은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세 임금을 섬겼지만 그들은 불행히도 혼군(昏君)에 가까웠다. 특히 장공은 부하의 아내를 탐하다 시해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경공은 사치스러운 것을 제외하고는 큰 하자가 없었으며 말귀를 알아먹는 임금이었다. 그런데도 안영은 죽을 힘을 다해서 경공을 어르고 달랬고 경공은 겨우 이성을 되찾아 제나라 백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유권자들이 사람 사는 나라의 국민이 되고 싶다면 이 정권을 만든 데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11. 공자 찰(계찰)이 정나라를 방문하여 자산(子産)을 만나보고는 마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처럼 대했다. (중략) 공자 찰이 말했다. "정나라의 집정이 사치하니 장차 화난이 일어날 것이오. 그러면 정권은 반드시 그대에게로 넘어올 것이오. 그리 되면 삼가 예로써 일을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나라는 장차 패망하고 말 것이오."
- 좌구명, <춘추좌전>

고용노동부장관 심상정, 경제부총리 유승민 내정설을 흘리고 다니는 것은 승자의 오만이며 교란이다. 각 당의 특성을 무시하고 곶감만 빼먹겠다는 게 아닌가. 먼저 각 당의 정책을 조율하고 필요하다면 입각을 제안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당을 무시하고 인기영합하며 너그러운 척하는 것은 교만과 위선이며 정치적으로 매우 무례한 처사다. 심상정·유승민의 입각을 종용하는 자들에게 유권자로서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12. 인간의 삶이 산업적 생산의 조건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단순히 임금이라는 것 말고도 숱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성인들의 교육, 그리고 춤·음악·오락 등이 제공되었고, 젊은이나 늙은이 모두가 고도의 도덕적·인격적 기준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가운데 산업에 종사하는 인민들 전체가 하나로 뭉쳐 새로운 지위를 획득해나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창출되었던 것이다.
-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돈벌이와 살림살이를 구분하자고 외쳤던 경제학자 칼 폴라니. 현재 많은 사람들이 칼 폴라니를 주목하고 있다. 사람다운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려면 칼 폴라니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해야만 한다. 나는 요즘 돈과 시간을 사이에 두고 씨름을 벌이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시간을 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존재는 시간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시간은 존재 그 자체다. 문재인 정권이 유권자들의 시간을 확보해줄 수 있다면 사람 사는 세상에 성큼 가까이 간 것이다.

13. "현행법 아래에서는 실업을 당한 노동계급을 부유하고 근면한 이들이 먹여 살리고 있으며 후자의 재산과 생산물을 전자가 소비하고 있지만 그들의 육체는 여전히 생산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 <로버트 오언>, 1815년 당시 영국의 빈민 구호세에 대한 비판

칼 폴라니가 사람다운 경제시스템의 설계자라면 로버트 오언은 위대한 인격으로 평생 실천한 선구자다. 19세기 초 늘어나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은 빈민들을 저질로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성실납세자들을 빈민으로 추락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었다. 로버트 오언은 비생산적인 계급들(빈민)을 생산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저질의 존재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효율성과 행복을 가져다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대한민국은 성실한 사람에 기생하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면 일한 만큼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권은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 개념과 맥락을 함께 하는 효율적인 복지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터무니없는 요구보다는 현실 가능성이 있고 꼭 필요한 요구를 해야 한다. 세금 더 낼 각오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논어>의 구절로 글을 마칠까 한다. 뜻을 이루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소금과 같은 말이 있다.

14.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앙심을 품지 않아야 한다.
- <논어>

<논어> 1장에 나오는 '인부지불온'(人不知不慍)을 꺼내는 이유는 우리 유권자들이 유독 조급해서 기다리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문재인 당선자는 이회창의 길을 가지 않고 김대중의 길을 갔다. 대구 경북과 경남을 저주하고 홍준표 후보가 25% 가까이 득표한 데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 모습은 무척 안타깝다.

보수의 나라에서 보수 지지자들이 그 정도면 마음을 연 것이라고 인정할 만도 할 텐데 요지부동이다. 그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더 많이 주면 민주주의겠는가. 유권자들의 편협함이야말로 사람다운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지난 10년 정치 공부를 많이 했지만, 앞으로의 5년 10년은 더 많이 배워서 '정치 혐오증'도 극복해내면 좋겠다.

※ 이것으로 14회에 걸친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연재를 마칩니다. 대선 이후 새로운 코너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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